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칼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5주년… 창조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2024-10-07 09:02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중국학]
 
 

 
현재 세계는 전쟁과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에 휩싸여 있다. 미국은 한치도 예측하기 어려운 치열한 대선전을 치르고 있고, 중국은 40여 년 만에 최대의 경제 위기를 맞으면서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G2로 불리는 미·중은 겉으로는 ‘갈등 있는 협력’을 강조하지만, 미국의 대중 압박은 강화 추세이며, 중국 역시 결사 항전의 대미 전략 경쟁을 지속하면서 전혀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미 전 세계는 어떠한 구심점도 없는 G0(zero) 시대를 맞은 지 오래다.

이 상황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은 전혀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채 3년째 소모전을 계속하고 있다. 작년 10월 레바논 헤즈볼라의 지원을 받는 팔레스타인 하마스 무장 정파의 이스라엘 미사일 공격으로 촉발된 중동 불안은 이제 헤즈볼라를 지원하는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본격적인 충돌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자칫 5차 중동전쟁까지 우려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한반도 역시 전대미문인 북한의 쓰레기 풍선 공격이 상례화 됐고, 러시아와 북한 간의 밀착과 이에 따른 불편한 중·북 관계 등 불안정성이 계속 증폭되는 중이다.

여기에 전 세계를 엄습하고 있는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도 지구촌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도 경기침체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18일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하는 소위 ‘빅컷’을 단행했다. 파월 의장이 미국 경제는 여전히 견고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최근 급속히 냉각되고 있는 미국 고용시장에 선제적 대응 조치를 단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빅컷으로 약간의 숨통이 트인 중국도 지난 24일 인민은행을 통해 지준율 인하 등 통화정책 완화와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해 부동산 시장·주식 시장 활성화를 위한 종합부양책을 내놨다. 최근 시진핑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가 직접적으로 중국의 경기 부진을 인정한 가운데 늦은 감이 있지만 마침내 중국 정부가 보다 직접적인 경기부양책을 제시한 것이다.

중국 지도부와 관계 당국이 중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안정적이지만 여전히 유효수요 부족과 사회적 기대 약세 등 도전에 직면해있다고 인정하고 내놓은 이번 대책에 시장은 일단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중국 증시의 상승세가 나타났고, 미국 등의 중국 투자자들에게서도 일부 긍정 반응이 나타나는 중이다. 이번 조치로 약 0.2%포인트의 성장률 촉진 효과와 역대 최저의 은행 수익성 개선에 기여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이번 조치가 시장 신뢰를 일부 제고시킬 수는 있으나, 이 정도로는 불충분하며 후속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 경제 펀더멘털이 개선되지 못한 상황에서 자본시장에만 자금이 몰릴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렇게 된다면 자본시장과 제조업 부진 간의 괴리는 더 심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조치는 중국 경제의 근본적이고 구조적 모순 해결과는 거리가 있다. 여전히 경제 심리가 회복되지 않아 소비 지수가 부진하고, 기업 경기를 반영하는 PMI(구매자 관리) 지수도 계속 50 이하를 밑도는 등 경기회복 전망을 어둡게 보기 때문이다. 인구 고령화 추세 속에서 생산가능인구 감소, 부동산 시장 수요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와 외국 기업과 자본의 이탈이 최고치를 경신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산정 방식을 바꿨음에도 청년 실업률은 18% 이상이다. 그렇지만 재정정책과 더불어 코로나 시기에도 없었던 소비 쿠폰 발행, 취약계층 일회성 현금 지원 등 국경절 ‘휴일 경제’(Holiday Economy) 소비 진작을 통해 내수 회복의 전환점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기존 정책과 구분되는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 10월 1일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5주년을 맞았다. 거의 모든 국가가 어려움에 봉착해 있지만, 건국 75주년을 맞이한 중국은 미국과의 첨예한 경쟁 속에서 지난 5년 부동산 침체와 코로나19 봉쇄 등을 겪으며 무너진 경제를 살려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이러한 절박함 속에서 경기회복에 사활을 걸고 있는 중국이지만, 시진핑 국가주석의 국경절 75주년 담화는 경제 대신 '강대국 건설을 위한 중국 공산당의 지도'를 강조하고 나섰다. 중국식 현대화를 통한 강국 건설과 중화민족의 전면적 부흥 추진이 ‘신시대 당과 국가의 중심 임무’임을 강조해 온 시 주석이 중국식 현대화 추진의 핵심은 중국 공산당의 영도에 있다는 ‘중국식’ 위기 돌파를 다시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시진핑 체제의 국정 운영 핵심은 ‘안전’(안보)에 있다. 1978년 말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을 천명한 이래, 역대 중국 지도자와 지도부는 ‘성장’과 ‘분배’의 우선순위를 두고 노선의 차이를 보인 적은 있었다. 그러나 시진핑 집권 이후에는 모든 논의가 ‘국가 안전·핵심 이익’의 고수로 귀결됐다. 특히 내·외부적 위기 상황을 맞게 되면 중국은 여지없이 공산당으로의 집중을 강조한다. 트럼프 정부의 압박에 대해 일사불란한 대미 대응을 위하여 당 총서기의 권력 강화가 더 중요하다면서 총서기의 권한을 강화한 바도 있다. 공전의 경제 위기를 맞아서도 시진핑 지도부는 ‘시종 당이 전체 국면을 총괄’하고 당 중앙의 권위, ‘집중 통일 영도’를 견지해야 한다면서, 당을 따르는 ‘애국주의 정신’의 대대적 선양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이 현재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자체적 전략 인식과 위기의식으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은 철저히 중국의 몫이다. 중국은 서방 국가와는 다른 가치와 체제를 지닌 사회주의 정당인 공산당이 이끄는 국가로, ‘공동부유’의 강조나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로 발전해 온 ‘중국식 현대화’에 대한 강조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세계 제조업 1위 국가이며, 전 세계 GVC (글로벌 밸류체인)의 40%를 담당하는 지구촌의 핵심 일원이다. 그럼에도 ‘국가 안전’에 대한 지나친 고려와 우려, 그리고 모든 것을 ‘당이 통제’해야 한다는 사회주의적 강박 관념은 중국의 경제 회복과 민생, 그리고 사회 안정에도 부정적 영향을 증대시킬 수 있다. 나아가 국제사회를 설득하기 어렵다는 점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창조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강준영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교수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