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부채의 늪과 악마의 유혹 사이…한은의 줄타기

2024-10-08 07:00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08년 경제적 재앙은 전적으로 자초한 것이고 피할 수 있었다. 당시 우리는 재앙이 코앞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시장이 무너진 후에도 이 위기가 얼마나 깊고 오래갈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다."

오는 11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부채의 늪과 내수 부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한국은행의 처지를 생각하면 아데어 터너 전 영국 금융감독청(FSA) 의장의 고백이 떠오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영국 금융감독당국 수장이었던 터너는 위기 앞에서 속수무책인 스스로를 자책하며 '부채의 늪과 악마의 유혹 사이에서'라는 책을 썼다. 부동산 투기가 부른 가계 빚을 방치하면 또다시 금융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을 담고 있다.

빚의 복수를 이미 수차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한은 금통위원들의 머릿속도 복잡할 수밖에 없다. 목표 물가(2%) 달성, 미국의 '빅 컷(0.5%포인트 금리 인하)', 극심한 내수 부진을 감안하면 금리 인하 버튼을 눌러야 할 때다. 특히 고금리에 신음하는 저소득층과 자영업자를 더는 외면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섣부른 금리 인하가 자칫 경제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담이 금통위원들을 짓누른다. 오죽하면 자타 공인 '비둘기(통화정책 완화 선호)'인 신성환 금통위원이 금리 결정을 2주 앞두고 "10월 어떤 결정을 하게 될지 저도 모르겠다"고 토로했을까.

금융안정상황 보고서에서도 한은의 고민은 드러난다. 대출금리가 0.25%포인트 하락하면 1년 이후 서울 집값이 0.83%포인트 더 오른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기준금리 인하가 집값 상승의 불쏘시개로 작용할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일선에서 영국 금융시스템 감독을 총괄했던 터너는 금융시스템에 대한 공적 통제 강화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그는 "금융감독은 단지 금융시스템 자치의 안전성 규제를 넘어 실물경제에서 총 민간부채 비율을 통제해야 한다"며 부채 억제를 강조했다. 

우리나라에도 들어맞는 해법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어쨌든 과도한 부채를 잡아야 위기를 막을 수 있다는 소리다. 실제 정부 규제로 수도권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세는 일단 휴지기다.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시행되고 시중은행들이 초강수 대책을 쏟아낸 영향이다. 

다만 길었던 추석 연휴가 포함된 9월 한 달 지표만으로 추세적 둔화를 예단하긴 무리라는 평가도 있다. 10월 데이터까지 충분히 확인한 후 다음 달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의견이다. 부족한 데이터 속에서도 선택의 시간은 4일 앞으로 다가왔다. 부채의 늪과 악마의 유혹 사이 한은의 줄타기를 모두가 노심초사하며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