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국민은 여전히 불안하다

2025-01-08 05:00

최근 만난 이들과의 대화 주제는 단연코 '비상계엄'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도 술이 몇 잔 들어가자 "무섭다"는 말부터 쏟아냈다. 계엄이라는 단어가 주는 서늘함이 몸을 위축시켰던 한 달 전 그날 밤의 감각이 아직도 살아서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평소 정치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친구라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정치부 기자로서 '탄핵' '내란'이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쓰고 들으며 감각이 무뎌져 버린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는 또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자신이 일하는 건물에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정말 계엄이 누군가의 말처럼 '2시간짜리' 잠깐의 우발적 사건에 불과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3일 이후 모든 일상이 무너질 수 있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태연해서 현실적이지 않다는 소리였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친구를 토닥였지만 그 친구는 입을 닫았다.

계엄 사태가 한 달을 넘어가면서 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친구의 공포처럼 어느 하나 정리되지 않는 '시계 제로' 정국에 기인하고 있다. 지금의 사태가 해결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 어쩌면 해결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 설마 하면서도 다시 그날의 공포가 재현될 수 있다는 불안, 이 모든 것들이 복잡하게 얽힌 채 그 친구의 마음을 지배하는 듯했다. 사실 이러한 것들 모두 상당수 국민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반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국민을 거리로 내몰고 고통스럽게 한 장본인인 윤석열 대통령은 너무 조용하다. 당당하게 맞서겠다는 선언이 민망할 정도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는 시간 끌기로 대응하고, 법원이 적법하게 발부한 영장 집행은 경호처를 동원해 막아서는 모습도 더욱 참담하다. 국민 앞에 법과 정의, 공정을 강조하며 당선된 대통령이 정작 법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있다.

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하든, 고도의 통치 행위든 판단하기에 앞서 윤 대통령 스스로 '북한 공산세력'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 때문에 계엄을 선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반문해 보자. 윤 대통령의 말처럼 정말 간첩과 같은 불순 세력이 있고, 그들이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킬 정도로 국가를 존망의 갈림 위기로 몰아넣었다면 상황이 그렇게 될 때까지 대통령 본인과 정부는 2년 동안 무엇을 했나.

그 긴 시간 동안 내버려 놓고 결국 선택한 것이 국민을 불안과 공포에 몰아넣는 계엄을 선포한다는 게 과연 21세기 대한민국 수준에 어울리는 일인가.

계엄 사태 이후 우리 사회에는 '설마'라는 부사의 의미를 상실해 버렸다. '설마'가 사라진 자리에 국민 불안은 점점 커지고 있다. 결국 작금의 상황을 해결하려면 윤 대통령의 결자해지가 필요하다.

구중궁궐 같은 한남동 관저에서 침묵 시위로 일관하며 시간만 끌고 있는 태도는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자신이 밝힌 것처럼 지금 벌어지고 있는 내란죄 수사는 물론 탄핵심판 등 모든 법적 절차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것이 대통령으로서 한 달 넘게 고통당하고 불안해하는 국민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길이다.
 
조현정 정치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