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재편 재시동 건 두산…에너빌리티 주주 달래기 총력
적시 설비 증설 위해 1조 투자 재원 마련 목표
행동주의 펀드, 금융당국 등 설득 주요 과제로
두산그룹이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떼어내 두산로보틱스의 자회사로 두는 사업 구조 재편안을 다시 추진한다.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합병하는 기존의 계획을 철회하고, 계열회사로 편입하는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두산에너빌리티 소액주주들의 불만을 반영해 기존 비율보다 두산로보틱스 주식을 더 받도록 합병 비율도 재산정했다.
이번 결정은 두산그룹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다만, 금융당국의 심사 통과 등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았다는 지적도 함께 나오고 있다.
두산그룹은 21일 이사회를 열고 두산로보틱스와 두산에너빌리티 합병 비율을 기존 1 대 0.031에서 약 39% 오른 1 대 0.043으로 재조정하는 안을 의결했다. 이와 함께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미래 계획에 관해 설명했다.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대표는 "이번 이사회 의결로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100주를 보유한 주주는 분할합병 후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88.5주와 두산로보틱스 주식 4.33주를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 추진했다가 금융당국과 주주들의 반발로 철회했던 에너빌리티 주식 75.3주와 로보틱스 주식 3.15주를 받는 구조에서 두산에너빌리티 주주에게 더 유리한 조건으로 변경한 것이다.
두산그룹의 사업구조 재편은 핵심 산업에 집중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전략으로 평가된다.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와 전력 수요의 급증 속에서, 원자력 및 소형모듈원자로(SMR)가 새로운 해결책으로 부상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향후 5년간 연간 4기 이상의 대형 원전과 SMR 제작 시설 확충을 목표로 하며, 이를 통해 시장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두산밥캣의 분할을 통해 약 1조 원 규모의 신규 투자 여력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차입금 7000억 원을 줄이고 비영업용 자산 매각을 통해 5000억 원 규모의 현금을 확보할 예정이다. 이 자금은 설비 투자와 운영 자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하지만 두산그룹이 에너빌리티와 로보틱스 합병을 성사시키려면 주주들의 반발 등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는 지난 15일 두산밥캣 이사회에 주주 서한을 보내 두산로보틱스와의 합병 재추진 중단을 요구하며 독립 경영을 통해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두산밥캣 지분 1%를 보유 중인 얼라인은 △주식매수청구권에 활용하기로 했던 1조5000억원 특별배당 계획 △전 세계 동종 기업 수준의 주주환원율 △이사회 개편 및 독립성 확보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적 압박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국회에서 두산 계열사의 합병 논란을 두고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라는 지적이 제기됐고, 금융당국 역시 주주 친화적인 방향으로 증권신고서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국정감사에서 두산 계열사의 합병 계획에 대해 “주주들의 권익 보호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금감원의 적극적인 심사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
정치적 논란이 지속될 경우 두산그룹이 주주총회에서 합병 승인을 얻는 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 등 기관 투자자들이 반대할 경우 소액주주들의 표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두산그룹은 우선 금융감독원의 심사를 거쳐 정정신고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정정신고서가 별다른 반려 없이 통과되면 제출 후 10일째 되는 날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이후 주주총회를 소집해 약 2주 뒤 주주들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이번 사업 재편을 통해 원전 사업의 르네상스를 이끌고, 미래 성장 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소액주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