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이재명의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2025-01-07 19:26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소위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지만 최근 감기 기운이 돌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해야겠다는 생각에 어처구니없는 말을 내뱉었다.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모순을 이르는 대표적인 말이다. 높으면서 낮고 부드러우면서 거칠고 왼쪽이면서도 오른쪽인 즉 말도 안 되는 조합을 뜻한다. 

말하고 보니 문득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최근 행보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겹쳐 보였다. 지난달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감액예산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한 민주당은 정부·여당에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을 요구했다. 특히 추경을 통해 '이재명표 예산'으로 불리는 1인당 25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을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형태로 모든 국민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가 부진하다며 정작 경기 부양에 역행하는 모순된 조치의 연속인 셈이다.

추경 편성 배경은 이렇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사태에 나라 경제가 초토화된 만큼 민생 경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전쟁도 아니고 금융위기도 아닌데 이렇게 낮은 성장률, IMF(국제통화기금) 때, 또 금융위기, 코로나 때 말고 없었다"며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되는 추경이라면 내용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열어놓고 협의하고 검토하겠다"고 했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추경 편성은 어쩌면 당연하다. 실제로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8%로 하향했으며 해외 투자은행(IB)들은 1%대 초반까지 내려 잡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폭탄' 우려에 수출이 급속히 위축되는 데다 비상계엄 선포 후 한 달 동안 정국 혼란이 가중되며 내수 침체의 골이 깊어졌다. 더는 퇴로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작 4조1000억원 감액예산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재정 방파제를 쌓기 어렵게 만든 건 추경을 주장하는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2025년 예산안 심의 때도 대규모 지역화폐 발행을 주장하다 정부와 합의가 안 되자 일방적으로 감액 예산안을 처리해 버렸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올해 예산안이 감액된 부분이 성장률에 0.06%포인트 마이너스(-)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한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1.9%인데 감액예산안을 반영하면 성장률 전망은 1.84%로 떨어진다.

게다가 추경을 '전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에 쓰자고 한다. 코로나19 때처럼 현금을 나눠주자는 것이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인플레이션 유발이 제한적이고 경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지만 정부와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수차례 고물가의 위험과 재정 지출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반대해왔다.

특히 물가를 2%대로 관리해야 할 의무를 진 한국은행은 '선별적 재정 확대'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총재는 추경의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에 대해선 "무조건적으로 재정을 푸는 방식은 안 된다"면서 "재정건전성이나 효율성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시적이고 타깃팅해서 하는 재정정책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한은은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과 싸우며 총 10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했고 서민 경제는 고물가의 고통을 감내하며 비용을 치렀다. 3년 2개월 만의 긴축을 끝내고 금리 인하기로 돌아선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다시 고통 속으로 들어가자는 건지 묻고 싶다. 

감액예산안으로 성장을 끌어내리고 민생 경제를 챙기기 위해 만든 추경으로는 물가 교란을 다시 일으키자는 주장이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역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이미 '900조 계엄 청구서'를 받아든 민생 경제는 지칠 대로 지쳤다. 정말로 한국 경제를 위해 추경이 필요하다면 보여주기식 현금 살포보단 신성장 동력 점화에 주력하고 불황의 타격이 큰 취약 계층을 위한 핀셋 지원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