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화된 철강 탄소 장벽..."韓 기업 수소 경쟁력 위한 정부 지원 계속 돼야"

2024-12-09 18:30
EU·미국 등 탄소 장벽을 중국 저가 철강 막는 보루로
탄소중립 핵심 수소환원제철 개발 필요성 더 커져
포스코·현대제철 등 관련 설비투자 총력
탄핵정국에 정부 투자 멈출까 우려도

수소환원제철 개발센터 개소식. [사진=포스코]

중국산 저가 철강 공세를 막기 위해 유럽연합(EU)·미국 등이 탄소중립을 사실상 무역장벽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탄소중립에 부정적인 트럼프 행정부조차 관세를 대신할 대중 무역장벽으로서 철강 탄소중립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철강 탄소중립조차 저렴한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 가격으로 인해 브라질·중국 등이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차지할 것이란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포스코 등 국내 철강 업체가 이러한 글로벌 불공정 경쟁 상황에서 기술 우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일괄 계속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9일 철강 업계에 따르면 한국과 EU를 필두로 미국, 중국, 일본, 호주, 브라질 등 주요 철강 생산국에서 수소환원제철 사업을 위한 설비 투자에 속도가 붙고 있다.

수소환원제철은 석탄의 일종인 코크스를 활용해 철광석에서 산소를 분리하는 기존 고로 방식과 달리 수소를 환원제로 활용해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철강 탄소중립의 핵심 기술이다. 철강 생산의 부산물로 탄소 대신 물을 만드는 만큼 탄소 감축이 매우 어려웠던 기존 철강 산업의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EU를 필두로 미국·중국 등 전 세계 주요 국가는 2050~2070년까지 탄소중립을 추진하면서 수소환원제철을 탄소중립을 위한 핵심 기술로 꼽은 상황이다. 이는 산업의 쌀 역할을 하는 철강이 제조업 중 가장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힘든 업종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철강산업의 탄소 배출량은 1억969만9009톤으로 한국 총탄소배출량의 17.57%를 차지했다.
 
[사진=아주경제 DB]

탄소감축에 이어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포스코, 현대제철 등 국내 주요 철강 업체도 연구개발과 설비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선 탄소 배출량이 적은 전기로를 확대하고 향후 기존 고로와 전기로를 수소환원제철을 적용한 설비로 대체할 계획이다. 

포스코는 자체 개발한 수소환원제철 공법인 '하이렉스'의 핵심 기술인 수소유동환원로를 2030년까지 개발한 후 2050년까지 포항·광양제철소 고로의 절반 이상을 하이렉스로 전환한다는 탄소중립 로드맵을 세웠다. 하이렉스는 철광석을 가공한 펠렛을 활용하는 해외 업체 방식과 달리 철광석 분광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어 원료 확보가 용이하고 생산원가가 경제적인 이점이 있다. 현대제철도 탄소중립 생산체제인 ‘하이큐브’를 구축해 오는 2030년부터 수소 기반 저탄소 철강을 생산할 계획이다.

국내 철강 업계가 철강 탄소중립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EU·미국 등이 탄소를 무역장벽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EU는 오는 2026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전면 시행한다. 철강 등 주요 산업 재료에 EU 생산 제품과 동일한 탄소세를 역외 생산 제품에도 부과한다. 탄소 배출 규제가 느슨한 중국·브라질 등에서 생산한 저가 철강이 EU로 유입되는 것을 막으려는 행보다.

트럼프 행정부는 탄소중립 규제 철폐를 외치고 있지만 대중 견제를 위해 미국 내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에는 다양한 혜택을 제공할 것으로 예측된다. 윤지웅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원장은 "미·중 패권 경쟁과 트럼프 2기 출범에 따라 미국이 인공지능, 우주뿐만 아니라 수소환원제철처럼 과학기술 전 분야에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수소환원제철 연구개발 지원에 설비투자까지 포함하며 자국 철강 산업 발전을 이끌고 있다는 게 윤 원장의 분석이다.

이에 관련 기술력이 부족한 중국·브라질 등은 재생 에너지와 그린수소를 싸게 공급하는 등 정부 차원의 노골적인 지원으로 관세장벽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 기후단체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그린수소 가격이 킬로그램당 1달러까지 떨어질 경우 한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중국·일본·미국·EU·브라질·호주)에서 수소환원제철의 경제성이 기존 고로·전로를 넘어설 전망이다. 한국은 다른 국가보다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가 비싼 만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된다.

정부는 지난 10월 포스코가 수소환원제철 프로젝트 등 신산업에 총 72조원을 투자하는 것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다양한 정책적 지원을 하기로 했다. 특히 포항에 조성하는 20조원 규모 수소환원제철 단지에는 해상교통안전진단 면제(6개월 단축), 환경영향평가 신속 추진(2개월 단축), 매립 기본계획 반영절차 신속 추진(3개월 단축) 등 총 11개월의 행정절차를 단축해 착공 시기를 내년 6월로 앞당기기로 했다.

다만 업계에선 탄핵 정국이 장기화하면서 철강 탄소중립에 대한 정부 지원이 약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민동준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한국 철강 산업은 △미국과 통상 마찰 △중국산 저가 철강 △탄소중립 등에 따른 어려움에 처해 있다"며 "어려움 극복을 위해 수소환원제철 등 탄소중립 관련 기술 선택권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 만큼 정부 차원에서 관련 기술을 국가첨단전략기술로 지정해 연구개발 관련 지원을 하면 한국이 수소경제로 전환하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