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2.5조원 유상증자' 승부수 통할까...칼자루는 법원으로

2024-10-30 17:05
최윤범 회장 우군 우리사주조합에 20% 우선 배정
유상증자 성패에 따라 지분율 역전도 가능
MBK·영풍, 유상증자 금지 법적대응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고려아연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이끄는 고려아연 이사회가 MBK파트너스·영풍 측 임시 주주총회 소집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면서 2조5000억원대 유상증자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고려아연은 30일 이사회를 열고 일반공모 증자의 건을 의결했다. 총 모집 주식 수는 373만2650주며 고려아연이 공개매수에서 취득한 소각 대상 자기 주식을 제외한 발행 주식 수 대비 20%에 해당하는 규모다. 주당 발행가는 67만원이다.

유상증자로 조달할 자금은 약 2조5000억원이다. 그중 2조3000억원은 채무 상환 자금으로 쓰고, 나머지 1350억원과 658억원은 각각 시설자금, 타법인 증권 취득에 사용할 예정이다.

고려아연은 총 모집 주식 가운데 80%는 일반공모를 실시하고 20%는 법에 따라 우리사주조합에 배정할 방침이다. 특히 고려아연은 특별관계자에는 총 모집 주식 수 중 3%인 11만1979주 내에서만 배정할 방침을 세우며 MBK·영풍 측 추가 지분 확대를 막았다.

고려아연은 유상증자와 관련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통해 ‘국민기업’으로 도약을 추진할 것"이라며 "소액주주와 기관투자자, 일반 국민 등 다양한 투자자가 주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소유 분산을 통한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다만 IB업계에선 이번 유상증자를 놓고 MBK·영풍 측 지분 확대를 견제하는 동시에 최 회장 측 우호세력인 우리사주에 신주를 우선 배정해 최 회장이 지분 구도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계획으로 보고 있다. 

현재 최 회장 측(35.4%)과 MBK·영풍(38.47%) 간 지분율 격차는 약 3%포인트다. 시장에선 유상증자가 성공하면 우리사주 지분이 더해져 최 회장 측 지분율은 36.11%로 늘어나고, MBK·영풍은 35.56%로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0.6%포인트로 근소한 차이지만 최 회장 지분율이 MBK·영풍을 앞서면서 단번에 상황이 역전된다.

이번 유상증자로 최 회장은 고려아연 백기사(우호지분)를 확보할 수 있는 추가적인 시간도 벌게 됐다. 제3자 배정이 아닌 만큼 최 회장이 새로 확보한 우호세력이 백기사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고려아연 지분 9.7%를 보유한 한화와 LG화학 외에도 신규 백기사를 확보하기 위해 투자자 설득에 지속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유상증자와 관련해 MBK·영풍은 즉각 반발하고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들은 고려아연 유상증자 공시 이후 입장문을 내고 "최윤범 회장은 고금리 차입금으로 주당 89만원에 자기 주식 공개매수를 진행해 회사에 막대한 재무적 피해를 입혀 놓고선 그 재무적 피해를 이제는 국민의 돈으로 메우려 하고 있다"며 "이번 고려아연 유상증자 결정을 저지하기 위해 모든 법적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MBK·영풍은 고려아연 유상증자에 대응하기 위해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법원이 다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셈이다.

법원이 가처분 기각을 결정하면 고려아연은 곧바로 경영권 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반면 법원이 영풍·MBK 측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 경영권 분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고려아연 지분 7.83%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로 주목받게 될 전망이다.

한편 이날 고려아연 이사회는 MBK·영풍이 요구한 신규 이사 선임 등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 소집 청구를 보류하며 사실상 거부했다. MBK·영풍은 조만간 법원에 임시주총 소집 신청을 할 전망이다. 법원 신청과 결정을 받아내는 절차에 최소 1~2개월 걸리는 만큼 실제 임시주총은 일러도 올해 말 또는 내년 초 열릴 것으로 예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