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렬의 제왕학] 김정은의 히틀러 따라하기
2024-09-08 09:29
게슈타포식 공포정치, '주체 조선의 태양'은 바로 '나'
나치 전당대회 모방한 '아리랑' 집단체조
나치 전당대회 모방한 '아리랑' 집단체조
독재 정치가 교본 『군주론』 실천하는 김정은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안아주거나 아니면 아주 완벽하게 짓밟아 철저히 뭉개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조차 못 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려면 복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예 완전히 절멸(絶滅)시켜야 한다.” (마키아벨리, 『군주론』)
교황청이 금서로 지정한 ‘악마의 책’ 『군주론』은 세기적 독재자인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애독한 ‘독재자 교본’으로 군주, 즉 최고 통치자가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 권모술수(權謀術數)의 보고다. 권력에 대한 적나라(赤裸裸)한 현실주의적인 접근법을 통해 군주의 행동과 선택에 대한 방법론을 제시한 『군주론』은 독재적인 정치가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이듬해인 지난 2013년 12월, 공화국 형법 제60조에 따라 고모부이자 정권 창출 일등 공신인 후견자 장성택(張成澤, 1946년 1월 22일 ~ 2013년 12월 12일)을 국가반역죄로 처형했다. ‘흉악한 정치적 야심가, 음모가이며 만고역적(萬古逆賊)인 장성택’을 ‘혁명(革命)과 인민의 이름’으로 준열히 단죄 규탄,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하고 즉시 집행한 것이다.
김정은 자신의 등극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친고모 남편이자 고숙(姑叔)인 장성택에 대한 잔혹한 처형은 ‘정치의 본질은 투쟁’ 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김일성 사위이자 김정일 처남인 장성택은 김정일의 권력 승계과정에서도 김정일 라이벌이었던 숙부 김영주와 이복동생 김평일 등을 제거한 고굉지신(股肱之臣)이었다. 그야말로 ‘재산과 명예는 나눌 수 있지만, 권력은 부자(父子)간에도 나누어 가질 수 없다’고 했던가.
서양의 ‘제왕학’을 집대성한 『군주론』은 ‘잔인함과 인자함에 대하여: 군주는 공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사랑받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를 다룬 용인술에서 ‘군주는 여우의 교활한 지혜와 폭력적인 사자의 힘’을 겸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사자는 덫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없고, 여우는 늑대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없다. 따라서 함정을 알아보는 여우가 되어야 하고, 이리를 도망가게 하기 위해서는 사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군주란 정직, 의리, 겸손 등 도덕적 덕목을 갖춰야 하지만 여기에만 치중하다 보면 권력 유지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속임수, 살인과 같은 비도덕적 행위는 군주가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덕목이다. 단, 국민 혹은 나라를 위해 옳은 목적으로 행할 때 말이다.”
『군주론』의 충실한 실천자 김정은은 “현명한 잔인함이 진정한 자비다”라는 마키아벨리 명언대로 자신의 킹메이커이자 2인자였던 고모부 장성택이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에게 자신을 이복형인 김정남으로 교체하려 상의했다는 밀고에 격노, 반역과 부패 혐의를 적용, 국가전복음모죄로 가차 없이 처형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0년 2월 열린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과의 비화를 전했다. 김정은이 북한 고위 간부들이 다니는 계단에 ‘2013년 장성택을 처형한 후 목이 없는 시신의 가슴 위에 얼굴을 올려놓아’ 전시한 ‘엽기적인 행위’를 자랑삼아 얘기했다는 것. (‘워터게이트’ 특종 기자 밥 우드워드, 『격노:Rage』, 2020.9.)
추측건대 “인간은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등에만 칼을 꽂기 마련이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하더라도 그는 자신에게 보복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라는 권력투쟁의 원리를 몰각(沒却)한 장성택의 의표(意表)를 찔러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자신의 절대권력에 걸림돌이 될 화근(禍根)을 제거한 것이다.
김정은은 “군주는 사랑받기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낫다. 하지만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미워지는 것을 피하는 것이 좋다.”는 인간의 야비한 본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군주론』의 가르침을 현실 정치에서 주체적으로 실천한 셈이다.
이후 장성택 계보 고위인사를 포함, 1000여 명의 주요 보직 인사를 대대적으로 숙청한 뒤 3년여 뒤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김일성의 사랑을 받고 자란 ‘백두혈통의 장자인 이복형’ 김정남을 제거, 체제 도전 세력에게 본보기성으로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2017년 2월 13일 오전 9시 대낮, 사람들로 북적이는 말레이시아 제2국제공항 대합실에서 ‘비운의 황태자 김정남’ 얼굴에 29세인 베트남 국적 여성 공작원이 화학무기용 무색무취 신경작용제 VX를 손바닥으로 문질러 절명케 했다. 2.33초라는 순식간에 흔적을 찾기 힘든 치명적인 독극물을 이용한 암살이었다. 김정은 집권에 반감을 품은 북한 내부 세력의 ‘김정남 옹립’ 등 반(反)김정은 책동 근원을 제거한다는 참초제근(斬草除根)이다.
‘잡초를 없애려면 뿌리까지 뽑아야 한다’는{『춘추좌전(春秋左傳)』 ‘은공(隱公) 6년(BC 707년)’} 권력의 논리를 따른 것이다. 권좌에 위협이 되는 잠룡을 포함, ‘누구도 예외 없이’ 화근(禍根)을 선제적으로 제거하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야수(野獸)적인 권력특성인 공포통치로 권부 인사들을 죽음에 대한 ‘위협적인 공포’로 얼어붙게 한 것이다.
히틀러를 철저하게 벤치마킹하는 김정은 통치전략
김정은 독재체제 롤 모델인 히틀러 나치 체제는 북한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김정은은 물론 “김정일이 아돌프 히틀러를 존경해 잠잘 때 그가 지은 『나의 투쟁』을 ‘베고 잔다고 말할’ 정도로 부자(父子)가 히틀러에 대해 우호적”이라고 전한다.
김정일이 명절 때 간부들에게 고급 양주나 이탈리아 양복 천과 같은 사치품을 선물했지만, 김정은은 운동 관련 외국산 스포츠용품이나 음악 CD, 세계유머집 등의 책으로 선물품목이 바뀌었다. 김은 집권 초기인 2013년 자기의 생일(1월 8일)을 기념, 당 중앙위원회 부장급(제1부부장, 군단장급 이상 포함) 고위 간부들에게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선물했다.
저작권법을 피하면서 김씨 일가와 그 특권층만의 문화적 취향을 위해 세계 유명도서를 100권만 비공개로 번역 출판하는 ‘100부 도서’(1970년대 말 처음 등장한 ‘100부 도서’는 소설을 좋아했던 김일성 개인을 위해 외국 유명소설들을 불법적으로 들여와 출판한 데서 유래)로 인쇄된 『나의 투쟁』은 김정은 통치의 지침서로 알려져 있다.
