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스타벅스와 상생하는 농업 R&D 현장을 다녀와서

2024-09-20 05:00

임윤정 동국대 일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사진=농촌진흥청]
1995년 첫 의사 생활을 시작한 이후 30여 년 동안 많은 환자들을 만나고 진료하며 깨달은 것은 건강한 삶은 무엇보다 건강한 먹거리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히포크라테스가 말한 '모든 병은 장에서 생긴다'는 명언은 현대 의학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진리로 인정받고 있다. 단순히 몸에 좋다는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 것보다 좋은 환경에서 생산된 원료로 균형 잡힌 식단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식생활이자 건강한 식습관이다. '밥이 보약이다'라는 말은 단순한 속담이 아니라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또 하나의 진리인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밥을 탄수화물로만 인식해 비만의 주범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고 그 결과 쌀 소비량이 현저히 줄고 있다.

밥은 비만의 주범이 아니라 건강 유지에 꼭 필요한 음식이라고 강조해도 식문화, 식습관이 변해버린 현대인의 마음을 돌리기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가공용 쌀 소비는 증가세라고 하니 이 부분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변화하는 현대인의 식문화 소비 트렌드에 맞는 관련 정책이 뒷받침되고 연구개발(R&D)이 동반된다면 올바른 식문화 견인과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되는 훌륭한 개발 성과가 나올 것이다.

필자는 우리나라 먹거리 관련 R&D를 주도하는 농촌진흥청이 지난 6월 초 출범시킨 '민·관 농업과학기술 혁신위원회'에 민간 전문가로 참여하고 있다. 위원들은 각자 농식품, 기능성·바이오, 공학뿐 아니라 의약학, 정보기술(IT), 광고학,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지식과 현장 실무를 두루 갖춘 중견 전문가들이다. 농업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중장기 R&D 계획과 농업연구개발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함께 검토하고 선한 자극과 변화를 이끌며 민간 연구개발 활성화 기술 및 정책 제언 등의 역할에 대한 포부를 갖고  출범했다.  

지난 8월 27일에는 수원 소재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중부작물부를 방문해 쌀, 보리, 잡곡 등을 이용한 가공 기술 및 제품화 연구 현황을 들었다. 식량작물의 가치를 발굴하고 농업인, 산업체가 공생할 수 있는 '생산-가공-소비'가 연계된 선순환 네트워크를 구축했으며 개발된 기술을 활용해 농산업체에 주기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협의체도 운영하고 있었다. 

농진청에서 개발된 기술을 현장에 보급해 안정적으로 정착시킨 경기도 평택 '미듬영농조합'이라는 농산업체 방문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전 받은 기술을 활용해 가공품 생산에만 머물지 않고 원료를 직접 생산하고 조합원들이 함께 가공한 후 직접 유통·판매까지 책임지는 모습은 6차산업의 좋은 사례로 보였다. 다양한 쌀 가공품 판로는 스타벅스, 쿠팡 등 대규모 유통망 확보를 통해 해결했는데 특히 스타벅스와의 상생모델은 눈여겨볼 만한 사항이었다. 미듬영농조합은 전국 스타벅스에서 전량 폐기하던 커피박을 활용해 친환경 비료를 만들고 그 비료를 조합 농가에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 비료를 활용해 생산한 농산물 가공품을 다시 스타벅스에 공급하는 순환 모델이 구축됐다.  

쌀 가공품의 차별화 노력도 아끼지 않았는데 농진청에서 기술 이전 받은 '쌀 유산 발효물 제조 기술'이라는 R&D 결과물을 활용한 라이스칩 제품이 2021년 농림축산식품부 주관 우수 쌀 가공식품 TOP 10에도 선정되는 등 수상 경력도 돋보였다. '쌀은 곧 밥'이라는 통념을 깨고 새로운 출구 전략을 내세워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은 전략이 주효했다. 이러한 성과는 농진청 R&D 결과물인 쌀 가공 기술이 든든히 받쳐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흔히 농업은 힘들고 돈도 안 되는 소외된 분야라는 선입견이 있다. 지금은 아니다. 우리 농업은 첨단산업과 융합하고 민간과의 협업을 통해 지속해서 혁신을 꾀하고 있다. 농진청이 환경과 시대 변화에 맞게 더 혁신적인 연구로 농업·농촌뿐 아니라 국가 발전과 국민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중심 기관이 되길 기대해 본다. 농업이 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R&D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