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거대한 경제 체스판…한국의 모습이 안 보인다

2025-01-08 15:20

[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새해 벽두의 세계는 분주하다. 혼돈과 불확실성으로 넘어야 할 산이 높다고 해도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국익을 확대하기 위해 국가와 민간이 한 팀이 되어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협력의 수위를 최대한으로 끌어 올린다. 이익이 있다면 적(敵)과 동침도 불사하는 합종연횡과 이합집산이 공공연하게 행해진다. AI가 주도하는 대전환의 시기에 새로운 판짜기가 거세게 몰아친다. 정신을 추스르고 흐름을 잘 타면 성공 궤도에 진입할 수 있지만 타이밍을 놓치면서 실기를 하면 실패하는 그룹에 속할 확률이 매우 높아질 수 있는 형국이다. 실시간으로 변화하고 있는 지정학적 리스크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지만, 일시에 상황이 대 반전될 수 있는 예측 불가능성이 상존한다.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는 것은 출범을 열흘 앞둔 트럼피즘 2기 행보다. 다시 시작될 거대한 경제 체스판에서 국가 간의 명암이 어떻게 엇갈릴지가 최대의 관심사다. 우선 트럼프발(發) 관세 폭탄의 영향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2개의 전쟁 향방이다. 지난 4년간의 바이든 체제와 어떻게 달라질 것이고, 이에 따른 경제적 이익 배분이 어떻게 갈라질 것인가로 모인다. 거시 경제적으로 환율·물가·금리가 요동치면서 각국이 경제 정책 방향을 잡는 데도 고심이 커지는 모습이다. 문제는 트럼프가 공약한 내용이 그대로 이행될 것인가도 변수다. 1차 과녁인 중국이나 멕시코·캐나다를 비롯하여 미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나 EU·일본·대만 등도 대응 수위를 놓고 다양한 시나리오 플래닝을 준비 중이다.
 
미국의 고민도 만만치 않다. 고관세는 미국의 재정적자와 물가를 자극하여 인플레는 피할 수 없게 되고, 다시 금리 상승을 부추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부작용과 관련 미국 국내의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다. 관세 인상이 추진되더라도 단계적이면서 선별적으로 이뤄질 공산이 크며, 이는 미국과 거래가 많은 상대국의 희비를 예고한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공공 부문의 혁신을 위한 정부효율부 발족이다. 일론 머스크 등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거물들이 대거 정부 요직에 참여, 대대적 혁신을 예고한다. 바이든 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정책 기조다. 이에 더해 법인세 인하(21→15%), 개인소득세 감면 등으로 제조업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춘다. 미국으로의 제조업 회귀 귀추가 주목된다.
 
중국은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숨을 죽이고 주시하고 있다. 미국의 무차별 공격에는 원칙적으로 정면 대응한다는 태세지만 소나기를 피할 방법을 다각적으로 강구하고 있다. 우선 트럼프 진영과의 대화 채널을 구축하면서 미국 동맹국과는 관계 개선을 서두른다. 일본과는 정부 레벨의 회담을 개시하고, 트럼프의 강경 기조에 반감을 보이는 유럽 국가와는 선별적인 협력 루트를 다시 조성 중이다. 한편으로 AI와 양자컴퓨팅 등을 비롯한 첨단 산업 분야에서 미국과 선점 경쟁에 불을 더 댕길 것으로 예상된다. 돈과 시장을 무기로 미국의 빅테크를 유혹하며 미국과의 통상 전쟁에서 완충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트럼프 2기 초기에 무너지면 4년 내내 고전할 수 있어 초반부터 세게 맞불을 놓을 채비다.
 

위기만 키우고 기회를 번번이 놓치면서 골든타임 허송
 

한국 처지에서 보면 현재 돌아가는 바깥일들이 하나같이 심상치 않다. 특히 일본과 대만의 밀착이 무척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일본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과 대만이 비슷하게 구미가 당기는 파트너지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껄끄럽다. 정치적 상황이나 국민 정서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양국에 대한 거리감이 다르다. 반도체의 경우만 보더라도 일본이 망가지면서 한국과 대만이 반사이익을 챙기고 선두주자로 부상했다. 최근에는 대만이 한국을 따돌리면서 최강자로 부상하였다. 일본이 반도체의 부활에 시동을 걸면서 자존심으로 버리고 대만에 손을 내밀었고, 실제로 TSMC 등 대만 반도체 업체들도 장기적으로 미국보다 일본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일본이 가진 경험과 인재, 지식재산권 등을 참작한 것으로 향후 양국 간의 기술 교류가 한층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한다.
 
중국과 대만 간의 양안(兩岸) 문제에 대해 보는 시각도 가지각색이다. 미·중 충돌이 격화되면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많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전면전으로 대만이 가진 전략적 자산이 파괴되는 것은 중국으로서도 바람직한 해결책이 아니다. 긴장 조성을 통해 대만의 여론이 친중(親中)으로 바뀌도록 유도하여 하나의 중국으로 완성해 나가는 밑그림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대만 집권당인 민진당(民進黨)은 반중 노선을 견지하면서 중국과 미국·일본 등과 전략적 협력을 확대하면서 대만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해 나가고 있다. 실제로 대만의 위상이 과거와는 판이해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사는 줄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고 정확하게 포지셔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한국 수출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수출 10대 강국 중 증가율(8.2%)이 1위다. 내수가 얼어붙고 있는 가운데 수출 외바퀴로 한국 경제가 지탱되고 있는 셈이다. 올해 수출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일본에 대한 만성적인 무역적자는 여전하고, 중국에 대한 무역적자는 작년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2년 연속이다. 양국에 대한 무역적자가 무려 230억 불에 달한다. 속 빈 강정이다. 시장에 나가보면 손에 잡히는 공산품 대부분이 중국산이다. 중국 기업의 한국 시장 진출 공세는 갈수록 거세다. 중국산이 없이 1주일도 버티기 어려운 일상이다. 반면 일본 소비자의 한국산 외면은 부동이고, 심지어 중국인들도 한국 제품에 시큰둥하다. 한국인의 소비 풍조와 확연히 다르다. 중국산 수입에 열을 올리는 무역업체는 우후죽순처럼 늘어난다. 더 치열해질 거대한 글로벌 경제 전쟁에 한국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진다. 사면초가라고 위기만 키우는 대신 기회는 번번이 놓치고 있어 안타깝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