평양 파워 엘리트들 사이에선 김이 스위스 유학 때 히틀러에 심취했고, 장성택 처형에서처럼 국민을 공포에 질리게 하는 잔혹한 고문을 일삼은 게슈타포 통치방식을 따라 하고 있다는 것.
『뉴욕포스트』는 ‘Heil Kim Jong Un!(김정은 만세!)’라는 문장으로 시작된 기사에서 “김정은이 『나의 투쟁』에 심취해 있다”라며 “김정은이 대학 시절 히틀러의 애인 에바 브라운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를 했고, 북한의 인민보안대장이 나치의 비밀경찰 게슈타포에 대한 언급을 여러 번 했다”라고 보도했다.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때 눈물 보인 ‘계몽 군주’ 김정은의 본모습, 최우석 기자, 월간조선 2020년 11월호)
신비주의적 유사 종교에 기초한 유대를 강조하면서 자신을 ‘메시아’로 상징조작, 히틀러 집권 후 나치 교본이 된 『나의 투쟁』은 히틀러가 1923년 뮌헨 폭동을 일으킨 쿠데타 혐의로 갇혔을 때 루돌프 헤스에게 구술(口述)해 펴낸 책이다. 반(反)유대 및 인종주의 이념을 표방, 히틀러 집권 당시에는 나치당원의 필독서로 전 세계적으로 1500여만 부가 팔리며 널리 읽히기도 했다. 독일 당국은 2014년 히틀러 성장과 정치투쟁 과정 등이 고스란히 담긴 『나의 투쟁』 뿐 아니라 히틀러 저술에 대한 ‘무비판적 출간’을 전면 불허했다.
김정은은 간부들에게 『나의 투쟁』을 선물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패전국 독일을 짧은 기간에 재건한 히틀러의 ‘제3 제국’을 깊이 연구하고 적용 방안을 모색하라”라고 지시했다. 핵실험·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으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 제재를 받고 ‘핵·경제 병진 노선’으로 전체주의 국가를 장악한 자신과 유럽대륙을 전쟁 공포로 떨게 했던 제2차 세계대전 전야의 히틀러를 동일시하는 심리적 기제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김은 또 ‘거짓말은 거창하게 하라’는 히틀러의 대중 기만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독점자본주의 옹호, 반사회주의, 반공산주의자였던 히틀러는 대중을 끌어들이기 위한 기만 술책으로 사회주의적 정책을 내세웠다. 북한도 ‘사회주의 낙원’ 건설이라는 장밋빛 공약으로 선전, 세뇌작업을 펼치고 있다.
히틀러가 『나의 투쟁』 속에서 대중조작의 진수(眞髓)를 설파한 ‘거짓말을 하려거든 거창하게 하라는 원리’는 “그것 자체가 완전한 진실이며 거창한 거짓말에는 반드시 사람들이 그것을 믿게 하는 힘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박하고도 단순한 마음으로 하는 사소한 거짓말은 일반 대중도 가끔 하지만, 대규모 속임수 술책을 쓰는 것은 수치스러워하기에 그들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므로 오히려 사소한 거짓말보다는 거창한 거짓말에 간단히 속아 넘어가기 쉽다. 엄청난 거짓말을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겐 생각지도 못할 일이며, 야비하게 진실을 왜곡시킬 수 있을 만큼 뻔뻔스러운 인간도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것이다.”
히틀러 통치 기간 독일국민 대다수는 파시즘 특유의 선전 선동을 포함한 흑색선전 즉 거짓선동(demagogy:대중 선동을 위한 정치적인 허위 선전이나 인신공격)에 속아 열광적으로 지지했다. 전쟁에 패할 때까지 히틀러를 ‘강제가 아닌 진정으로 열망’하고 진심을 담은 자발적 의지에 따라 영웅적 지도자로 인식하고 추종했다.
이처럼 김정은은 히틀러 시대의 여러 통치술을 따르고 있다. 그는 “독일의 단결과 나치 사상 전파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것은 스포츠”라며 “모든 인민이 체육전문가가 되어야 전쟁에서도 승리할 체력을 가질 수 있다”며 2012년 말 ‘국가체육지도위원회’를 신설, 스포츠를 장려했다.
“히틀러의 게르만족 우월성 주창은 출산장려정책에서 잘 나타났다”며 ‘한 가정 3자녀 낳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격려하고 지원해주도록 지시했다. 출산장려정책의 총괄 지휘는 김정은의 아내 리설주가 맡고 있으며 이를 통해 그를 ‘조선의 어머니’로 선전하는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체제 선전을 위해 ‘조선소년단’을 조직, 9세부터 철저하게 세뇌 교육을 시도하는 것도 나치 체제의 벤치마킹이다. 세습 정당화와 체제유지를 위한 세뇌 교육을 위해 조직된 ‘소년단’은 히틀러가 1920년대 소년병 양성을 목표로 청소년에게 나치사상을 주입하기 위해 창설한 청소년 조직 ‘히틀러유겐트’와 닮은꼴이다. 다년간의 세뇌로 히틀러를 광적으로 섬긴 ‘히틀러유겐트’는 노르망디 전투 등에서 연합군에 맞서 난폭하고 야만적으로 집요하게 싸웠다.
김정은도 목에 빨간 소년단 넥타이를 맨 ‘조선소년단’ 창립기념 행사에 참석, 4만 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집권 후 두 번째 공개연설을 통해 격려했다. 그는 “조선소년단이 오늘처럼 혁명 계승자들의 힘 있는 조직으로 자랑을 떨치게 된 것은 한없이 숭고한 위대한 김일성 대원수님과 김정일 대원수님의 은혜로운 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역설, 히틀러 통치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세뇌 공작을 펼치고 있다.
히틀러는 ‘독일 소녀연맹(German Girls' League)’을 조직. ‘바람직한’ 여성상을 주입했다. 10세 소녀부터 포함된 ‘소녀연맹’은 가정과 국가에 봉사하는 여성을 ‘구원(久遠)의 여인상’으로 키워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 히틀러의 개인적 여성관은 “부드럽고, 상냥하고, 맹해야(tender, sweet, and stupid) 한다”는 캐릭터로 ‘나는 독일과 결혼했다’며 내연녀로 지내다가 독일 패배(1945년 5월 8일 항복선언) 전인 4월 30일, 동반자살 40시간 전 결혼한 애인 에바 브라운을 연상시킨다. 패배로 베를린 함락이 임박, 권총으로 자살한 히틀러가 청산가리를 줘 자살케 한 브라운은 당시 33세(히틀러 56세). 개인 취향과 국가 목표가 다른 히틀러의 여성관은 이중적이었다.
장기간 혹독한 훈련 등으로 북한 주민들의 피눈물이 담긴 대규모 카드섹션과 다양한 퍼포먼스로 구성된 ‘아리랑 공연’은 어린 학생들을 포함, 군중 10만여 명이 동원해 김일성·김정일 부자 우상화와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세계적 퍼포먼스.
