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용의 비요드 ESG] '북극곰 생존 프로젝트' 가능할까?

2024-09-04 09:05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학계의 추산으로 2016년 현재 북극권에 살고 있는 북극곰은 2만6000마리이다. 주지하듯 북극해에서 빠른 속도로 얼음이 녹고 있다. 이에 따라 21세기 중후반부에 이르면 여름철에 북극해에서 얼음이 완전히 녹아 없어질 것이기에 이 세기 중반 이후 우리는 이 2만6000마리 북극곰과 그 후손의 멸종을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A Polar Bear, Asleep, Front View (ca. 1856) George Jones (English, 1786 – 1869)]

북극곰의 주 거주지가 북극해의 얼음 위이기 때문에 얼음이 사라지면 헤엄쳐서 안정적인 얼음이나 육지를 찾아야 한다. 수영에 능숙한 북극곰이지만 수영은 걷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한다. 북극곰은 물고기가 아니다.

바다 위의 얼음 위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데 최적화한 해양포유류일 뿐 얼음이 사라진 바다에서 살아갈 수가 없다. 얼음 없는 북극해는 같은 ‘북극’을 돌림자로 달고 있는 북극곰에게 말 그대로 치명적 재앙이다.

◆치명적 재앙에 처한 북극곰=새끼 북극곰에겐 더 큰 시련이 된다. 지금보다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은 2004~2009년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새끼를 데리고 긴 거리를 수영해 이동한 어미 북극곰 11마리 중 5마리가 새끼를 잃었다. 새끼 북극곰은 몸집이 작기 때문에 저체온증에 걸리기 쉽고 축적해 놓은 지방이 적어 부력 부족으로 익사할 위험이 매우 크다.

게다가 수영 중에는 먹이를 먹을 수 없고 엄마를 따라가려고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여 탈진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어른 북극곰이라 하여도 폭풍이 몰아치면 익사할 위험이 커진다.

익사와 함께 아사 또한 북극곰이 직면한 심각한 위험이고 위험은 나날이 커진다. 매년 여름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캐나다 내해인 허드슨만의 북극곰들은 육지 쪽으로 이동한다. 문제는 육지에 머무는 3개월 동안 북극곰의 주 먹이이자 에너지 함량이 높은 고리무늬물범과 턱수염바다물범을 사냥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북극의 해빙(海氷)이 녹으면서 북극곰은 적절한 사냥터를 확보하지 못해 더 많이 이동하는데, 해빙(解氷) 기간이 늘어날수록 더 많이 이동하고 그럴수록 몸무게를 더 많이 잃게 된다. 그러면서 근육을 잃어 사냥에 성공할 확률이 떨어지는 악순환에 접어든다. 해빙 기간 허드슨만의 북극곰들은 축적한 지방으로 생존한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2018년 4월 알래스카 앞바다의 보퍼트해에서 9마리의 암컷 북극곰을 관찰했다. 관찰한 10일 동안 북극곰은 약 35%의 시간을 활동에 썼고 나머지 시간에 휴식했다. 북극곰은 하루에 1만2325㎉를 소모했는데, 상당 부분이 축적한 체내 지방에서 나왔다. 이전 연구의 예상보다 약 60% 더 많은 열량 소모이며 그사이 체중이 10% 이상 줄었다. 관찰 대상 9마리 중 4마리가 바다표범을 한 마리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빙(海氷)이 불안정해 육지로 이동한 북극곰은 새의 알과 베리 같은 육지의 음식을 먹는다. 흰기러기를 비롯한 철새들은 5월 말경에 북극의 번식지에 도착해 8월까지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 절반 정도 발달하거나 부화에 가까운 알은 북극곰이 허기를 면하기 위해 취하는 육지 음식이지만 생존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통 흰기러기 둥지에는 알이 4~5개 있고 알은 일반적인 계란의 두 배 크기이며 칼로리가 4~5배 높다. 북극곰이 바다표범 한 마리만큼의 열량을 섭취하기 위해서는 흰기러기알을 약 88개 구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바다 얼음이 계속해서 녹는다면 북극에서 북극곰의 익사와 아사의 확률이 높아지는 것과 함께 흰기러기 같은 철새의 번식도 난관에 봉착한다. 해빙 기간이 길어져 북극곰이 육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면 둥지 속 알이 점점 더 자주 북극곰의 표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허드슨만 북극곰 멸종 시뮬레이션=학술지 <글로벌 체인지 바이올로지>에 2013년 발표된 한 논문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배출 시나리오에 관한 특별보고서'를 바탕으로 캐나다 허드슨만의 바다 얼음 상태를 예측해 21세기 북극곰의 개체 수에 미치는 영향을 전망했다. 온실가스 방출에 따른 6가지 시나리오 중 B1(저배출), A1B(중배출), A2(고배출) 시나리오가 사용되었다.

