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만원→67만원?…'주주환원' 신뢰 저버린 고려아연

2024-11-04 06:00
금융감독원 "자본시장 핵심인 밸류업, 지배구조 이슈의 나쁜 사례"
자사주 취득·소각과 함께 유상증자 상환 계획도 세운 것으로 의심

그래픽=허하영 기자



금융감독원이 고려아연의 유상증자와 관련해 이례적인 수준의 강경 발언을 내놓으며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고려아연측을 향해 정당한 근거를 갖고 의사결정을 하는지 의심이 된다며, 자본시장의 핵심인 밸류업, 지배구조 개선 이슈와 맞닿아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공개매수 전에는 밸류업 공시를 내놓더니 공개매수 종료 후에는 손바닥 뒤집듯이 유상증자로 그 비용을 주주들에게 전가하겠다고 밝혔다는 점에서 금감원의 칼끝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을 겨냥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지난달 2일 밸류업 공시에 참여하며, 오는 2026년까지 3년 평균 주주환원율을 최소 40% 이상으로 유지, 유보율 8000% 이하 유지를 목표로 하는 주주환원 강화책을 발표했다.
 
해당 목표는 고려아연이 기존에 발행된 주식 총수의 15%를 주당 80만원에 취득했을 경우다. 고려아연이 최소 2조5000억원은 사들여야 앞서 언급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고려아연은 유동주식수 감소를 이유로 지난 30일 이사회를 통해 373만2650주(2조5009억원)를 일반공모 방식을 통해 유상증자하기로 의결했다고 공시했다. 신주 가격은 1주당 67만원으로 밸류업 공시에 기재한 가격(80만원)보다 16% 낮다. 스스로 밸류업 공시를 뒤엎은 것이다. 
 
고려아연은 이번 증자로 조달한 자금 중 2조3000억원은 차입금 상환에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회사가 시가보다 비싸게 매입한 주식을 다시 싸게 팔아서 빚을 갚겠다는 얘기다. 급할 때 돈까지 빌려서 주식을 비싸게 샀는데 이제 덜 급해졌으니 싼 가격에 새로 주식을 발행해 팔아 빌린 돈을 갚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회사 가치가 하락한다. 
 
이에 따른 주주의 반감은 유상증자 발표날 하한가(108만1000원)로 나타났다. 차입금, 자사주 공개매수, 유상증자 모두 고려아연의 최윤범 회장 일가 구하기라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금융투자 관계자는 “정치권, 법원 모두 편을 들어줬는데도 고려아연은 유상증자 대부분을 차입금 상환에 쓰겠다고 말했다”면서 “주주환원은커녕 기업 스스로 주주가치를 끌어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거버넌스포럼은 논평을 통해 “유상증자 계획은 회사의 주인이 전체 주주라고 생각한다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발상”이라며 “고려아연 일개 기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키울 것”이라고 질타했다.
 
금융감독원도 전방위 조사에 나섰다. 함용일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회계 부문 부원장은 지난 31일 “상장법인의 공개매수, 합병 및 분할 등 과정에서 드러난 행태를 보면 과연 상장법인의 이사회 멤버들이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합리적이고 정당한 근거를 갖고 의사결정을 하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하며 고려아연의 의사결정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현재 금감원은 고려아연 이사회가 공개매수로 자사주를 취득해 소각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면서 이를 유상증자로 상환할 것이라는 계획을 함께 세웠지만 이를 고의로 누락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통상 유상증자 계획은 업무 집행까지 1~2개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조사 과정에서 최윤범 회장이 어느 시점에 유상증자 계획을 인지하고 시행하기로 결정했는지 여부도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논란이 불거지자 고려아연측은 “회사가 일반공모 증자를 검토한 것은 지난달 23일 자기주식 공개매수 종료 이후”라며 “실사보고서에 10월 14일부터라고 기재된 것은 착오로 잘못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측은 “고려아연의 해명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며 “설령 맞다고 해도 이 역시 투자자를 고려하지 않은 졸속 처리에 불과하다”고 맹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