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한국 제조업, 여기서 중국에 더 밀리면 끝장이다

2024-10-12 10:02

[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세계 시장에서 중국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15%에 육박한다.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작업에 계속 속도가 붙고 있지만 ‘세계의 공장’ 중국의 위상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서방의 제재를 비웃기라도 하듯 중국 기업은 전혀 위축되지 않는 분위기다. 지구촌 소비자들이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할 정도로 중국 상품의 위력은 압도적이다. 최근 중국 내수 경기가 신통치 않으면서 중국산의 해외시장 진출이 훨씬 더 증가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중국산 범람에 따른 우려와 마찰이 확산하는 추세다. 진입 장벽을 높이지만 저가 상품에 익숙해진 소비자의 익숙해진 경험과 구매 패턴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중국산에 대한 반감도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친다.
 
한국 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산과 함께 하는 우리 일상이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듯하다. 소비자로선 선택의 범위가 넓어지고 품질에 큰 차이가 없으면 당연히 가성비가 좋은 상품에 지갑을 열기 마련이다. 일반 소비재와 달리 우리가 모르는 여타 공산품에서까지 중국 제품의 한국 시장 침투는 의외로 매우 심각하다. 특히 국가 보안과 관련된 분야에까지 싸다는 것을 이유로 중국산이 버젓이 설치된 것을 보면 놀랍다. 경찰청이 전국 경찰 관서에 사용할 보안카메라의 90%가 국가 기밀 해킹 혹은 탈취 가능성이 농후한 중국산으로 바꾼다. 중소기업 제품 구매 촉진 조달 제도를 악용하여 저가의 중국산을 한국 상표로 둔갑시켜 납품하는 관행에 아무런 손을 쓰지 못한다고 하니 아연실색케 한다.
 
비단 이뿐이겠는가. 국가 인프라에까지 중국산 진입에 대한 염려가 어제오늘에 있었던 일이 아니다. 지난 정권이 태양광 보급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면서 결과적으로 중국산 태양광 패널 업체 배 불리기만 해주었다는 비판이 거세다. 중국 국내 수요 부족으로 인한 공급 과잉에 직면한 중국 기업에 공급 루트를 마련해 주면서 마치 짜고 치는 꼴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떼돈을 챙기려는 엉뚱한 국내 브로커들이 개입하는 꼴불견도 나타났다. 미국과 같은 국가는 국가 안보나 산업에 치명적 피해가 우려될 시에는 과감하게 중국산 수입 전면 금지 조처를 단행하지만 우리는 이마저도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 중국의 더 큰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현실을 역이용, 한탕 하려는 악덕 업자만 늘어난다.
 
무역 현장에서 보면 딜레마가 더 커진다. 중국산 공세로 인해 국내에서 생산을 포기하는 제품의 수가 갈수록 증가한다. 채산성을 맞출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사업을 접는 경우가 허다하다. 해외시장으로부터 수입 문의가 있어도 대응을 하지 못하고, 국내 시장은 그 공백을 중국산으로 채워진다. 실제로 중국 기업이 못 만드는 혹은 안 만드는 제품이 없을 정도로 그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가격 차이를 품질 격차로 극복한다고 하지만 그 갭이 점점 좁혀져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설 자리가 없어진다. 최후 수단으로 수요가 있는 현지 시장에 나가 생산을 이어가지만 중국 기업의 해외 진출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어 어디에도 안전지대가 없다. 중국 제품과 경쟁을 피할 방도가 보이지 않는다.


'팀 코리아’동력은 해외 아닌 국내에서 발원되어야
 
중국 시장에서 쫓겨난 한국 기업이 노리는 동남아(ASEAN) 시장에서도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미·중의 경쟁 확대 여파로 한국인들이 ASEAN을 제3의 협력 대상으로 인식하지만 당면한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이 지역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과거와 같지 않다. 일본에 이어 2위 자리를 간신히 유지하다가 중국의 영향력 확대로 이마저도 크게 위협을 받는 상황이다. 싱가포르 동남아 연구소(ISEAS)가 ASEAN 여론 주도층을 대상 조사를 보면 응답자들은 미국과 중국을 6대4 정도로 택할 정도로 실리적 입장을 견지한다. 미·중 이외 대안적 파트너에 대한 인식은 일본이 30%에 달하고 호주와 인도가 10%에 육박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한국은 5~6%대에 그친다. 우리만의 생각으로 안일하게 접근하다가는 큰코다칠 수도 있다.
 
20년 만에 다시 중국 정부가 자국 제조업의 구조조정에 열을 올린다. 미국 등 서방의 전방위적 공급망 재편 압박에 대응하면서 국내외 수요 대비 공급 과잉으로 설비를 축소 조장하는 칼을 빼 들었다. 기업의 난립을 해소하기 위해 경쟁력 있는 기업이 없는 기업을 인수·합병하면서 선별 금융 지원을 통해 기업의 덩치를 키움과 동시에 경쟁력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찍은 전기차 등 자동차 시장에서는 중국차 기술 유출 단속까지 나섰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맞설 기세다. 이런 기류로 인해 미국에 이어 독일이나 일본 등 제조 강국들도 고강도 구조조정에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공장 폐쇄와 인력 축소를 서두른다. 물밑에서 각국 정부가 기업 회생 지원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눈을 안으로 돌려보면 우리는 너무 태평하고 무사안일하다. 정부나 기업은 따로 놀고 정치권은 기업의 발목을 잡지 못해 안달하는 꼴이다. 정치권은 순진한지 무식한지 세상 돌아가는 판세에 눈과 귀를 막고 있고 천방지축이다. 일례로 갖은 노력을 통해 소·부·장 국산화에 성공해도 시장에서는 철저하게 외면당한다. 저렴한 중국산이나 오랜 관행에 젖어 일본산을 그대로 사용한다. 정부가 공급망 안정화 품목으로 정해 놓은 185개 소재 분야에서 이런 유사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중국 기업은 정부의 전폭 지원을 등에 업고 뛴다. 미국이나 독일, 일본 기업까지 정부의 보조금 지원과 수입 규제·산업 보호 정책 등으로 재기의 칼날을 세운다. 여기서 더 밀리면 한국 제조업의 미래가 암울할 수밖에 없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