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용의 비욘드 ESG] 우주에 거울을 달아 지구를 식힌다구요

2024-11-20 06:00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우리가 겪은 지난 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기준을 과거에서 미래로 돌리면 된다. 주변에서 흔히 듣는 이 얘기는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해 나왔지만 많이 틀린 얘기가 아니다. 앞으로 맞이할 계절이나 해 중에서 거의 항상 올해가 가장 시원한 계절이나 해가 되리라는 예측은 이제 예측에 속하지도 않는다.

지구온난화는 온실가스 급증 때문에 일어나는데 주지하듯 매년 새로 유입되는 온실가스와 이미 대기 중에 쌓여있는 온실가스를 줄일 신통한 방법이 없다. 현재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온실가스는 통화량과 비슷해 현 수준보다 줄인다는 말은 성장을 중단한다는 말과 비슷하다. 더구나 국민국가 체제의 세계 체계로는 “니가 가라 하와이” 식의 관점이 팽배하기에 결코 수긍할 만한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란 비관론이 우세하다. 결국 더는 나빠질 수 없을 만큼 나빠진 다음에, 즉 공멸이 눈앞에 보일 즈음에 모종의 합의에 이를 텐데, 그 합의 가운데 지구공학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지구공학(Geoengineering)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지구의 자연 시스템에 ‘대규모’로 ‘의도적’으로 개입하는 기후위기 대응의 갈래이다. 과학기술적 접근이 핵심이다. 인간이 추가로 만들어낸 온실가스가 급속도로 증가한 상황이 문제인 것을 감안하면 지구공학이 지구온난화에 대한 올바른 답 같기도 하다.

지구공학은 크게 태양복사관리(SRM, Solar Radiation Management)와 온실가스제거(GGR, Greenhouse Gas Removals)로 나뉜다. 각각 태양지구공학과 탄소지구공학으로도 불린다. SRM은 지구로 유입되는 태양에너지 일부를 우주로 반사하여 대기의 온실가스 수준을 조절하는 것을, GGR은 대기에서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온실가스를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SRM이 더 큰 규모의 해법을 모색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SRM이 GGR보다 쟁점이 훨씬 많다.

SRM 기술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우주거울이다. 지구 대기권 밖의 적당한 지점에 거울 비슷한 것을 설치하여 지구로 날아오는 태양에너지 일부를 원천 차단한다는 구상이다. 영화 <설국열차>를 통해 유명해졌다. 영화에서 지구온난화에 대한 해법으로 세계 79개국이 자국 상공에 ‘CW-7’이라는 물질을 살포하여 태양에너지 유입을 차단한다. 일종의 우주거울을 만들었는데, 과다하게 물질을 살포해 우주거울이 커지는 바람에 지구기온이 급강하한다. 인간이 지구온난화를 만든 데에 이어 잘못된 지구온난화 대응으로 빙하기를 도래하게 했다는 게 영화의 설정이다.

영화 <설국열차>와 영화의 원작인 만화에서만 우주거울이 추진되지 않았고 현실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 프랭크 코이치 교수를 중심으로 한 연구진이 구상한 SCoPEx(Stratospheric Controlled Perturbation Experiment) 프로젝트다.
빌 게이츠가 후원한 이 프로젝트는 풍선 형태 열기구를 지상 약 20㎞ 상공에 띄워 탄산칼슘 에어로졸을 방사하여 가로세로 약 1㎞ x 100m인 기단을 생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기단이 우주거울로 기능하게 된다. 연구진은 2021년 6월 스웨덴우주국이 운영하는 스웨덴 북쪽 이스레인지 우주센터에서 에어로졸을 실은 기구를 날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스웨덴 환경단체와 지역 주민, 국제사회 등의 반대로 비행이 취소됐다.

이 프로젝트는 2014년 하버드대 연구진이 내놓은 한 논문을 통해 얼개가 잡혔다. 게이츠로부터 후원을 받아 하버드대는 2017년에 ‘태양지구공학 연구 프로그램’을 설립했다. 이후 2024년까지 1600만 달러가 넘는 연구비가 투입됐다. 그러나 2024년 3월 여러 이해관계자의 반대를 넘어서지 못해 프로젝트가 취소됐다.

이 프로젝트는 본격 우주거울 가동이 아니라 화산재처럼 탄산칼슘 같은 에어로졸이 태양에너지를 얼마나 막아낼 수 있는지 확인하는 제한적 목표를 수립했다. 태양지구공학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시험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지역 원주민인 사미족과 그레타 툰베리 등 기후활동가들의 반발이 생각보다 거셌다. 하버드대 SCoPEx 자문위원회 또한 “스웨덴이 최종 승인할 때까지 이 비행 시험을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사미족은 “제대로 통제되지 않은 시험으로 환경을 넘어 사회경제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시험이 스웨덴뿐 아니라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도 진행돼선 안 된다는 의견이다. 이밖에 생물다양성 감소, 해양 산성화, 곡물 생산량 감소 등의 우려가 제기됐다.