2002년 김일성 생일 90돌을 맞아 세상에 공개된 ‘아리랑’은 기네스북에 등재될 만큼 세계최대 규모의 집단체조. 북한에서는 “체육 기교와 사상 예술성이 배합된 대중적인 체육 형식”이라고 정의하고, “청소년 학생들과 노동자들을 건장한 체력으로 튼튼히 단련시키고 조직성, 규율, 집단주의 정신을 키우는 효과적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김씨 정권을 과시하기 위한 노예들의 대축제로 비판받는 ‘아리랑’을 도올 김용옥은 ‘이상 국가를 위한 집단체조’라고 찬탄한 바 있다.
CNN이 “지구상에서 가장 놀라운 쇼이자, 동시에 최악의 잔인함을 도출한 쇼”라고 평가한 ‘아리랑’ 집단체조는 1930년대 뉘른베르크에서 벌인 히틀러의 나치 전당대회 모방작품이다. 1920년대 시작, 최고 70만여 명이 동원되기도 한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전설’인 레니 리펜슈탈 감독의 1935년 작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홍보 다큐멘터리 ‘의지의 승리’란 영화(1934년 9월 5일부터 10일까지 개최된 뉘른베르크집회)로 제작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지금도 선전·선동 영화의 전범(典範)으로 일컬어진다.
김정은은 히틀러가 즐겨 입고, 할아버지가 애용했던 롱코트 패션도 따라 하고 있다. 젊은 시절 미술가를 꿈꿨던 히틀러는 패션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다른 어떤 전략 못지않게 전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고, 나치 조직 안에 의복 관련 정책을 전담케 하는 ‘독일 패션국(Deutsches Modeamt)’을 설립, 군복 색깔과 ‘하켄크로이츠(卐:Hakenkreuz:‘갈고리’를 뜻하는 ‘하켄 Haken’에 ‘십자가’를 뜻하는 ‘크로이츠 Kreuz’가 합쳐진 조어)’ 마크 등 디자인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게르만족과 아리아인의 인종적 우월성을 주창하며 반(反)유대인 투쟁을 펼쳐온 히틀러가 게르만 고유의 상징이었던 나치 독일을 상징하는 갈고리 십자가 하켄크로이츠는 1920년 나치당 기로, 1935년엔 독일 국기로 제정됐다. 김일성 배지를 신성시하고, 전 국민이 착용케 하는 것도 이런 상징조작의 하나로 보인다.
히틀러는 멋있는 ‘군복의 판타지’가 청년들을 전쟁에 끌어들이는 유인책임을 간파, 청년들이 멋진 제복의 모습에 반해 앞다퉈 나치 대열에 합류하도록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초라한 군복은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줄 수 없고, 멋지고 강한 존재라는 인상을 심어주지 못한다며 침략과 패션을 결합해 나치 특유의 멋지고 독특한 군복 패션디자인으로 젊은이들을 유혹한 것이다.
직물공장 집안에서 태어난 ‘나치 선전문화상 괴벨스 박사’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로 다리가 굽어 불우한 시절을 보내며 병역까지 거부당했으나, 패션에서는 완벽을 추구했다. 출세한 뒤 수백 벌의 정장을 가진 그는 같은 옷을 두 번 다시 입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나치당이 패션을 중시하면서 독일 패션브랜드 ‘보스(Hugo Boss)’ 등 의류업자들과 디자이너들이 가세했다. 보스는 독일군 군복은 물론 나치돌격대, 히틀러 청년단, SS 친위대 등의 제복을 만들었다. 이들이 제작, 납품한 악(惡)을 상징하는 검정 일색의 정장과 해골이 그려진 모자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샤넬, 크리스티앙 디오르, 루이뷔통 등도 나치와 호흡을 맞추며 성장, 나치에 동조했던 과거사와 상관없이 지금도 패션계를 주도하고 있다.
김정은이 즐겨 입는 가죽 롱코트 등은 김정은의 ‘패션 통치’로 롱코트 차림으로 파리에 입성한 히틀러의 패션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2021년 1월 제8차 노동당 대회를 기념하는 열병식에서 김정은을 비롯해 김여정·현송월 당 부부장, 조용원 당 비서만 가죽 롱코트를 입고 나와 ‘패션으로 권력을 드러내는’ 패션 통치의 단면을 보여줬다.
‘주체 조선의 태양’은 김일성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김정은의 자아도취
북한의 야간 행사는 스케일로 대중을 압도하는 대규모 이벤트와 ‘빛의 은유(隱喩)’를 선전 선동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히틀러의 심야 행사를 벤치마킹한 것. 북한은 2018년 9월 정권 수립 70주년 행사까지는 대부분 오전에 열병식을 개최했으나, 김정은 집권 후 10년간 노동당 창건·정권 수립일 등을 계기로 총 12차례 열병식을 개최했다. 이 가운데 2020년 10월 10일 당 창건 75주년부터는 다섯 차례 연속 오후 6시에서 자정 사이 야간 행사로 심야에 진행했다.
2022년 4월 25일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은 그간 야간 열병식 중 가장 화려했다는 평가다. 형형색색의 야광 조명이 달린 옷을 입은 항공육전병 부대(공수부대)원들의 스카이다이빙과 에어쇼·드론 쇼, 조명 매스게임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김일성광장 앞에서 대동강을 가로질러 맞은편 주체탑 광장까지 부교 2개를 설치해 강변을 가로지르는 폭죽 조명 쇼를 펼친 것이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열병식 때 대동강에 부교를 설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영교 기자, 중앙일보, 2023.2.8.)
북한이 작년 심야 열병식에서 김일성·김정일 시신을 보관 중인 금수산태양궁전을 향해 쏘아 올린 조명 연출도 나치와 닮은꼴. 1933년 뉘른베르크 나치당 대회에서 히틀러 총애를 받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가 심야에 152개 서치라이트를 12m 간격으로 밤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쏘아 올린 ‘빛의 대성당’(Lichtdom) 퍼포먼스는 20세기 대표적 정치 선동 예술로 꼽힌다.
인간은 심리·뇌과학적으로 낮 보다는 육체적으로 지쳐 있는 밤에 감정을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분비량이 줄어 훨씬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 또 밤엔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 분비가 촉진되면서 나른함과 몽롱함이 더해지고 감정적인 진폭도 높아진다. 종교 단체가 각종 수련회 ‘캠프파이어’ 행사나 기도회 등 종교 행사를 심야에 여는 이유는 인간의 이러한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히틀러는 정치 초년생부터 오전 시간대보다는 저녁 시간에 연설하거나 각종 집회를 개최했다. 대중의 이성과 비판 등 판단력이 활발한 오전보다는 감성적이 되는 석양(夕陽)을 노려, 어스름 해가 지는 때부터 저녁을 활용함으로써 메시지를 비판 없이 수용하게 하려는 의도적 행위였다. 실제 히틀러 시대 나치는 베를린 중심에 있는 브란덴부르크 문 앞 ‘파리저 광장’에서 횃불이나 전기 조명 등을 활용한 군중 집회를 자주 개최했다.
