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혜 기자의 C] 동굴 너머 펼쳐진 낙원… 자연에 둘러싸인 그곳에서 만난 '빛의 예술'
2024-09-23 00:00
루브르 박물관 유리 피라미드 설계한 이오 밍 페이 작품으로 1997년 개관
무릉도원 현실화… 자연광 받는 '서 있는 부처' 등 작품과 빛의 조화 압권
무릉도원 현실화… 자연광 받는 '서 있는 부처' 등 작품과 빛의 조화 압권
구불구불한 숲길을 넘어 어둑한 터널을 지나자 눈앞이 활짝 트였다.
지난 13일 찾은 일본 ‘미호 뮤지엄’은 마치 깊은 산속에 숨은 무릉도원 같았다. 길 잃은 어부가 좁은 동굴을 간신히 지나 발견했다는 상상 속 ‘동굴 너머 낙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1997년에 개관한 미호 뮤지엄은 세계적인 건축가 이오 밍 페이(1917~2019)의 작품이다. 그는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를 설계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8세에 미국으로 건너간 중국계 미국인인 그는 중국의 옛 시인인 도연명의 산문 ‘도화원기’에서 묘사된 무릉도원을 배경 삼아 미호 뮤지엄을 설계했다.
도원경 그린 이오 밍 페이···자연, 건축, 미술품의 조화
아름다운 곡선의 터널을 지나자 일본 시가현 산중에 위치한 미호 뮤지엄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연에 둘러싸인 이 미술관은 전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전체 중 약 80%가 지하에 있어서 관람객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자그마한 신사처럼 보이는 건물뿐이다. 지붕과 문 모두가 유리로 된 이 건물은 산속에서 홀로 은은히 빛을 반사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퍽 신비로웠다.
미호 뮤지엄 관계자는 “건설보다 개발이 먼저였다. 산에 (미술관을) 지었기 때문에 터널을 통해 자재를 들여왔다”며 “땅을 파서 건물을 세운 뒤 땅을 다시 채웠다. 시가현은 자연복원 구역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건설 자체가 어려웠다. 이 건물 80%가 지하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오 밍 페이는 좁은 공간에서 갑자기 넓은 공간으로 관람객을 이끄는 식으로 극적인 감동을 유도했다. 둥근 유리로 된 입구가 좌우로 열리며 나타난 좁은 공간을 지나 네모난 유리문을 다시 통과하면 자연광이 쏟아지는 넓은 공간이 나왔다. 건너편 벽 전체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먼 산과 소나무 풍경은 커다란 한 폭의 동양화 같았다.
미술관 곳곳에 스며든 빛···원래 있었던 듯 '서 있는 부처'
특히 2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서 있는 부처(Standing Buddha)’는 옅은 어둠 속에서 은은한 자연광을 받아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듯 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통상 석굴이나 법당에 본존불이 가장 안쪽 중앙에 위치하듯, 이 불상도 전시실 가장 안쪽 중앙에서 고요한 에너지를 분출했다.
애초 ‘서 있는 부처’ 전시실 바로 위에는 서양 미술 전시실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높이가 2.5m에 달하는 ‘서 있는 부처’를 위해 설계를 과감하게 변경했다. 아예 위쪽 전시실을 없애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바꿨다. 미호 뮤지엄 관계자는 “설계 단계부터 ‘서 있는 부처’가 가장 잘 어울릴 위치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개관 바로 2년 전인 1995년에 고베 대지진이 발생한 만큼 고도의 내진 설계 기술도 도입했다. 예술 작품의 진동을 최소화하는 받침대들이 설치돼 지진으로 인한 손상을 방지했다. 미술관 벽도 두껍게 지어서 산사태가 발생하더라도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했다. 미호 뮤지엄 관계자는 “사람이 손으로 밀면 받침대가 흔들릴 정도로 내진 설계를 했다”며 “(미술관) 벽이 엄청 두꺼워서 산사태가 일어나더라도 (벽이)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미호 뮤지엄은 미술관 설립자이자 신흥 종교 단체 신지슈메이카이 창시자인 고야마 미호코(1910~2003) 이름을 땄다. 불교 미술, 서화, 도자기 등 일본 미술품에서 시작된 그의 작품 수집은 이집트, 서아시아, 그리스, 로마, 남아시아, 중국 등 세계 고대 미술품으로 확대됐고, 미호 뮤지엄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현재 미술관은 전시 교체를 위해 휴관 중이다. 다음 개관은 오는 28일부터 12월 15일까지다. 관람료는 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