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미국 대선 후 닥칠 '분열의 후폭풍' …한국 정치도 '닮은꼴'
2024-11-04 06:00
미국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닥쳤지만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혼전의 양상이 계속된다.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의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엎치락 뒤치락하며 아주 박빙의 차이를 보인다. 역시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애리조나, 조지아 등 7개 경합주에서 판가름이 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누가 승리하더라도 확실한 것은 이번 선거를 통해 미국 사회가 더욱 분열되고 갈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트럼프가 패배한다면 선거 결과 시비가 붙을 것이고 이는 극심한 사회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이렇게 분열된 양상은 비슷한 정치 환경을 갖고 있는 한국에 불길한 전조가 된다.
미국 사회의 분열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8년 전 2016년 대선이다. 그 전에도 민주, 공화 양당은 진보와 보수라는 기본적인 이념 차이가 당연히 있었다. 감세를 통해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공화당과 복지 확대를 위한 정부 역할을 강조하는 민주당 간 태생적인 차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등장으로 이러한 차이는 사회 다른 분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경제뿐 아니라 외교, 안보, 사회, 문화, 종교 등 모든 분야로 넓혀갔다. 특히 트럼프가 대중 영합적인 반이민 정책을 들고 나오면서 이 차이는 이념의 문제를 넘어서 소위 문화 전쟁(culture war)으로 이어졌다.
이민자를 통한 다양성과 포용성을 중시하는 민주당은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 보호에도 앞장서기 때문에 트럼프의 등장 후 공화당이 더욱 강력하게 내세우는 가족 등 전통적 가치와 크게 충돌하게 된다. 거기다 트럼프 재임 시 임명된 보수적인 대법관들이 주도해서 미국의 낙태권 허용 판례를 수십년 만에 뒤집은 사건은 양 당간 대결을 더욱 극명하게 만들었다. 여성의 생식권 보호라는 가치와 생명의 존중이라는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양 당의 정책 차이는 미국 사회를 완전히 갈라놓은 계기가 되었다. 낙태를 반대하는 기독교 복음주의 세력까지 고려하면 이러한 괴리는 메꾸기 어려워 보인다.
이런 여파로 민주당의 해리스 후보는 전반적으로 진보적인 유권자, 그리고 여성의 지지를 많이 받는 반면, 트럼프 후보는 보수적 유권자, 그리고 남성의 지지가 더 높게 나타난다. 특히 20대, 30대 MZ 세대에서 트럼프는 남성의, 해리스는 여성의 지지를 절대적으로 받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6-7년 전 시작된 미투 운동으로 인해 여성들의 목소리와 여권이 커지고 남성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었기 때문인데 이번 대선을 치르며 이 추세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 젊은 세대의 간극은 향후 미국 사회의 성별간 갈등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다.
이쯤에서 미국과 한국의 현실을 비교하면 놀라운 유사성이 발견된다. 진보를 앞세우는 한국의 민주당은 여성은 물론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지지를 많이 받고 있고 반면 국민의힘은 남성, 그리고 주류 사회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 미국과 거의 같은 상황이다. 진보적 시민 단체가 대체적으로 민주당 편이고 보수적 종교계, 특히 기독교가 대체적으로 국민의힘 편이라는 점도 미국과 비슷한 상황이다.
경제 정책에 있어서 미국과 한국의 유사성은 더욱 확연하다. 이는 양당제를 체택한 양국의 정치 체제에서는 어쩔 수 없어 보인다. 미국의 민주당처럼 한국의 민주당 역시 복지 강화, 중소기업 보호 등을 주요 경제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미국 공화당처럼 감세를 지향하고 대기업 위주의 시장 경제 활성화를 통한 낙수 효과를 겨냥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대도시에 거주하는 고소득, 고학력자들이 민주당 해리스 편에 있고 중소도시나 시골의 저소득, 저학력자들이 공화당 트럼프 편에 있다. 한국에서도 국민의힘은 소득이 높은 서울, 특히 강남의 지지를 받고 민주당은 그 이외 지역에서 지지를 받고 있어 미국처럼 양극화된 모습을 보인다.
이렇듯 경제, 사회 등 국내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과 한국의 양 정당이 비슷하지만 대외 정책에 있어서는 큰 차이를 보여 눈길을 끈다. 즉 대외 정책에 있어 미국의 민주당은 한국의 국민의힘과 비슷하고 공화당은 한국의 민주당과 유사해지고 있다. 국내 정책과는 정반대이다. 특히 트럼프 등장 이후 공화당은 전통적인 자유무역 옹호 정책을 버리고 보호주의를 추진해서 국민의힘보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국내 산업 보호를 중시하는 한국의 민주당과 비슷해진다. 반면 노동자 보호를 중시하고 자유무역에 부정적이던 미국 민주당은 트럼프의 과도한 관세 및 보호정책을 비난하며 오히려 국제 교역 활성화를 지향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정책에 더욱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출현한 후 나타난 공화당의 또 다른 변화는 미국의 고립주의다. 유엔 등 국제 기구의 역할을 폄하하고 나토 등 동맹과의 관계를 경시하는 지금의 공화당 모습은 분명 예전과 다르다. 어떤 의미에서는 동맹 관계만큼 자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국의 민주당과 비슷한 점이 보인다. 미국의 민주당은 어떠한가? 기후, 환경, 질병, 난민 등 세계적인 문제에 있어 국제 기구 및 국제 협력의 역할을 인정하고 이러한 문제에 있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려 한다. 이런 모습은 어찌 보면 한국의 현 보수 정부에서도 발견된다.
다시 말해 국내 문제에 있어 미국의 민주당은 한국 민주당과 비슷하고 공화당은 국민의힘과 비슷하다는 얘기다. 반면에 대외 문제에 있어 미국 민주당은 국민의힘, 공화당은 한국 민주당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세계 정세의 변화에 따라 양국의 정당들의 이념 지향이 자꾸 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양 정당 간의 이념, 정책, 철학 차이는 갈수록 커진다는 점이다. 이번 대선 후 미국에 불어닥칠 분열의 후폭풍은 바로 오늘과 내일의 한국의 모습이다.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