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엑스 접속 차단…두로프 이어 머스크까지 SNS 수난 잇따라
2024-09-01 14:13
브라질 31일 새벽부터 엑스 로그인 불가
머스크 "브라질 대법관, 언론 자유 짓밟아"
브라질 사회 술렁…정치권 공방도 가열돼
머스크 "브라질 대법관, 언론 자유 짓밟아"
브라질 사회 술렁…정치권 공방도 가열돼
소셜미디어 ‘거물’의 수난사가 이어지고 있다. 브라질이 지난 달 31일(이하 현지시간) 새벽부터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소유한 소셜미디어 엑스(옛 트위터)의 접속을 전격 차단했다. 프랑스가 텔레그램 CEO인 파벨 두로프를 온라인 불법행위 공모 혐의 등으로 기소한 지 불과 이틀 만이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브라질의 통신 규제기관인 아나텔은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에 엑스에 대한 사용자의 접근을 차단하라고 지시했고, 업체들은 이날 오전 0시부터 차단을 시작했다. 앞서 알레샨드리 지모라이스 브라질 연방대법원 대법관은 엑스가 브라질에서 무법천지 환경을 조성한 책임이 있다며 아나텔에 엑스 접속을 차단할 것을 명령했다. 또 앱스토어에서 엑스 삭제, 가상 사설망(VPN)을 통한 개인과 기업의 우회 접속 적발 시 5만 헤알(1200만원 상당) 벌금 부과도 함께 지시했다.
이에 머스크 CEO는 엑스에서 “엑스는 브라질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뉴스 소스”라며 “폭군 볼드모트(브라질 대법관을 지칭)가 국민 언론의 자유를 짓밟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브라질의 선출되지 않은 사이비 판사가 정치적 목적으로 이를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올해 있었던 언론 자유에 대한 공격은 21세기 들어 전례가 없던 일”이라며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부통령 후보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가 집권하면 역시 그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질 법원과 엑스 간의 충돌은 올해 4월 브라질 대법원이 엑스에 특정 계정을 차단하라고 명령하면서 시작됐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정부 시절 가짜 뉴스와 증오 메시지를 유포한 혐의를 받는 이른바 ‘디지털 민병대’의 행위에 위헌적 요소가 있으니 계정을 차단하라는 것이었다.
이후 엑스의 법률 대리인은 사임했다. 엑스는 브라질 법이 정하는 법률 대리인을 지명하지 못했고, 결국 지난달 17일 브라질에서의 사업 철수를 발표했다.
대법원은 같은 달 29일 머스크가 경영하는 미국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위성 인터넷망 스타링크 금융계좌 동결도 명령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였다.
엑스 접속 차단에 브라질 사회 잡음
엑스의 접속이 차단되면서 브라질 사회는 크게 술렁이고 있다. 심지어 정치권에서도 ‘엑스 차단’과 관련해 뜨거운 논쟁이 불붙은 상황이다.
브라질 예능작가인 시쿠 바르니는 인스타그램이 개발한 소셜미디어 스레드에 올린 글에서 “나는 지금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모른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적었다.
마우리시우 산토루 리우데자네이루 주립대 정치학 교수는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의 뉴스사이트나 소셜미디어에 접속하기 위해 VPN을 많이 사용해왔다”며 “이런 유형의 도구가 브라질에서 금지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으며 이는 디스토피아 같다”고 비판했다.
AP통신은 “엑스 차단의 정당성을 놓고 사용자와 정치인들이 분열됐다”며 “많은 브라질인은 다른 소셜미디어를 찾아 나서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브라질 우파야당인 자유당 소속 니콜라스 페레이라 하원의원은 “폭군들이 브라질을 또 다른 공산주의 독재 정권을 만들고 싶어 하지만 우리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페레이라는 2022년 총선에서 당선된 연방의원 중 가장 많은 표를 받은 26세 유튜버다. 같은 당 소속 비아 키시스 하원의원은 지모라이스 대법관에 대한 탄핵 절차 개시를 촉구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통해 이번 조치는 “표현의 자유뿐 아니라 국가 안보부터 시민에 전달되는 정보의 질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브라질에서 사업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브라질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다”고 꼬집었다.
반면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전날 언론 인터뷰에서 “브라질에 투자한 시민은 그가 어디에서 왔든 브라질의 헌법과 법률을 적용받는다”며 시민들은 대법원의 결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모라이스 대법관의 이번 결정을 지지한 언급으로 풀이된다. 그는 “돈이 많다고 이를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대법원 결정에 반발하는 머스크를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브라질 외에 엑스를 차단한 곳은 대부분 권위주의 국가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경우 200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20주년을 이틀 앞두고 엑스 사용을 금지했고 이란도 2009년 반정부 시위가 거세자 엑스를 차단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2010년 다른 외국 사이트 여러 곳과 함께 엑스 접속을 막았다. 러시아와 미얀마, 이집트, 튀르키예, 파키스탄 등도 각각 엑스를 차단한 상태다.
SNS 수난
브라질의 엑스 접속 차단은 프랑스 검찰이 텔레그램의 파벨 두로프 CEO를 기소한 지 불과 이틀 만에 벌어진 것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엑스와 텔레그램 모두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이들이 잇따라 수난을 겪으면서 SNS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브라질 엑스 접속 차단은 미국이 틱톡 금지로 이어질 수 있는 법을 통과시킨 지 몇 달 만에 일어난 일”이라며 “소셜미디어 시대는 여전히 건재하지만 기술 거물들이 온라인 세계를 자유롭게 형성할 수 있었던 시대, 현실 세계의 결과로부터 면책을 누렸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WP는 특히 프랑스의 두로프 기소와 브라질의 엑스 차단을 가리켜 "당국을 과도하게 무시했던 사이버 자유주의를 주창하는 기술계 거물들에게 민주국가 정부들이 인내심을 잃고 있다는 것"이라고 평했다.
스탠포드 대학의 사이버 정책 센터에서 플랫폼 규제 프로그램을 이끄는 다프네 켈러 전 구글 변호사는 “인터넷이 자유의 도구로 여겨졌던 시기에서 인터넷이 위협으로 여겨지는 시기로 담론이 이동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다른 정부들, 언론, 시민 사회 등이 플랫폼 편을 드는 경우가 훨씬 적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