김정은 체제에서 벌어지는 잦은 야간 행사에 대해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는 “북한에서 축포는 단순한 승리의 의미가 아니라 선대에서 폐허가 됐던 땅을 빛으로 밝힌다는 상징성이 크다”라며 “북한의 야간 열병식은 드론, 레이저, 비행쇼, 플레어(강한 열을 뿜어 열추적 미사일을 교란하는 불꽃) 같은 과학기술과 ‘광명(光明)’, ‘여명(黎明)’이라는 상징을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이벤트”로 “당의 영도력으로 북한 체제가 안정적이라는 인식을 인민들에게 심어주는 선물 겸 축제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2022.4.28.)
히틀러는 자신이 정치가로 유능하며 가장 위대한 전쟁 영웅이자 독일의 최고 건축가로 믿는 등 각 분야에서 권위자임을 자처했다. 이런 과도한 자기과시와 자기애, 내가 누구보다 우월하고, 대중으로부터 당연히 인정받아야 한다는 나르시시즘에 빠진 절대적인 독재자로 ‘유럽제패’를 꿈꾸며 전쟁을 일으켰던 히틀러를 숭배하는 김정은의 행보가 주목된다.
‘울보’ 눈물의 感性統治, 먹고 사는 문제 미해결, 불만과 피로감 키워
김정은 통치방식이 세월이 흐르며 집권 초기의 서슬 퍼런 공포통치 시절과 달라졌다. 1인 집권 수령체제로 ‘영도력을 확립’하면서 ‘권력은 마상(馬上)에서 잡지만, 통치는 달라야 함’을 인식한 듯하다. 선대(先代)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거나 대중을 사랑하는 애민(愛民)정치 지도자 이미지 메이킹을 통한 감성 정치로 인간적 모습을 부각, 민심 잡기에 나섰다.
2011년 김정일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렸던 김정은은 이듬해 한 음악회 화면에 등장한 선친 김정일의 생전 모습을 보며 울었고, 2014년 수산사업소를 방문해서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회상케 하는 언급이 나오자 눈물을 보였다. 2020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식, 지난해 7월 정전협정 70주년 열병식에서도 눈물 흘리는 모습을 노출했다.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선 2016년에 발표한 국가 경제발전 달성에 “나라를 위한 자신의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며 울먹이는가 하면 지난해 전국 어머니 대회에서 “출생률 감소를 막고 어린이 보육 교양을….”이라고 말하다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등 각종 현장에서 울컥하는 등 ‘울보 모습’을 자주 노출하고 있다.
집권 초기 김정은의 눈물은 백두혈통 상속자 이미지를 상징하는 ‘위대한 대원수님들(김일성·김정일)을 경애’하는 선대(先代)와 관련된 게 대부분이었지만 정권장악에 성공하면서 정권 유지를 위해 감성에 호소하며 권력과 리더십을 재구성하는 이미지 즉 “인간적인 모습을 부각해 인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감성 통치’”를 펼치고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weekly current affairs magazine) 『스펙테이터』는 ‘Why Kim Jong-un keeps crying’이라는 기사에서 “면밀하게 연출해 TV로 방영되는 행사에서 애써 눈물을 참는 모습을 내보이는 데는 나름대로 저의(底意)가 있다. 어머니 대회에선 젊은 세대들에 만연한 비사회주의적 문제들을 엄중히 단속할 것이라며, 자녀에게 사회주의 가치를 고취하는 것은 어머니의 혁명적 과업이라고 강조하면서 우는 모습을 곁들였다.”라고 지적했다.
지배자가 자기의 권력을 신으로부터 주어진 절대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여 인민의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신권정치(神權政治:theocracy) 줄여서 신정(神政)으로 신(神)에 가까운 위상을 누리는 김정은이 눈물을 내비치는 건 극적 효과를 위한 감성 통치를 노린 정치적 노림수다.
체제 선전 목적을 드러내는 행위로, 무엇보다 우선 정권 생존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위한 것이다. ‘인민의 아버지’ 이미지보다는 자애로운 ‘어머니 형상’으로, 자신의 따뜻한 보살핌이 없으면 인민은 배를 곯으며 우는 수밖에 없는 ‘아이 같은 신세’로 세뇌하려 한다.
우상화(偶像化)된 ‘어버이 수령’의 가식적 ‘악어의 눈물’은 독재자 각본에서 나온 내부 지지 부추기용 도구일 뿐이다는 분석이다. 『스펙테이터』는 김정은이 위한다는 가족은 인민이 아니라 열 살짜리 딸 김주애 등 ‘김씨 일가’뿐이라고 꼬집었다. 눈물 정치를 비판한 미국의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세계적으로 우는 모습이 공개된 몇 안 되는 세계 독재자 중 한 명”이라면서 이오시프 스탈린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비공개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릴 듯한 모습을 보였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선에 도전한 2012년 3월 대선 투표 직후 지지자 집회에서 눈물을 보인 바 있다고 지적했다.
핵으로 무장한 군사 강국에 집착, 백성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불만과 피로감만 키워 체제유지가 흔들리고 있는데, ‘울보’처럼 자주 흘리는 눈물의 감성통치(感性統治)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그의 눈물이 순정(純情)인지 지켜볼 일이다.
미국의 고립주의, 푸틴과의 정상회담으로 강화된 친러시아 행보와 ‘심리적 내전 상태’인 국내 사정 등 6·25 전야와 비슷하게 재편되는 국제정세 속에서 자연재해와 만성적 식량난에 시달리는 김정은이 전쟁이라는 돌파구를 모색할만하다. 반대의견도 있지만, 김정은 정권이 전쟁을 결심했고 한반도 정세가 6·25 이후 가장 위험한 국면으로 진입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전차, 기계화 보병, 항공기, 공수부대를 이용, 기동성을 최대한 추구한 전격전(電撃戰) 작전으로 유럽 대부분을 점령했던 것처럼 히틀러를 숭배한다는 김정은이 ‘3일 작전’ 등을 거론, 한반도의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김정은은 지난달 말 심각한 수해로 자강도에서만 2500명 이상 사망 추산 보도를 ‘날조’라며 “적은 변할 수 없는 적”이라고 적대감을 분명히 드러냈다. 할아버지 김일성에게 부여됐던 ‘태양’의 호칭마저 떼어내고 선대가 열망하던 ‘절대무기 원자폭탄까지 확보해 ‘주체 조선의 태양’이라는 김정은의 자아도취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심각하게 우려된다.