요약하면 세 시나리오에 따라 2100년까지 허드슨만 해빙 시점, 해빙 기간, 봄의 해빙 농도를 예측한 결과 A1B와 A2 시나리오에서 2100년에 근접할수록 서쪽 허드슨만에서 봄에 북극곰이 살아갈 해빙이 거의 사라진다. 봄의 북극 바다에 얼음이 존재하지 않으면 북극곰은 멸종의 길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

1987~2004년 서쪽 허드슨만 북극곰 개체 수가 약 22% 감소했는데 그 시기에 해빙(解氷) 기간이 약 2주 길어졌고 해빙 시점은 약 5~10일 앞당겨졌을 뿐이다. 만약 A1B 또는 A2 시나리오가 실현된다면 2100년이 되기 전에 서쪽 허드슨만에서 북극곰을 볼 수 없게 된다.

◆온실가스 영향 직접 확인=2008년 미국에서 북극곰이 멸종위기종법(ESA) 규정에 따른 멸종위기종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미국에서 지구온난화를 사유로 멸종위기종에 등재된 생명종은 북극곰이 처음이다. 하지만 북극곰을 멸종 위기로 몰고가는 위협 요소들은 제거되지 않았다. 멸종위기종법에 따라 미국 정부가 관련 조치를 해야 하지만 북극곰 보호를 명분으로 기업 등에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려면 더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는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미국 국무부는 북극곰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요인에서 이미 전 세계가 배출해 누적된 온실가스의 영향과 앞으로 배출될 온실가스의 영향을 구분할 것을 요구했다.

멸종위기법의 이 같은 허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미국 워싱턴대 등 공동 연구팀은 누적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북극곰의 생태적 민감도를 정량화해 2023년 8월 발표했다. 사냥터인 바다에 얼음이 없는 날, 북극곰의 강제단식기간(북극곰이 먹이를 먹지 못해 굶는 날), 북극곰 개체 수 변화 등과 누적 온실가스 배출량 사이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것이다. 축치해 15곳을 연구한 결과 이곳에 서식하는 북극곰이 먹이활동을 못해 굶는 날이 1979년에는 약 12일이었으나 2020년에는 약 137일로 11배 이상으로 길어졌다. 축치해의 대기 중으로 온실가스가 140억톤, 바렌츠해로는 160억톤 유입될 때마다 북극곰이 굶어야 하는 날이 하루씩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연구는 개별 활동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뿐 아니라 누적 온실가스의 영향을 파악했다. 1979~2020년 누적 온실가스 배출량과 '북극곰의 리크루트먼트(Recruitment·어미 북극곰이 새끼를 낳아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키울 수 있는 능력) 비율'을 조사한 결과 누적 온실가스 배출량이 리크루트먼트 비율에 영향을 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2020~2050년 미국 공공 토지영역의 활동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온실가스 241억톤은 서허드슨해와 축치해에서 북극곰의 리크루트먼트 비율을 각각 0.6%, 2.7%까지 감소시킬 것으로 전망했다. 마찬가지로 같은 기간 수백 개에 달하는 미국 발전소가 내뿜은 누적 온실가스 600억톤은 보퍼트해 북극곰 리크루트먼트 비율을 4%까지 감소시킬 수 있다.

