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수의 절차탁마] 나만의 건설노동자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

2024-12-02 08:09

[이두수 작가]


날이 갑자기 추워졌다. 12월이 되었으니, 아니 겨울이 되었으니 날이 추워지는 건 당연한데도 추위에는 익숙하지 않다. 건설 현장에서 미장 일이란 것이 레미탈을 물에 개서 발라야 하기 때문에 아침나절에 일할 때는 손가락이 시려 몇 번이고 장갑을 벗어 손을 덥혀야 한다. 춥다고 몸을 움츠리기보다는 이렇게 움직이는 것이 몸에 좋다고 생각해 일하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요즘 연말이 다가오니 송년모임이나 동창회 관련 연락이 자주 온다. 나도 올해 고등학교 졸업 40주년 기념파티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언제나 청춘인 줄 알았는데 내 나이도 어느덧 60줄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내 의식과 행동은 아직도 미숙하고 의욕만은 청년 같지만 생물학적 나이는 곧 노인임을 알려주고 있다.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65세부터 노인으로 대우한다. 이 법적 기준이 마련되던 1981년 당시 평균 기대수명은 67세였다고 하는데, 이런 기준에서 보면 현재 평균기대수명이 84.4세이니 노인 기준은 최소 80세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어쨌거나 이번 기회에 내가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보고 앞으로 맞이할 40년은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나는 이 세상에 무엇을 하려고 나왔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제법 일찍부터 인생 목표에 대해 생각해 봤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그때그때에 맞추어 살아온 거 같다. 우선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삶의 궤적을 그려본다.

나는 아버지 덕분에 실제 나이보다 세 살이나 줄어 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아버지는 출생신고를 늦게 했다. 그래서 국민학교에 들어갈 때 학교에서 너무 어려 입학 불가라고 했지만 아버지의 간곡한 사정과 설명으로 겨우 입학했다. 두촌에서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는 집을 떠나 춘천에서 다녔는데 대학에 한 번 미끄러져 1년 재수를 하게 되어 실제로는 4년 다닌 셈이다.

대학에 들어가서 도중에 군대 갔다오고 해서 졸업하는 데 7년 걸렸다. 결혼하고 일본에 건너가 7년, 그리고 한국에 왔다가 다시 미국으로 왔다 갔다 하며 7년을 보내니 마흔 살이 되었다. 그동안에 아이를 3명이나 얻었다.

그후 북해도에서 평화네트워크 4년, 일한문화교류회에서 4년,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에서 4년, 글로벌피스재단에서 2년 그리고 현재 건설 현장에서 6년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 삶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햇수를 보면 미등록기 3년- 초등 유년기 12년- 고등과정 4년- 한국, 일본, 미국에서 생활 21년, 그 후 4년 주기로 평화, 문화, 국제개발협력, 노동에 관여한 삶을 살고 있다. 아마 차원은 다르겠지만 후반기 삶도 이런 패턴으로 다시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삶은 일직선으로 진행되어 온 거 같지만 생각해 보면 반복되는 측면도 있다. 나는 대학생활 내내 야학활동을 운영했다. 졸업 후에는 청소년 문화교실과 주부학교까지 운영하며 사회 변화에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여기서 교육은 피교육생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교사의 활동 자체가 매우 교육적이라는 것이다. ADRF 활동은 이 야학활동의 글로벌 버전으로 아프리카·아시아 저개발 국가 아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금은 잠시 교육 현장을 떠나 있지만 언젠가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다. 이번에 돌아가면 100만 교육봉사자 양성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싶다.

전 세계 누구나 이 프로젝트에 동참할 수 있다. 자기가 가진 재능과 지식을 어려운 사람,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가르치는 봉사를 하는 것이다. 장소, 시간, 교육 내용은 모두 봉사자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 이름도 정했다. 에드볼룬(Edu-Volun)이라 이름 지었다. 이런 교육봉사자들이 전 세계에 100만명이나 움직이고 있다면 세계는 크게 변화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이다.

나는 한류가 이런 면에서 큰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 생각한다. 한류는 한국만의 문화콘텐츠가 아니라 하나의 인류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흐름이라 생각한다. K-팝 가수들의 볼룬티어 활동은 그 어느 때보다 영향력이 크다. 이들이 전 세계를 돌면서 교육 기회 확산을 위한 채리티 공연을 이어간다면 엄청난 호응이 일어날 것이다. 

이와 연계해서 100만 엽서그림전시회도 생각하고 있다. 한 주제를 놓고 전 세계 100만명, 특히 어린이들이 참여하여 엽서에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여는 것이다. 이것은 평화와 인권과 자유를 위한 한목소리의 기도가 될 수 있고 외침이 될 수 있다. 이보다 더 큰 호소력이 큰 행사가 있을까. 모두 디지털문화에 익숙해 연필로 그리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인간으로서 최소한 자기 생각을 이미지화해서 자기 손으로 직접 표현하는 데에는 엽서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할석 미장공으로 일하는 건설 노동자로서 이런 일을 어떻게 이루어갈 것인가는 향후 나의 과제지만 꿈꾸는 노동자로서 이것이 나의 삶의 목표다. 이 일을 위해 나는 일상에서 이런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첫째는 할석 미장공으로서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내가 일한 곳에서는 절대 하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며 누가 보더라도 깔끔하게 일을 잘했다는 평가가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일을 대충하면 계속해서 다시 손을 봐야 한다. 그것은 나 스스로도 일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한번 손을 대면 그것이 마감이라는 마음가짐으로 꼼꼼하게 일하는 것이다.

