(컬럼2) 진검승부는 이제부터다
새해벽두 문상을 갔다가 모 건설사 회장을 만난적이 있다. 그 회장은 당시 한창 진행중이던 건설사 구조조정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얘기의 핵심은 평가기준이 너무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돼 있고, 대형건설사에 비해 중소건설사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돼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건설사 부실의 원흉(?)으로 지목받고 있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대출 부실 책임을 왜 시공사(건설사)가 모두 떠안아야 되느냐 하는 불만도 터뜨렸다.
92개 건설사를 대상으로 한 1차 신용위험평가 작업이 우여곡절 끝에 막을 내렸다. 지난해 정부가 '10.21대책'을 통해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건설사들을 지원하되, 생존이 불가능한 건설사는 과감히 퇴출시키겠다고 발표한 뒤 3개월만이다.
1차 퇴출작업은 마무리됐지만 문상 자리에서 만난 회장의 얘기처럼 이곳저곳에서 불만의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비록 이니셜이지만 언론을 통해 C(또는 D)등급으로 거론됐던 건설사들은 불만의 차원을 넘어 법적 대응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오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주채권은행에서도 아니라고 하는데 일부 언론보도 등 잘못된 소문으로 회사 분위기만 악화됐다"고 말했다.
C등급에 포함된 회사들의 반발도 거세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미분양 물량도 많지 않고 재무구조도 괜찮은 편인데, 왜 C등급에 해당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정부가 은행에 구조조정 대상기업을 보다 보수적으로 평가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바람에 B에서 C등급으로 강등됐다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휘둘렸다는 불만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반면 한 쪽에서는 '속빈강정으로 드러나는 옥석가리기', '면피성 구조조정 가능성' 등 퇴출작업이 형식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당초 11개 평가 대상 기업 가운데 최소 30% 이상이 시장에서 퇴출되거나 구조조정 될 것이라는 게 시장의 분석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구조조정이 실패로 끝나고 건설산업은 물론, 우리 경제의 발목을 계속해서 잡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시작한 퇴출작업이 오히려 갈등만 키우고 있는 양상이다. 보는 입장에 따라 동전의 양 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것은 이번 작업의 본질은 퇴출이 아니라 한 단계 도약을 위한 건설업계의 환골탈태라는 점이다.
A나 B등급을 받았다고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C등급에 포함됐다고 해서 퇴출되는 것도 아니다.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처한 입장에서 어떻게 위기를 돌파하고 새롭게 태어나느냐, 또 어떻게 재도약의 기회를 만들어 나가느냐 하는 숙제는 모두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과정에서 손해본 듯한 느낌이 있다 하더라도 흔히 얘기하는 진건승부는 이제부터라는 것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