일단 SCoPEx가 좌초했지만 태양지구공학적 모색이 사라진 건 아니다. 공동 연구자로 이 분야 저명한 학자인 데이비드 키스 시카고대 교수는 “세계가 기후변화 위험을 줄이기 위해 태양지구공학 기술 사용을 검토 중”이라며 “SCoPEx 같은 시험은 수행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기후대응 속도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긴급’ 선택지의 하나로 태양지구공학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을 함께 거론했다. 자문위 또한 프로젝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사회적 수용성을 해결하며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기후위기 상황에 따라 SCoPEx식의 해법이 언제든 재부상할 전망이다.
 
[2025 2월 발사 예정인 나사의 솔라 크루저=사진 출처=NASA]

■ 기후위기의 급진적 해법=우주거울의 역사는 SCoPEx 하나만이 아니다. 1989년 미국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 연구소의 제임스 얼리 연구원은 ‘우주 태양 차단막(Space Sunshade)’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이때 제안된 우주 태양 차단막은 지구온난화 대응이 아니라 다른 행성을 정복하는 이른바 테라포밍(Terraforming) 목적이었다.
표면 온도가 500℃에 육박하고 두꺼운 황산 구름으로 뒤덮인 금성의 극단적 기후는 대기 중 97%에 이르는 이산화탄소가 야기한 극단적인 온실효과 때문이다. 금성을 냉각하기 위해 얼리가 제안한 태양 차단막, 즉 우주거울은 몇 mm 두께로 얇지만 2000㎞나 되는 유리 방패 모양이다.

1991년 6월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폭발은 SCoPEx를 비롯해 우주거울에 관해 많은 시사를 주었다. 피나투보 화산 폭발로 2000톤 이상의 황산염 화산재가 지상 10~50㎞ 성층권까지 치솟았고 화산재는 성층권에서 수년간 머무르며 태양에너지의 지구 흡수를 막았다. 이에 따라 그 해 지구 평균 온도는 약 0.6℃, 폭발 이후 2~3년 약 0.2~0.5℃ 낮아졌다. 대기 중의 알베도의 변화로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 빛이 약 2.5% 줄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구 밖에 거대한 거울이나 차양을 설치하여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 복사량을 조절하는 ‘우주 태양 차단막’ 구상은 1980~90년대에 NASA와 러시아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분출했다.

우주거울과 비슷한 개념이 ‘즈나미야 프로젝트(Znamya Project)’다. 1993년 지름 약 20m 원형 반사막을 설치한 첫 시험이 이루어졌다. 반사막으로 태양빛을 반사해 유럽의 일부 지역에 비추는 데 성공했으나 빛의 강도가 낮아 실질적인 효과는 크지 않았다. 1999년의 두 번째 시험에서는 더 큰 반사 거울을 사용하여 빛의 강도를 높이고 반사 면적을 넓히려 했으나 발사 도중 차단막이 우주선 안테나에 걸려 찢어지는 바람에 실패했다. 이후 ‘즈나미야 프로젝트’가 폐기됐다.

‘즈나미야 프로젝트’는 지구온난화 대책이 아니라 극지방이나 북유럽 등 겨울철 일조량이 적은 지역에 빛을 공급해, 겨울 동안 조명을 제공하거나 농업 활동을 지원하겠다는 발상이었다. 반사 거울을 통해 대규모의 빛을 반사하여 지구 특정 지역에 인공조명을 제공하는 구상은 당시의 기술적 한계와 막대한 비용으로 역사의 기록으로만 남았다. ‘즈나미야 프로젝트’에서 띄워 올린 차단막의 반사각을 조정하면 SCoPEx가 제안한 우주거울과 비슷한 효과를 거두게 된다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의 의의가 적지 않다.

우주에서 태양빛을 반사해 지구에 사용하는 아이디어는 20세기 초반부터 나왔다. 1920년대에 러시아 과학자 콘스탄틴 치올콥스키는 ‘우주 정거장을 이용한 태양열 반사’를 구상했다. 치올콥스키는 우주에 거대한 거울을 설치하여 지구에 에너지를 반사하는 구상을 최초로 제안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1940년대와 1950년대에는 미국과 소련의 과학자 사이에서 군사적, 전략적 목적으로 우주 거울을 활용하는 논의가 중심이 되었다. 1970년대 에너지 위기 시점엔 미국 물리학자 제러드 오닐이 우주 태양광 발전소를 제안해 지금의 우주 기반 태양광 발전(SBSP) 연구의 기초가 됐다.

우주거울 구상은 우주구름(Space Cloud), 우주거품(Space Bubbles), 프레넬렌즈(Fresnel Lens), 태양돛(Solar Sails) 등 여러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있고 비용장벽도 낮아지고 있어 지구공학의 구상이 현실화할 개연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과거엔 다소 공상과학 같은 측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심각한 기후위기 국면이어서 언제든 정책입안자가 해보고 싶은 유혹을 느낄 법하다. 다만 SCoPEx 사례에서 보았듯, 또 영화 <설국열차>가 상징적으로 표현했듯 부작용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가가 쟁점이다. 완벽한 변수 통제를 할 수 있는 지구공학이 과연 가능할까. 사전 논의거리는 대부분 기술보다는 사회와 정치적인 것이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