나는 독서하는 노동자가 되는 것이다. 일주일에 책 2권을 읽는다. 1년이 52주니까 1년이면 100권을 읽게 된다. 이 일을 10년 계속해야 겨우 1000권 읽는 것이다. 이번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씨와 더불어 올해의 작가상을 받은 사람이 개그맨 고명환씨다. 그는 독서를 통해 자신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현실로 증명해 낸 분이다. 우리 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물론 정치인들의 노력이 중요하겠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 스스로가 자신을 혁신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자기 혁신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역시 독서만 한 것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독서는 책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글쓰기로 이어질 것이다. 언젠가 나에 대한 호칭이 작가로 바뀌었다. 몇 군데 칼럼을 쓰긴 하지만 그것으로 작가 타이틀이 붙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작가 타이틀이 맘에 든다. 그래서 일주일에 칼럼 1개씩 쓰기로 맘먹었다. 1년이면 52개 칼럼이 된다. 이 정도면 책 1권을 낼 수 있다. 그래서 매년 출판 기념회를 여는 것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노동자가 되는 것이다. 지금도 매일 일기 쓰듯이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기분에 따라 들쑥날쑥 이다. 자신을 너무 압박하는 것 같아 일주일에 2점 그리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취미가 부담이 되어서는 지속적으로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기 위해 약간의 여유가 필요함을 느꼈다. 이 그림으로 매년 전시회를 4회 연다. 최근엔 어찌된 영문인지 매년 해외에서 한 번씩 전시회를 열고 있다. 작년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었고, 올해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프린지 축제에 참가했다. 내년부터는 아프리카, 아시아 쪽에서 현지 아동들과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나는 운동하는 노동자가 되는 것이다. 건설 노동 자체가 몸으로 하는 일이니 그 자체가 운동이라 할 수 있지만 튼튼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운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금도 출퇴근을 뛰어서 하고 있긴 하지만 좀 더 체계적인 운동이 필요하다. 매주 주말이면 10㎞ 달리기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하프마라톤에 출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1년에 한 번은 풀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다.

이렇게 다져진 체격을 보디프로필 사진으로 남길 것이다. 소방공무원이나 경찰공무원들이 매년 보디프로필 사진을 찍어 달력을 만들어 배포하는데 나도 건설노동자를 대표해서 보디프로필 사진을 찍어 달력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기도 하다.

건설 현장에 젊은 인력이 더 많이 유입되게 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좀 더 깨끗한 화장실과 샤워실을 갖추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장에 체력단련실을 만드는 것이다. 안전한 환경은 튼튼한 체력을 만드는 것이 최상이다. 세 번째는 군대에 진중문고가 있듯이 건설 현장에도 현장문고가 있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쉬는 시간에 다들 잠자는 것만 원하는 것은 아니다. 휴게실에 인문서적과 안전, 자기계발을 위한 책이 있다면 안전교육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는 건설노동자도 각 개인이 탁월함을 보여줘야 할 때가 되었다. 건설 현장에서도 대중스타가 나와야 한다. 몸 좋고 얼굴 잘생긴 젊은이가 땀 흘리며 내 나라 건설에 혼신을 다하는 모습, 능숙한 외국어로 외국인 노동자들과 어울리며 함께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얼마나 보기 좋은가. 모험과 스릴을 느끼면서 고층에서 일하는 현장 모습은 어드벤처 장소가 되어 얼마든지 젊은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건설노동자들도 자기 명함을 가지고 퍼스널 브랜드 관리를 해야 한다. 자기 실력과 경험을 널리 알려야 자기 몫의 역할과 보수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은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한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자신의 전문성을 높이는 이런 노력은 건설업의 장인이나 명장,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될 것이다. 퍼스널 브랜드 관리는 이렇게 자신감과 자존감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관리하는 힘을 준다. 그리고 더 많은 네트워킹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와 경력 발전에 도움을 줄 것이다.

노동 해방은 일하지 않고 편히 노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노동 해방은 노동을 고통이나 고역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노동을 즐기는 것이다. 일하는 즐거움, 일하며 느끼는 보람, 성취감, 만족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의 생산성 향상과 나의 기술과 기능의 혁신 그리고 나의 지식능력과 재능을 무한히 확장시키는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40년이 그런 날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 품품이다. 
 
내년에 주목받을 사람, 꿈꾸는 건설노동자의 자화상. '꿈꾸는 사람만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노동 해방을 위해 그는 오늘도 즐겁게 일하고 있다. <그림 이두수 작가>


이두수 작가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건설 현장의 안전을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노동자의 인문학적 소양 계발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생활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