박종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철학과 ▷중앙대 정치학 박사 ▷동아방송·신동아 기자 ▷EBS 이사 ▷연합통신 이사 ▷언론중재위원 ▷가천대 신방과 명예교수 ▷가천대 CEO아카데미원장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안아주거나 아니면 아주 완벽하게 짓밟아 철저히 뭉개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조차 못 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려면 복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예 완전히 절멸(絶滅)시켜야 한다.” (마키아벨리, 『군주론』)
교황청이 금서로 지정한 ‘악마의 책’ 『군주론』은 세기적 독재자인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애독한 ‘독재자 교본’으로 군주, 즉 최고 통치자가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 권모술수(權謀術數)의 보고다. 권력에 대한 적나라(赤裸裸)한 현실주의적인 접근법을 통해 군주의 행동과 선택에 대한 방법론을 제시한 『군주론』은 독재적인 정치가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이듬해인 지난 2013년 12월, 공화국 형법 제60조에 따라 고모부이자 정권 창출 일등 공신인 후견자 장성택(張成澤, 1946년 1월 22일 ~ 2013년 12월 12일)을 국가반역죄로 처형했다. ‘흉악한 정치적 야심가, 음모가이며 만고역적(萬古逆賊)인 장성택’을 ‘혁명(革命)과 인민의 이름’으로 준열히 단죄 규탄,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하고 즉시 집행한 것이다.
김정은 자신의 등극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친고모 남편이자 고숙(姑叔)인 장성택에 대한 잔혹한 처형은 ‘정치의 본질은 투쟁’ 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김일성 사위이자 김정일 처남인 장성택은 김정일의 권력 승계과정에서도 김정일 라이벌이었던 숙부 김영주와 이복동생 김평일 등을 제거한 고굉지신(股肱之臣)이었다. 그야말로 ‘재산과 명예는 나눌 수 있지만, 권력은 부자(父子)간에도 나누어 가질 수 없다’고 했던가.
서양의 ‘제왕학’을 집대성한 『군주론』은 ‘잔인함과 인자함에 대하여: 군주는 공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사랑받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를 다룬 용인술에서 ‘군주는 여우의 교활한 지혜와 폭력적인 사자의 힘’을 겸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사자는 덫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없고, 여우는 늑대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없다. 따라서 함정을 알아보는 여우가 되어야 하고, 이리를 도망가게 하기 위해서는 사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군주란 정직, 의리, 겸손 등 도덕적 덕목을 갖춰야 하지만 여기에만 치중하다 보면 권력 유지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속임수, 살인과 같은 비도덕적 행위는 군주가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덕목이다. 단, 국민 혹은 나라를 위해 옳은 목적으로 행할 때 말이다.”
『군주론』의 충실한 실천자 김정은은 “현명한 잔인함이 진정한 자비다”라는 마키아벨리 명언대로 자신의 킹메이커이자 2인자였던 고모부 장성택이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에게 자신을 이복형인 김정남으로 교체하려 상의했다는 밀고에 격노, 반역과 부패 혐의를 적용, 국가전복음모죄로 가차 없이 처형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0년 2월 열린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과의 비화를 전했다. 김정은이 북한 고위 간부들이 다니는 계단에 ‘2013년 장성택을 처형한 후 목이 없는 시신의 가슴 위에 얼굴을 올려놓아’ 전시한 ‘엽기적인 행위’를 자랑삼아 얘기했다는 것. (‘워터게이트’ 특종 기자 밥 우드워드, 『격노:Rage』, 2020.9.)
추측건대 “인간은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등에만 칼을 꽂기 마련이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하더라도 그는 자신에게 보복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라는 권력투쟁의 원리를 몰각(沒却)한 장성택의 의표(意表)를 찔러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자신의 절대권력에 걸림돌이 될 화근(禍根)을 제거한 것이다.
김정은은 “군주는 사랑받기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낫다. 하지만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미워지는 것을 피하는 것이 좋다.”는 인간의 야비한 본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군주론』의 가르침을 현실 정치에서 주체적으로 실천한 셈이다.
이후 장성택 계보 고위인사를 포함, 1000여 명의 주요 보직 인사를 대대적으로 숙청한 뒤 3년여 뒤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김일성의 사랑을 받고 자란 ‘백두혈통의 장자인 이복형’ 김정남을 제거, 체제 도전 세력에게 본보기성으로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2017년 2월 13일 오전 9시 대낮, 사람들로 북적이는 말레이시아 제2국제공항 대합실에서 ‘비운의 황태자 김정남’ 얼굴에 29세인 베트남 국적 여성 공작원이 화학무기용 무색무취 신경작용제 VX를 손바닥으로 문질러 절명케 했다. 2.33초라는 순식간에 흔적을 찾기 힘든 치명적인 독극물을 이용한 암살이었다. 김정은 집권에 반감을 품은 북한 내부 세력의 ‘김정남 옹립’ 등 반(反)김정은 책동 근원을 제거한다는 참초제근(斬草除根)이다.
‘잡초를 없애려면 뿌리까지 뽑아야 한다’는{『춘추좌전(春秋左傳)』 ‘은공(隱公) 6년(BC 707년)’} 권력의 논리를 따른 것이다. 권좌에 위협이 되는 잠룡을 포함, ‘누구도 예외 없이’ 화근(禍根)을 선제적으로 제거하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야수(野獸)적인 권력특성인 공포통치로 권부 인사들을 죽음에 대한 ‘위협적인 공포’로 얼어붙게 한 것이다.
히틀러를 철저하게 벤치마킹하는 김정은 통치전략
김정은 독재체제 롤 모델인 히틀러 나치 체제는 북한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김정은은 물론 “김정일이 아돌프 히틀러를 존경해 잠잘 때 그가 지은 『나의 투쟁』을 ‘베고 잔다고 말할’ 정도로 부자(父子)가 히틀러에 대해 우호적”이라고 전한다.
김정일이 명절 때 간부들에게 고급 양주나 이탈리아 양복 천과 같은 사치품을 선물했지만, 김정은은 운동 관련 외국산 스포츠용품이나 음악 CD, 세계유머집 등의 책으로 선물품목이 바뀌었다. 김은 집권 초기인 2013년 자기의 생일(1월 8일)을 기념, 당 중앙위원회 부장급(제1부부장, 군단장급 이상 포함) 고위 간부들에게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선물했다.
저작권법을 피하면서 김씨 일가와 그 특권층만의 문화적 취향을 위해 세계 유명도서를 100권만 비공개로 번역 출판하는 ‘100부 도서’(1970년대 말 처음 등장한 ‘100부 도서’는 소설을 좋아했던 김일성 개인을 위해 외국 유명소설들을 불법적으로 들여와 출판한 데서 유래)로 인쇄된 『나의 투쟁』은 김정은 통치의 지침서로 알려져 있다.
