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책임감 있는 금융정책 집행 이뤄져야

2024-10-27 17:00

금융부 장문기 기자
직장생활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서 ‘결재’는 책임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단어로 사용된다. 일반 직장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이를 더욱 강조해 극적인 장치로 활용한다. 예를 들어 부하 직원이 주도해 추진한 사업의 결과물이 좋지 않아 괴로워할 때 “결재한 내 책임”이라며 위로하는 직장 상사의 모습은 어느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장면이다.

실제로 공식적인 문서가 지니는 힘은 상당하다. 문서를 통해 사후에 업무가 어떤 식으로 진행됐는지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도 있고, 업무를 절차대로 처리했다는 증거를 남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책임소재를 규명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따라서 모든 업무의 기반은 문서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전화로 은행에 디딤돌 대출 취급 일부 제한을 요청한 것을 두고 “책임을 은행으로 돌리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평소 정부와 은행의 관계, 가계대출 증가세 관리가 강조되는 현재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은행은 국토부 ‘요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공문 등 공개적인 방식을 활용해 절차대로 진행했더라도 ‘관치 논란’이 불거졌을 가능성은 있다. 최근 주요국 기준금리는 내렸지만 대출금리는 오르는 점, 은행이 심사를 강화해 가계대출을 받기 어려워진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어떤 정책을 펴더라도 잡음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최근 공개적으로 은행 가계대출 정책을 비판했다가 국정감사에서 ‘과도한 개입을 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개입 방식 부분 등에서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가계대출 추세를 꺾지 않았으면 최근 기준금리 인하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이 원장의 시장 개입에 대한 가치판단을 떠나서 정책집행자로서 행위를 인정하고 책임지려는 모습에 눈길이 간다. 정책집행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비판을 받더라도 절차를 거쳐 이를 강행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술이 필요한 곳에는 고통이 따르더라도 칼을 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만에 하나 그게 잘못된 판단이었더라도 절차를 밟아가면서 더 나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국내외 금융시장을 봤을 때 앞으로도 당분간은 금융당국이나 관계 부처의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고금리가 장기간 지속된 탓에 언제든 부실채권 관련 문제가 불거질 수 있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돌발변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계부채 증가세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최근 통화정책이 완화 기조로 전환한 것도 금융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나 관치금융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장실패가 우려된다면 법·제도가 정한 권한 내에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 투명해야 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그것이 정부의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