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경제위기 국회 무기력증 심각

2008-11-30 12:52


  "소리만 요란하고 되는 게 없다."
   18대 국회의 첫 정기국회가 문을 연 지 30일로 석 달이 지났지만 이렇다할 성과물을 내지 못한 채 `식물국회', `불임국회'의 오명을 안게 됐다.

   여야 대치로 내년도 예산안 처리는 헌법이 명시한 법정 시한(12월2일)을 넘기는 헌법 위반 사태를 반복하게 됐고 산적한 민생.경제 법안들도 뒷전으로 밀리는 등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는 형국이다.

   정기국회 회기(12월9일)는 열흘도 채 남지 않았지만 경제위기 속에서 발빠르게 대응해야 할 국회가 무기력증에 빠지면서 여야가 내걸었던 `경제 살리기 국회', `민생 국회'의 기치는 헛된 구호로 그칠 공산이 커졌다.

   경제난국 타개를 위해 그 어느 때 보다도 초당적 협력이 절실한 시점에서 여야 모두 정쟁에 발목 잡혀 직무유기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 셈이다.

   먼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시급히 처리돼야 할 내년도 예산안은 법정 시한내 처리가 무산된 것은 물론 국회 예결특위의 파행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등 산너머 산이다.

   여야 공히 경제위기 해소에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이를 위한 예산안 편성 해법을 놓고 동상이몽을 연출하며 마주 달리는 기관차처럼 대충돌 일보직전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것.

   민주당이 2%대 경제성장률 전망치 등을 반영해 정부가 이달초 다시 짜온 수정예산안을 재수정하지 않는 한 내달 1일부터 시작하는 계수조정소위를 `보이콧' 하겠다고 맞서고 있어 심사작업 자체가 파행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에 맞서 한나라당은 "더이상 끌려갈 수 없다"며 강행처리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고 김형오 국회의장도 "정기국회 회기내 처리를 위해 국회의장의 모든 권한과 방법, 수단을 동원하겠다"며 직권상정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어 강행처리가 현실화될 경우 대치정국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처리해야 할 법안도 산더미처럼 쌓인 채 잠들어 있다.

   9월 정기국회 들어 1천982개의 법안이 제출되는 등 18대 국회 들어 제출된 법안은 총 2천787개에 달하지만 이 가운데 본회의를 통과한 건수는 불과 9건(9월 정기국회 7건)에 그친다.
종합부동산세, 소득세, 법인세, 상속.증여세 인하법안 등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감세법안만 하더라도 기획재정위 조세심사소위에서 여야간 평행선 공방으로 이렇다할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 외에 사이버모욕죄, 통신비밀보호법 등 쟁점법안은 물론이고 쟁점이 없는 민생법안마저 정쟁의 희생양이 된 채 손도 못대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4일 본회의 때 2개의 법안만 처리된 것을 놓고 김 국회의장이 "안건 수자도 굉장히 적지만 민생법안은 단 한 건도 없어 유감스럽다"고 개탄했을 정도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여야가 원내대표 회담 등을 통해 예산안과 쟁점 법안에 대해 서로 입장을 조금씩 양보하면서 타결짓는 `패키지 딜'이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으나 전망은 불투명하다.

  
여야간 기싸움으로 상임위별 소위원회 구성작업도 지난주 후반에서야 가까스로 마무리 수순으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소위가 구성됐다 해도 상임위별로 걸려 있는 쟁점법안을 둘러싼 여야간 충돌이 불보듯 뻔해 갈 길이 멀다.

   여기에 교육과학기술위는 한나라당의 `여당 과반수' 주장과 민주당의 `여야 동수' 주장이 맞서면서 법안소위와 예산소위 모두 구성되지 않았고 환경노동위도 법안소위 구성이 일단락되지 않는 등 일부 상임위에서는 여전히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하반기 정국을 강타한 쌀소득 직불금 부당수령 실태의 진상을 파헤치겠다며 시작된 쌀직불금 국정조사도 게걸음을 걷고 있다.

   쌀직불금 국조는 건강보험공단의 직불금 부당수령 추정자 명단 제출을 둘러싼 실랑이 끝에 지난 26일 정형근 건보공단 이사장이 명단 제출 요구를 수용, 어렵사리 정상화됐으나 건보공단의 넘겨받은 감사원이 내달 1일에나 최종 명단을 국회에 제출키로 하면서 국조 기간과 청문회 일정 등이 또한차례 연기됐다.

   명단이 넘어오더라도 공개 범위를 놓고 여야가 마찰할 가능성이 크고 증인 채택을 놓고도 힘겨루기가 예상돼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자칫 진상규명이라는 당초 취지는 뒤로 밀린 채 신.구 정권 책임론 공방만 반복되며 `쇠고기 국조'에 이어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공산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처리 문제도 `복병'이다.

   강행 처리 목소리를 높이던 여당이 `선(先) 보완대책.후(後) 비준'을 통한 합의 처리로 한발 물러서면서 일단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듯한 모양새지만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연대 처리 방침을 재확인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은 "미국 상황을 봐가며 시기를 조절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가 `네 탓' 공방만 거듭하며 손 놓고 있는 사이 국민들의 정치 불신만 고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회 무용론까지 제기될 정도이다.

   이에 따라 국회의장 자문기구인 국회운영제도개선 자문위원회는 지난달 매달 1일 자동으로 국회가 개회하는 `상시국회'를 도입하고 예산.법률심사의 기간을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회 개혁 방안을 마련, 정기국회내 관련법 개정을 기대한다는 `희망사항'을 내놨지만 정기국회내 처리는 난망해 보인다.

   국회 관계자는 "더이상 여야가 말로만 민생을 외칠 것이 아니라 초당적 협력을 통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며 "예산안과 법안 처리가 지연될 수록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