평양 파워 엘리트들 사이에선 김이 스위스 유학 때 히틀러에 심취했고, 장성택 처형에서처럼 국민을 공포에 질리게 하는 잔혹한 고문을 일삼은 게슈타포 통치방식을 따라 하고 있다는 것.
『뉴욕포스트』는 ‘Heil Kim Jong Un!(김정은 만세!)’라는 문장으로 시작된 기사에서 “김정은이 『나의 투쟁』에 심취해 있다”라며 “김정은이 대학 시절 히틀러의 애인 에바 브라운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를 했고, 북한의 인민보안대장이 나치의 비밀경찰 게슈타포에 대한 언급을 여러 번 했다”라고 보도했다.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때 눈물 보인 ‘계몽 군주’ 김정은의 본모습, 최우석 기자, 월간조선 2020년 11월호)
신비주의적 유사 종교에 기초한 유대를 강조하면서 자신을 ‘메시아’로 상징조작, 히틀러 집권 후 나치 교본이 된 『나의 투쟁』은 히틀러가 1923년 뮌헨 폭동을 일으킨 쿠데타 혐의로 갇혔을 때 루돌프 헤스에게 구술(口述)해 펴낸 책이다. 반(反)유대 및 인종주의 이념을 표방, 히틀러 집권 당시에는 나치당원의 필독서로 전 세계적으로 1500여만 부가 팔리며 널리 읽히기도 했다. 독일 당국은 2014년 히틀러 성장과 정치투쟁 과정 등이 고스란히 담긴 『나의 투쟁』 뿐 아니라 히틀러 저술에 대한 ‘무비판적 출간’을 전면 불허했다.
김정은은 간부들에게 『나의 투쟁』을 선물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패전국 독일을 짧은 기간에 재건한 히틀러의 ‘제3 제국’을 깊이 연구하고 적용 방안을 모색하라”라고 지시했다. 핵실험·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으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 제재를 받고 ‘핵·경제 병진 노선’으로 전체주의 국가를 장악한 자신과 유럽대륙을 전쟁 공포로 떨게 했던 제2차 세계대전 전야의 히틀러를 동일시하는 심리적 기제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김은 또 ‘거짓말은 거창하게 하라’는 히틀러의 대중 기만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독점자본주의 옹호, 반사회주의, 반공산주의자였던 히틀러는 대중을 끌어들이기 위한 기만 술책으로 사회주의적 정책을 내세웠다. 북한도 ‘사회주의 낙원’ 건설이라는 장밋빛 공약으로 선전, 세뇌작업을 펼치고 있다.
히틀러가 『나의 투쟁』 속에서 대중조작의 진수(眞髓)를 설파한 ‘거짓말을 하려거든 거창하게 하라는 원리’는 “그것 자체가 완전한 진실이며 거창한 거짓말에는 반드시 사람들이 그것을 믿게 하는 힘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박하고도 단순한 마음으로 하는 사소한 거짓말은 일반 대중도 가끔 하지만, 대규모 속임수 술책을 쓰는 것은 수치스러워하기에 그들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므로 오히려 사소한 거짓말보다는 거창한 거짓말에 간단히 속아 넘어가기 쉽다. 엄청난 거짓말을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겐 생각지도 못할 일이며, 야비하게 진실을 왜곡시킬 수 있을 만큼 뻔뻔스러운 인간도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것이다.”
히틀러 통치 기간 독일국민 대다수는 파시즘 특유의 선전 선동을 포함한 흑색선전 즉 거짓선동(demagogy:대중 선동을 위한 정치적인 허위 선전이나 인신공격)에 속아 열광적으로 지지했다. 전쟁에 패할 때까지 히틀러를 ‘강제가 아닌 진정으로 열망’하고 진심을 담은 자발적 의지에 따라 영웅적 지도자로 인식하고 추종했다.
이처럼 김정은은 히틀러 시대의 여러 통치술을 따르고 있다. 그는 “독일의 단결과 나치 사상 전파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것은 스포츠”라며 “모든 인민이 체육전문가가 되어야 전쟁에서도 승리할 체력을 가질 수 있다”며 2012년 말 ‘국가체육지도위원회’를 신설, 스포츠를 장려했다.
“히틀러의 게르만족 우월성 주창은 출산장려정책에서 잘 나타났다”며 ‘한 가정 3자녀 낳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격려하고 지원해주도록 지시했다. 출산장려정책의 총괄 지휘는 김정은의 아내 리설주가 맡고 있으며 이를 통해 그를 ‘조선의 어머니’로 선전하는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체제 선전을 위해 ‘조선소년단’을 조직, 9세부터 철저하게 세뇌 교육을 시도하는 것도 나치 체제의 벤치마킹이다. 세습 정당화와 체제유지를 위한 세뇌 교육을 위해 조직된 ‘소년단’은 히틀러가 1920년대 소년병 양성을 목표로 청소년에게 나치사상을 주입하기 위해 창설한 청소년 조직 ‘히틀러유겐트’와 닮은꼴이다. 다년간의 세뇌로 히틀러를 광적으로 섬긴 ‘히틀러유겐트’는 노르망디 전투 등에서 연합군에 맞서 난폭하고 야만적으로 집요하게 싸웠다.
김정은도 목에 빨간 소년단 넥타이를 맨 ‘조선소년단’ 창립기념 행사에 참석, 4만 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집권 후 두 번째 공개연설을 통해 격려했다. 그는 “조선소년단이 오늘처럼 혁명 계승자들의 힘 있는 조직으로 자랑을 떨치게 된 것은 한없이 숭고한 위대한 김일성 대원수님과 김정일 대원수님의 은혜로운 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역설, 히틀러 통치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세뇌 공작을 펼치고 있다.
히틀러는 ‘독일 소녀연맹(German Girls' League)’을 조직. ‘바람직한’ 여성상을 주입했다. 10세 소녀부터 포함된 ‘소녀연맹’은 가정과 국가에 봉사하는 여성을 ‘구원(久遠)의 여인상’으로 키워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 히틀러의 개인적 여성관은 “부드럽고, 상냥하고, 맹해야(tender, sweet, and stupid) 한다”는 캐릭터로 ‘나는 독일과 결혼했다’며 내연녀로 지내다가 독일 패배(1945년 5월 8일 항복선언) 전인 4월 30일, 동반자살 40시간 전 결혼한 애인 에바 브라운을 연상시킨다. 패배로 베를린 함락이 임박, 권총으로 자살한 히틀러가 청산가리를 줘 자살케 한 브라운은 당시 33세(히틀러 56세). 개인 취향과 국가 목표가 다른 히틀러의 여성관은 이중적이었다.
장기간 혹독한 훈련 등으로 북한 주민들의 피눈물이 담긴 대규모 카드섹션과 다양한 퍼포먼스로 구성된 ‘아리랑 공연’은 어린 학생들을 포함, 군중 10만여 명이 동원해 김일성·김정일 부자 우상화와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세계적 퍼포먼스.
