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용의 비욘드 ESG]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의 길…G(거버넌스)를 잡아라

2024-12-23 06:01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그는 사악했고, 그들은 올바른 일을 하지 못했다
 
2024년이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적 계엄과 탄핵, 이어진 후폭풍 속에 저물어간다. 탄핵 일정을 후유증 없이 마무리해 정치적 불확실성을 없애는 게 중요하겠지만, 동시에 드러난 문제점을 해결할 정치 체계 전반의 개혁 또한 힘 있게 추진되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비상계엄 시도를 시민적 저항으로 물리쳐 민주주의의 스트레스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통과한 데 머물지 말고 인적 청산과 제도개선이 함께 이루어져야 이 혼란을 치르는 데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국가의 침로=현재 정치 위기가 첨예하게 부각하는 중이나, 정치 ‘너머’를 바라보면 대한민국이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면서 지속가능한 지구를 도모하는 데 힘을 보태는 나라가 돼야 한다는 원론이 여전히 유효하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등과 맞물려 세계적으로 ESG의 퇴조를 점치는 시각이 없지는 않다. 갈 길이 그 길 말고는 없다는 점에서 타당한 시각은 아니다. 기후변화 대응을 중심에 둔 지속가능성/ESG와 인공지능(AI)은 21세기를 지배하는 기본 의제일 것이다.

지속가능 사회를 위한 발전 전략 혹은 해법 모형은 미국의 존 엘킹턴과 프랑스의 르네 파세를 통해 제시돼 널리 인용된다. 엘킹턴의 트리플보텀라인(TBL, Triple Bottom-Line)은 경제·환경·사회 사이의 균형을 중시하고, 세 원의 교집합에서 지속가능성이 구현된다고 본다. 트리플보텀라인의 보텀라인은 원래 회계상의 순이익과 같은 개념이나 TBL 논의에서는 포괄적 성과, 나아가 가치의 의미를 갖는다.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등 많은 곳에서 TBL 모형이 활용됐다.

 
 

 

 
TBL은 경제·환경·사회를 각각의 핵심 개념인 이익(Profit)·지구(Planet)·사람(People)에 결부하여 3P라고 하거나, Economy·Ecology·Equity로 해석해 3E라고도 한다. 에퀴티(Equity)는 기업 본령의 외연을 확장한 사회적 평등을 뜻한다. 기업경영의 3대 축으로 보아도 좋고 사회발전의 근간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지속가능 경영은 TBL경영이자 3P와 3E를 추구하는 경영이다. 지속가능 경영이란 용어는 장기(長期)주의와 균형이란 전략을 3P와 3E를 통해 자연스럽게 도출하게 된다. 지속가능 사회의 개념에서도 3P와 3E는 물론 장기(長期)주의와 균형이 중요하다.

파세의 3개 동심원 모형은 한국에서 잘 거론되지 않지만, 사회 발전 전략의 원칙을 확인한 핵심 개념이다, 파세는 균형보다 위계를 강조한다. 파세는 1979년에 출간한 <경제와 삶(l'économique et le vivant)>이란 저서를 통해 경제계는 인간사회에 종속되고 인간사회는 생물권(biosphere)에 종속되는 위계가 확실한 구조를 제시했다. 이 모형에서는 사회가 망가지면 자동으로 경제가 망가지고, 생물권이 훼손되면 인간사회와 (인간의) 경제가 자동으로 무력화한다. 따라서 존재와 해법의 우선순위가 명확하다.

정치와 경제의 관계에서 정치가 경제에 무용해 보이지만 정치가 망가지면 경제가 함께 망가진다는 원리를 이 모형으로 다시 파악할 수 있다. 과거 남미를 비롯하여 여러 실증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경제를 위해서도 올바른 정치적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는 이유가 이 모형에 들어있다.
 
 

 
파세의 모형처럼 위계가 있든, 엘킹턴 모형처럼 삼발이 구조를 취하든, ‘수렴’이든 ‘균형’이든 분명한 흐름을 형성하면서 확고한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혹은 내야 한다는 것이 이 두 모형의 시사점이다. 지속불가능의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론으로 ESG(환경·사회·거버넌스)는 TBL의 경제를 거버넌스로 대체했는데 그렇다고 사회발전 모형으로서 경제를 도외시하지는 않는다. ESG에서도 3P와 3E가 여전히 유효하고 사활적이다. 궤를 같이하지만, 다만 강조점을 확실히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거버넌스를 한 축으로 집어넣은 의의가 절대 작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림 보 셸렌의 지속가능성 다이아몬드>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또 다른 유명한 모형은 스웨덴의 사회학자 보 셸렌이 1999년에 만든 ’지속가능성 다이아몬드(Diamond of Sustainability)’이다. 엘킹턴의 경제·환경·사회라는 TBL의 세 축을 중심으로 상호관련성을 도식화했다. 셸렌은 “지구의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위한 정책 개발에 사회과학을 통합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사회과학 요소들을 통해 지속가능성이 사회에 어떻게 자리를 잡았는지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셸렌의 통합적 사고는 SDGs 수립과 지속가능 발전교육(ESD) 방향 설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 가지 발전 모형으로 해법/탈출구의 영감을 다시 확인하면서 발전경로에 관한 확신을 새롭게 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발전 모형이 모형으로 그치면 의미가 없다. 대안을 모색하는 흐름은 고무적이지만 지속가능한 세상을 향한 일상 태도의 변혁, 나아가 사회적 전환이 없다면 탁상공론이기 때문이다. ESG를 비롯하여 살펴본 세 모형은 논문 속에서만 통용되는 도식은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지속가능성을 다지는 유력한 수단으로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문제는 변화를 일으키는 행동이다. 소비자나 시민 수준에서 논의되는 일상의 태도 변화와 함께 공공과 시장, 국제사회가 함께 변화에 동참해야 임박한 파국을 모면할 수 있다. 시민과 소비자만의 변화만으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포괄적이고 전체적인 균형의 행동이 세상을 구한다. 쿠데타와 탄핵 국면에서 필요한 행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 구글의 기업 행동강령의 대표문장을 기억할 시점이다. 널리 인용되는 “사악해지지 말 것(Don't be evil)”은 행동강령의 서문에 포함돼 구글의 모토처럼 사용됐다. 대략 2000년 무렵 사용되기 시작한 “Don't be evil”은 기업의 행동강령치고는 사실 파격적인 문장이었다.

