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올해도 어김없이 내년도 예산안 법정시한을 어기게 됐다.

   헌법 54조 2항은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날짜로 따지면 12월2일이 법정 시한이다.

   여야가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 규모와 용처를 두고 자신만의 셈법으로 다투는 동안 대한민국 법치의 근간을 이루는 헌법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셈이다.

   산술적으론 아직 이틀의 시간이 남아있지만 예산 심사절차를 감안하면 법정시한 처리는 불가능하다. 여야는 다음 달 1일부터 계수조정위원회 활동에 착수해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9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키로 했다.

   하지만 `마지노선'처럼 보이는 이날마저도 지켜질 것이라고 보는 이도 그리 많지 않다.

   종합부동산세와 법인.상속세 등의 감세안과 경기부양용 SOC(사회간접자본) 투자 확대를 들고나온 한나라당과 `부자감세' 반대와 복지재정 확대를 요구하는 야당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마당에 합의가 지켜질 리 만무하다는 관측이다.

   1990년 이래 예산안이 법정 시한을 지킨 것은 불과 5차례. 무려 14차례나 헌법을 위반했고 11차례가 정기회를 넘겨 임시회에서 처리됐다. 2003년부터 올해까지 6년 연속 위헌 기록을 세우게 되면서 해당규정이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말도 나온다.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1992, 1997, 2002년은 선거운동의 필요성으로 11월 중에 처리됐고, 1994, 1995년은 법정시한 마지막 날에 가까스로 통과됐다.

   특히 2004년엔 12월31일 자정이 다 돼서야 처리됐고, 2005년에는 제1야당의 불참 속에 예산안이 통과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대선이 있었던 작년엔 회기 내 처리를 주장하던 여당과 대선 이후 처리를 요구한 야당 간 의견이 맞서다 12월28일 처리됐다.

   이처럼 법을 성안하는 국회 스스로 헌법을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은 매년 되풀이되지만 제재하거나 방지할 뾰족한 해법이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일각에서는 국회가 법정기한 내에 처리하지 못했을 경우 정부가 제출한 원안을 확정한다는 규정을 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의회민주주의하에서 국회의 재정권한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게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30일 "제도적으로 강제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며 "정치권 스스로 정치.도의적인 책임감을 갖고 법을 지킬 도리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헌법 개정과 제재조치 마련이 현실적으로 어려운만큼 시민단체와 학계, 언론계 등에서 지속적으로 정치적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