2002년 김일성 생일 90돌을 맞아 세상에 공개된 ‘아리랑’은 기네스북에 등재될 만큼 세계최대 규모의 집단체조. 북한에서는 “체육 기교와 사상 예술성이 배합된 대중적인 체육 형식”이라고 정의하고, “청소년 학생들과 노동자들을 건장한 체력으로 튼튼히 단련시키고 조직성, 규율, 집단주의 정신을 키우는 효과적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김씨 정권을 과시하기 위한 노예들의 대축제로 비판받는 ‘아리랑’을 도올 김용옥은 ‘이상 국가를 위한 집단체조’라고 찬탄한 바 있다.
CNN이 “지구상에서 가장 놀라운 쇼이자, 동시에 최악의 잔인함을 도출한 쇼”라고 평가한 ‘아리랑’ 집단체조는 1930년대 뉘른베르크에서 벌인 히틀러의 나치 전당대회 모방작품이다. 1920년대 시작, 최고 70만여 명이 동원되기도 한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전설’인 레니 리펜슈탈 감독의 1935년 작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홍보 다큐멘터리 ‘의지의 승리’란 영화(1934년 9월 5일부터 10일까지 개최된 뉘른베르크집회)로 제작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지금도 선전·선동 영화의 전범(典範)으로 일컬어진다.
김정은은 히틀러가 즐겨 입고, 할아버지가 애용했던 롱코트 패션도 따라 하고 있다. 젊은 시절 미술가를 꿈꿨던 히틀러는 패션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다른 어떤 전략 못지않게 전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고, 나치 조직 안에 의복 관련 정책을 전담케 하는 ‘독일 패션국(Deutsches Modeamt)’을 설립, 군복 색깔과 ‘하켄크로이츠(卐:Hakenkreuz:‘갈고리’를 뜻하는 ‘하켄 Haken’에 ‘십자가’를 뜻하는 ‘크로이츠 Kreuz’가 합쳐진 조어)’ 마크 등 디자인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게르만족과 아리아인의 인종적 우월성을 주창하며 반(反)유대인 투쟁을 펼쳐온 히틀러가 게르만 고유의 상징이었던 나치 독일을 상징하는 갈고리 십자가 하켄크로이츠는 1920년 나치당 기로, 1935년엔 독일 국기로 제정됐다. 김일성 배지를 신성시하고, 전 국민이 착용케 하는 것도 이런 상징조작의 하나로 보인다.
히틀러는 멋있는 ‘군복의 판타지’가 청년들을 전쟁에 끌어들이는 유인책임을 간파, 청년들이 멋진 제복의 모습에 반해 앞다퉈 나치 대열에 합류하도록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초라한 군복은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줄 수 없고, 멋지고 강한 존재라는 인상을 심어주지 못한다며 침략과 패션을 결합해 나치 특유의 멋지고 독특한 군복 패션디자인으로 젊은이들을 유혹한 것이다.
직물공장 집안에서 태어난 ‘나치 선전문화상 괴벨스 박사’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로 다리가 굽어 불우한 시절을 보내며 병역까지 거부당했으나, 패션에서는 완벽을 추구했다. 출세한 뒤 수백 벌의 정장을 가진 그는 같은 옷을 두 번 다시 입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나치당이 패션을 중시하면서 독일 패션브랜드 ‘보스(Hugo Boss)’ 등 의류업자들과 디자이너들이 가세했다. 보스는 독일군 군복은 물론 나치돌격대, 히틀러 청년단, SS 친위대 등의 제복을 만들었다. 이들이 제작, 납품한 악(惡)을 상징하는 검정 일색의 정장과 해골이 그려진 모자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샤넬, 크리스티앙 디오르, 루이뷔통 등도 나치와 호흡을 맞추며 성장, 나치에 동조했던 과거사와 상관없이 지금도 패션계를 주도하고 있다.
김정은이 즐겨 입는 가죽 롱코트 등은 김정은의 ‘패션 통치’로 롱코트 차림으로 파리에 입성한 히틀러의 패션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2021년 1월 제8차 노동당 대회를 기념하는 열병식에서 김정은을 비롯해 김여정·현송월 당 부부장, 조용원 당 비서만 가죽 롱코트를 입고 나와 ‘패션으로 권력을 드러내는’ 패션 통치의 단면을 보여줬다.
‘주체 조선의 태양’은 김일성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김정은의 자아도취
북한의 야간 행사는 스케일로 대중을 압도하는 대규모 이벤트와 ‘빛의 은유(隱喩)’를 선전 선동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히틀러의 심야 행사를 벤치마킹한 것. 북한은 2018년 9월 정권 수립 70주년 행사까지는 대부분 오전에 열병식을 개최했으나, 김정은 집권 후 10년간 노동당 창건·정권 수립일 등을 계기로 총 12차례 열병식을 개최했다. 이 가운데 2020년 10월 10일 당 창건 75주년부터는 다섯 차례 연속 오후 6시에서 자정 사이 야간 행사로 심야에 진행했다.
2022년 4월 25일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은 그간 야간 열병식 중 가장 화려했다는 평가다. 형형색색의 야광 조명이 달린 옷을 입은 항공육전병 부대(공수부대)원들의 스카이다이빙과 에어쇼·드론 쇼, 조명 매스게임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김일성광장 앞에서 대동강을 가로질러 맞은편 주체탑 광장까지 부교 2개를 설치해 강변을 가로지르는 폭죽 조명 쇼를 펼친 것이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열병식 때 대동강에 부교를 설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영교 기자, 중앙일보, 2023.2.8.)
북한이 작년 심야 열병식에서 김일성·김정일 시신을 보관 중인 금수산태양궁전을 향해 쏘아 올린 조명 연출도 나치와 닮은꼴. 1933년 뉘른베르크 나치당 대회에서 히틀러 총애를 받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가 심야에 152개 서치라이트를 12m 간격으로 밤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쏘아 올린 ‘빛의 대성당’(Lichtdom) 퍼포먼스는 20세기 대표적 정치 선동 예술로 꼽힌다.
인간은 심리·뇌과학적으로 낮 보다는 육체적으로 지쳐 있는 밤에 감정을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분비량이 줄어 훨씬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 또 밤엔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 분비가 촉진되면서 나른함과 몽롱함이 더해지고 감정적인 진폭도 높아진다. 종교 단체가 각종 수련회 ‘캠프파이어’ 행사나 기도회 등 종교 행사를 심야에 여는 이유는 인간의 이러한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히틀러는 정치 초년생부터 오전 시간대보다는 저녁 시간에 연설하거나 각종 집회를 개최했다. 대중의 이성과 비판 등 판단력이 활발한 오전보다는 감성적이 되는 석양(夕陽)을 노려, 어스름 해가 지는 때부터 저녁을 활용함으로써 메시지를 비판 없이 수용하게 하려는 의도적 행위였다. 실제 히틀러 시대 나치는 베를린 중심에 있는 브란덴부르크 문 앞 ‘파리저 광장’에서 횃불이나 전기 조명 등을 활용한 군중 집회를 자주 개최했다.