“Don't be evil”은 구글의 지배구조가 변하면서 모토로서 위상의 하락을 겪었다. 구글이 지주회사 격인 알파벳의 자회사가 되면서 구글의 모토가 알파벳의 것을 같이 쓰면서 2015년부터 “올바른 일을 하라(Do the right thing)”로 바뀐다. 구글이 자회사로 내려앉았듯 “Don't be evil” 또한 2018년 4월 무렵 행동강령의 서문에서 삭제된다. “Don't be evil”의 삭제를 두고 구글 기업 노선을 뜻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런저런 의견이 많았다. 정확하게는 삭제가 아니라, 서문에서 자취를 감추고 강령의 마지막으로 자리를 옮겼으니 ‘격하’라고 해야겠다.

보기에 따라 “Do the right thing”이 더 진취적인 방향성을 드러낸 듯하다. “Don't be evil”이 ‘네거티브’인 반면 “Do the right thing”은 ‘포지티브’이며 “Do the right thing”과 함께 사용되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라(Imagine the Unimaginable)”는 모토 또한 ‘포지티브’이다.

그러나 ‘포지티브’가 긍정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네거티브’보다 꼭 더 나은 것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모토의 이러한 변화에서 한때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대신 공유가치 창출(CSV)을 주장하며 CSV가 CSR보다 한 단계 진전된 개념이라고 우기던 풍경을 떠올리게 된다. 지난 풍경을 요약하면 CSR 없는 CSV는 사악해지는 것(Be evil)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Don't be evil” 없는 “Do the right thing”은 사악해지면서(Be evil) 돈 버는 걸 정당화하는 길로 이어질 수 있다. 극단적인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말이다.

“Don't be evil”은 일종의 직원행동주의로 이해될 수 있다. 직원은 회사의 핵심 이해관계자의 하나이다. 따라서 직원행동주의는 주주행동주의 혹은 주주주의에 맞선 이해관계자(행동)주의의 일종이다. 주주를 경영의 중심에 놓은 방법론이 얼마나 쉽게 탐욕에 휘둘리는지 역사적 경험으로 우리는 자주 목격하였다. 권력자가 국민 혹은 시민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이해관계자를 도외시할 때의 정치적 참상 또한 우리는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다.

■거버넌스가 핵심이다=소비자와 (세계)시민의 관점에서는 “Do the right thing”만으로 더 나은 세상, 혹은 더 나빠지지 않는 세상을 향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그러나 기업과 공공의 영역에서는 “Don't be evil” 없는 “Do the right thing”은 사악해지는[Be evil] 결론을 절대 배제하지 못한다. 시민의 ESG에선 ‘포지티브’만으로 충분하지만, 기업과 공공의 ESG에서는 ‘포지티브’와 ‘네거티브’가 병행하여야 하며, 기본은 ‘네거티브’이어야 한다.

계엄 선포 과정에서 극명하게 확인된 사실이기도 하다. 사악해지는(Be evil) 결정을 우리 정치체계가 막지 못했다. 거버넌스가 왜 중요한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ESG의 한 축인 거버넌스는 E(환경) 및 S(사회)와 달리 구체적인 내용 범위가 없다. 그럴 것이 거버넌스는 투명성과 책임성 등의 원칙에 입각한 의사결정과 관련하기 때문이다. 거버넌스는 의사결정의 문제를 누가 어떻게 다루느냐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리스어(κυβερνάω)와 라틴어(gubernare)를 거쳐 거버넌스가 됐고 본래는 배에서 노를 저어가는 행위, 나아가 방향을 정하는 행위 등을 의미했다. 현실에서는 의사결정의 기관이나 과정, 절차 등을 뜻한다.
 
[ISO26000의 7대주제]
 
 
ESG를 실질적으로 풀이한 국제표준화기구(ISO)의 ‘사회책임에 관한 가이드라인(ISO26000)’ 모형은 거버넌스가 왜 핵심인지 보여준다. 7대 주제 중 거버넌스가 가운데 자리하고 앉아 나머지 주제와 접목된다. 고대 그리스어의 본래 의미가 드러난 셈이다. 여러 발전 모형 중에서 왜 ESG가 효과성을 갖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지난 정치적 위기는, 사악한 행동을 한 정치적으로 중요한 개인의 치명적 일탈뿐 아니라, 그 일탈의 의사결정을 막아내지 못한, 사악한 의사결정을 보고 그 사악을 저지하는 올바른 일을 하지 못한 거버넌스의 부재를 드러냈다.

사악해지지 않고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는 국가 체계 전반의 거버넌스 개혁으로 다시 ESG를 강화할 시점이다. 이제 웬만한 정치인이면 입에 달고 사는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의 성패가 거버넌스 개혁에 달려 있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