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봇의 역설] 금리 인하 뒤 위기 왔다…"건전성 관리 계속해야"

2024-10-09 18:00
차주 상환능력 임계점…경기 둔화 우려도
"금리 인하만으로는 문제 해결 힘들 수도"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년 6개월 만의 기준금리 인하 방침을 설명하고 있다. 이날 연준은 이틀간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마무리하면서 기준금리를 기존 5.25∼5.50%에서 4.75∼5.0%로 0.5%포인트 내리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워싱턴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을 시작으로 글로벌 통화긴축 기조의 전환이 본격화되고 있다. 차주들을 짓누르던 고금리 기조에서 벗어나는 것이지만 그간의 상황을 살펴보면 오히려 금리인하기에 경제가 둔화할 수 있는 만큼 지속적인 건전성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빅컷'(기준금리 50bp 인하)을 단행하면서 주요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사이클이 본격 시작됐다. 한국은행은 오는 11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3.50%에서 0.25%포인트 내릴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통상 금리가 떨어지면 차주들의 금리 부담이 줄어들어 취약부문의 대출 건전성은 개선된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은 이자 부담을 덜어 신규 연체 가능성이 낮아지고, 부동산 거래가 늘어 PF 사업성이 좋아지면서 관련 대출의 건전성이 개선될 여지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금리 인하 자체가 경기 위축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소비 심리를 제한하거나 실물경제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계부채 폭증을 추가로 부추길 우려가 있는 만큼 금융당국의 가계대출·부동산 대책이 시험대에 설 가능성도 있다. 취약차주의 상환능력이 임계점에 도달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로 2000년 들어 미 연준이 큰 폭의 금리 인하를 단행한 것은 △2000년 닷컴버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위기 등 총 3차례에 불과하며 이 시기 모두 경기가 경착륙하며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됐다.

예를 들어 시장 위축 가능성을 감지한 미 연준은 2007년 9월부터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으나 정확히 1년 후인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는 파산했다. 금융위기 초반 유동성 공급, 정책금리 인하에도 급격한 경기 침체를 막기엔 역부족이었고, 총 10차례에 걸친 추가 인하와 제로금리에도 전 세계는 2009년까지 금융위기를 겪어야 했다.

국내에서도 저축은행 건전성 문제가 불거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은행은 2012년 7월 기준금리를 3.25%에서 3%로, 10월엔 2.75%로 빠르게 낮췄다. 하지만 시장은 2014년까지 30여 곳의 저축은행이 무너진 뒤에야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오히려 지금과 같은 금리인하기에 금융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장은 “최근과 같이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선 금리가 낮아져도 실적이 개선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통화정책의 변화만으로 건전성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며 "원금은커녕 이자도 갚지 못하고 빚으로 연명하는 자영업자나 한계기업이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인 부동산 PF와 제2금융권의 건전성 관리를 당부하고 있다. 이복현 원장은 지난달 열린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연체율 상승 등 자산건전성 악화 우려가 있는 일부 제2금융권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부실자산 정리 및 자본확충 등을 지도해달라"며 "부진한 금융회사는 경영실태평가 및 현장검사 등을 통해 건전성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