김정은 체제에서 벌어지는 잦은 야간 행사에 대해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는 “북한에서 축포는 단순한 승리의 의미가 아니라 선대에서 폐허가 됐던 땅을 빛으로 밝힌다는 상징성이 크다”라며 “북한의 야간 열병식은 드론, 레이저, 비행쇼, 플레어(강한 열을 뿜어 열추적 미사일을 교란하는 불꽃) 같은 과학기술과 ‘광명(光明)’, ‘여명(黎明)’이라는 상징을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이벤트”로 “당의 영도력으로 북한 체제가 안정적이라는 인식을 인민들에게 심어주는 선물 겸 축제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2022.4.28.)
히틀러는 자신이 정치가로 유능하며 가장 위대한 전쟁 영웅이자 독일의 최고 건축가로 믿는 등 각 분야에서 권위자임을 자처했다. 이런 과도한 자기과시와 자기애, 내가 누구보다 우월하고, 대중으로부터 당연히 인정받아야 한다는 나르시시즘에 빠진 절대적인 독재자로 ‘유럽제패’를 꿈꾸며 전쟁을 일으켰던 히틀러를 숭배하는 김정은의 행보가 주목된다.
‘울보’ 눈물의 感性統治, 먹고 사는 문제 미해결, 불만과 피로감 키워
김정은 통치방식이 세월이 흐르며 집권 초기의 서슬 퍼런 공포통치 시절과 달라졌다. 1인 집권 수령체제로 ‘영도력을 확립’하면서 ‘권력은 마상(馬上)에서 잡지만, 통치는 달라야 함’을 인식한 듯하다. 선대(先代)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거나 대중을 사랑하는 애민(愛民)정치 지도자 이미지 메이킹을 통한 감성 정치로 인간적 모습을 부각, 민심 잡기에 나섰다.
2011년 김정일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렸던 김정은은 이듬해 한 음악회 화면에 등장한 선친 김정일의 생전 모습을 보며 울었고, 2014년 수산사업소를 방문해서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회상케 하는 언급이 나오자 눈물을 보였다. 2020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식, 지난해 7월 정전협정 70주년 열병식에서도 눈물 흘리는 모습을 노출했다.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선 2016년에 발표한 국가 경제발전 달성에 “나라를 위한 자신의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며 울먹이는가 하면 지난해 전국 어머니 대회에서 “출생률 감소를 막고 어린이 보육 교양을….”이라고 말하다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등 각종 현장에서 울컥하는 등 ‘울보 모습’을 자주 노출하고 있다.
집권 초기 김정은의 눈물은 백두혈통 상속자 이미지를 상징하는 ‘위대한 대원수님들(김일성·김정일)을 경애’하는 선대(先代)와 관련된 게 대부분이었지만 정권장악에 성공하면서 정권 유지를 위해 감성에 호소하며 권력과 리더십을 재구성하는 이미지 즉 “인간적인 모습을 부각해 인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감성 통치’”를 펼치고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weekly current affairs magazine) 『스펙테이터』는 ‘Why Kim Jong-un keeps crying’이라는 기사에서 “면밀하게 연출해 TV로 방영되는 행사에서 애써 눈물을 참는 모습을 내보이는 데는 나름대로 저의(底意)가 있다. 어머니 대회에선 젊은 세대들에 만연한 비사회주의적 문제들을 엄중히 단속할 것이라며, 자녀에게 사회주의 가치를 고취하는 것은 어머니의 혁명적 과업이라고 강조하면서 우는 모습을 곁들였다.”라고 지적했다.
지배자가 자기의 권력을 신으로부터 주어진 절대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여 인민의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신권정치(神權政治:theocracy) 줄여서 신정(神政)으로 신(神)에 가까운 위상을 누리는 김정은이 눈물을 내비치는 건 극적 효과를 위한 감성 통치를 노린 정치적 노림수다.
체제 선전 목적을 드러내는 행위로, 무엇보다 우선 정권 생존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위한 것이다. ‘인민의 아버지’ 이미지보다는 자애로운 ‘어머니 형상’으로, 자신의 따뜻한 보살핌이 없으면 인민은 배를 곯으며 우는 수밖에 없는 ‘아이 같은 신세’로 세뇌하려 한다.
우상화(偶像化)된 ‘어버이 수령’의 가식적 ‘악어의 눈물’은 독재자 각본에서 나온 내부 지지 부추기용 도구일 뿐이다는 분석이다. 『스펙테이터』는 김정은이 위한다는 가족은 인민이 아니라 열 살짜리 딸 김주애 등 ‘김씨 일가’뿐이라고 꼬집었다. 눈물 정치를 비판한 미국의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세계적으로 우는 모습이 공개된 몇 안 되는 세계 독재자 중 한 명”이라면서 이오시프 스탈린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비공개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릴 듯한 모습을 보였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선에 도전한 2012년 3월 대선 투표 직후 지지자 집회에서 눈물을 보인 바 있다고 지적했다.
핵으로 무장한 군사 강국에 집착, 백성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불만과 피로감만 키워 체제유지가 흔들리고 있는데, ‘울보’처럼 자주 흘리는 눈물의 감성통치(感性統治)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그의 눈물이 순정(純情)인지 지켜볼 일이다.
미국의 고립주의, 푸틴과의 정상회담으로 강화된 친러시아 행보와 ‘심리적 내전 상태’인 국내 사정 등 6·25 전야와 비슷하게 재편되는 국제정세 속에서 자연재해와 만성적 식량난에 시달리는 김정은이 전쟁이라는 돌파구를 모색할만하다. 반대의견도 있지만, 김정은 정권이 전쟁을 결심했고 한반도 정세가 6·25 이후 가장 위험한 국면으로 진입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전차, 기계화 보병, 항공기, 공수부대를 이용, 기동성을 최대한 추구한 전격전(電撃戰) 작전으로 유럽 대부분을 점령했던 것처럼 히틀러를 숭배한다는 김정은이 ‘3일 작전’ 등을 거론, 한반도의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김정은은 지난달 말 심각한 수해로 자강도에서만 2500명 이상 사망 추산 보도를 ‘날조’라며 “적은 변할 수 없는 적”이라고 적대감을 분명히 드러냈다. 할아버지 김일성에게 부여됐던 ‘태양’의 호칭마저 떼어내고 선대가 열망하던 ‘절대무기 원자폭탄까지 확보해 ‘주체 조선의 태양’이라는 김정은의 자아도취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심각하게 우려된다.
박종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철학과 ▷중앙대 정치학 박사 ▷동아방송·신동아 기자 ▷EBS 이사 ▷연합통신 이사 ▷언론중재위원 ▷가천대 신방과 명예교수 ▷가천대 CEO아카데미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