◆남극의 펭귄도?=해빙이 감소하면서 펭귄의 개체 수도 감소한다. 남극 해빙이 줄어든 기간이 길었던 1970년대 후반엔 황제펭귄 생존율이 약 50%나 떨어졌다. 서남극 빙상과 남극 반도 전역에서 겨울 기온이 상승하고 해빙 넓이가 감소하면서 펭귄 생존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엘리펀트섬에 있는 턱끈펭귄 ⓒgreenpeace]

연구에 따르면 지구 표면 평균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막는다 하여도 황제펭귄의 약 3분의 1이 사라질 것이고, 나머지 3분의 2는 준멸종 상태에 처하게 된다. 만약 온도가 4도 상승하면 현재 개체 수의 92%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2020년 그린피스 탐험대는 남극에서 턱끈펭귄 개체 수를 조사했다. 턱을 가로지르는 얇은 검은 끈 무늬로 인해 턱끈펭귄이라고 불리는 이 종은 남극에서 가장 많이 서식하는 펭귄이다. 턱끈펭귄의 주요 서식지인 엘리펀트 섬에서 살아가는 32개 군집을 조사한 결과 1971년과 비교했을 때 모든 군집에서 개체 수가 감소했으며 전체 개체 수는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특히 77%까지 개체 수가 줄어든 군집도 발견되었다.

◆북극곰 생존 프로젝트=‘이쪽’ 분야에서 20년가량 일하면서 입에 자주 올린 대표적 단어가 북극곰이다. 친숙한 이미지 때문인지 강연에서 대중의 호응을 끌어내기 좋은 소재여서 많이 언급한다. 북극곰의 서식지인 북극의 얼음이 소멸하며 불가피하게 이 세기가 끝나기 전에 사실상 멸종할 것이란 예측. 그들의 고향에서 그들이 살던 대로 살아가게 할 방법이 없고, 난민캠프 같은 동물원에다 모시는 게 거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섬뜩한 이야기에 청중은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인다. 곧 졸던 사람은 다시 졸고, 나는 늘 하던 얘기를 계속 한다.

<북극곰 생존 프로젝트>(마인드큐브)란 책을 동료와 함께 냈다. 그동안 공저 포함해 40권 넘는 책을 써서 신간에 특별한 소회가 없지만, 이 책엔 약간 불편한 마음이 있다. 북극곰이 어떻게 죽어갈지, 북극해의 얼음은 언제 다 녹을지, 남극은 지구온난화에 안전한지 등 평소의 궁금증을 최대한 실증적으로 최신 자료에 근거해 정리해 냈지만 북극곰 생존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할 것 같아서다. 책을 냄으로써 나무만 더 베게 하겠지 하는 자조도 있다.
 
[입체표지_북극곰생존프로젝트]
원래 내가 생각한 제목은 ‘북극곰 멸종 프로젝트’였다. 출판사 요청으로 바꾸었으나 앞에서 책 내용을 소개하였듯 ‘생존’에 회의적이다. 북극의 묵시록을 정리하여 보여준 다음에 사람들에게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말해야 할 텐데, 그게 쉽지 않다.

루쉰(魯迅)이 ‘쇠로 된 방’ 이야기를 하며 탈출이 불가능한 방에서 잠들어 있는 사람을 깨우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물은 기억이 난다. 지금 인류가 처한 상황은 그 방보다는 분명 낫다. 그렇다고 루쉰이 말한 대로 여럿이 함께 걸어 희망의 길을 찾아낼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이 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희망의 근거가 없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품어야 한다는 시답잖은 정언명법이 우리 세대의 의무라는 정도의 얘기는 어쩌면 나눌 수도 있겠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