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수의 절차탁마] 미장공이 '프린지'를 노래하다

2024-08-30 06:00

[이두수 작가]
 
‘에든버러국제페스티벌’ 말만 들어도 흥분되는 페스티벌이었다.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국제적인 페스티벌로 8월 한 달간은 시내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다. 그간 말만 들었지만 이번에 영국 지인의 덕분에 길거리 아티스트로 참가했다.

8월 1일, 영국으로 떠나는 날이다. 하지만 영주 건설현장에 미장공이 나 하나인 관계로 오전까지 일을 하고 오후에 서울로 가서 비행기 출발 1시간 전에서야 겨우 탑승 수속을 마쳤다. 이번 여행은 헬싱키-런던-에든버러-파리를 방문하는 것으로 일용직 건설노동자로서는 다소 긴 25일간의 장기 계획을 세웠다. 언제 유럽을 다시 가겠나 하는 생각도 있지만 ‘사치스런 노동자’의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6년 전 처음 건설노동자로서 입문하면서 느낀 것은 건설노동자는 막노동꾼의 이미지로 인생을 되는 대로 막 사는 좀 남루한 이미지였다. 이런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었다. 노동자도 고급스포츠를 즐기며 예술을 향유할 줄 아는 교양있는 시민으로서 이미지 변신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글도 썼다. 그리고 여름에는 골프도 치고 요트를 타고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고기를 썰며 와인도 마시는 내가 아는 사치는 이런 것이었다. 용평에서 스노보드를 타다가 어깨뼈가 부러져 사치의 계획은 꿈으로 끝나긴 했지만 그림 전시회는 매년 4~5회 열고 있다. 그런 흐름 속에 작년 북촌전시회 때 만난 영국에 사는 지인의 도움으로 이번 에든버러프린지페스티벌에 ‘스트리트 아티스트’로서 참가하게 된 것이다.

 
[그림 설명= 아무리 선진국이라고 해도 노동자의 모습은 비슷하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거 같다. 생각하는 것 그 자체가 그 사람이다.]

우리 사회에서 골프가 아직은 사치스런 고급진 스포츠로 여겨지고 있지만 영국에서 페이스북으로 만난 지인에 의하면 원래 골프가 스코틀랜드에서 출발했는데 처음엔 노동자들의 놀이였다는 것이다. 양치는 목동이나 나무꾼, 돌 깨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어깨에 막대기를 여러 개 지고 다니면서 이 언덕 저 언덕으로 공을 치며 놀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잉글랜드로 건너오면서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골프장을 만들면서 자동차가 있는 부유층들의 사교거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영국에 도착 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프로이드 박물관이다. 일부러 찾은 것은 아니지만 런던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햄스테드 언덕을 가면서 방문하게 되었는데 주변엔 유명인사들이 살았다고 하는 안내판이 붙어있는 집들이 꽤 있었다. ‘공산당선언’과 ‘자본론’을 쓴 마르크스가 묻힌 하이게이트 공원묘지도 가까이에 있었고, 공산사회의 실상을 비판하는 소설 <동물농장>을 쓴 조지오웰이 살았던 집도 근처에 있었다.  

프로이드 박물관에서 흥미있게 본 것은 프로이드가 소장하고 있던 여러 나라의 전통 공예품들이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말을 타는 조작품이었다. 프로이드는 정신분석에 있어 정신의 근간을 이드-에고-초자아로 구분했는데 이것을 말과 기수로 설명했다.

본능적인 충동과 넘치는 힘을 지니고 있는 말(이드)과 방향과 속도를 조종하는 기수(자아)의 비유를 들어 자아와 이드의 관계를 “말은 운동에너지를 공급하는 반면, 기수는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고 말을 이끌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아와 이드 간에는 기수가 어쩔 수 없이 말이 가자고 하는 길로 이끌려갈 수밖에 없는 이성적이지 못한 상황이 너무나 자주 출몰한다”고 설명했다. 아마 이 목각인형을 보고 그런 아이디어를 착상했는지 모른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영국 투어에서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곳은 대영박물관일 것이다. 영국박물관에 영국 것은 없고 해외에서 수탈해 온 유물들로 가득하다고 말들 하지만 세계의 문물을 수집해 놓은 제국의 수집관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동서양 세계의 모든 문화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지적인 수준을 깊게 할 수 있는 기회가 큰 것이다. 마르크스도 이곳 ‘리딩룸’을 자주 드나들며 ‘자본론’을 썼다고 하는데 그 자리까지는 가보지 못했다.

나는 박물관은 건성으로 보거나 지나쳤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미술관 투어였다. 이번 여행에서 4개 도시를 다니며 미술관은 모두 방문해 보았다. 에든버러에선 내 부스가 스코틀랜드 내셔날 뮤지엄 바로 옆에 있어 수시로 들락거렸다. 신기한 것은 모두 인상파 그림이 주로 전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인상파가 유럽 사회에 끼친 영향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일 것이다.

나는 8월 15일 광복절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맞았다. 축제 기간중이라 내 숙소에서 전시부스까지 걸어 가는 동안 백파이프연주는 내내 듣게 된다. 아니 하루 종일 듣는다. 이날 아침 나는 과거 우리나라 애국가의 곡으로 차용한 올랭자인(old lang syne)을 백파이프 연주로 들었다. 가슴이 울컥했고 눈물이 핑 돌았다. 나라를 잃은 슬픔을 달랠 길 없어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스코틀랜드 민요에 곡을 얹어 국가를 불러야 했던 선인들의 고달픈 심정이 느껴졌다.

스코틀랜드와 한국과의 관계를 찾아보니 기독교가 처음 한국에 선교될 때 한국어 학습서(Corean Primer)를 간행했고 최초의 한국어 성경을 번역한 사람이 바로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로스(John Ross) 선교사였다. 그는 한글의 띄어쓰기를 최초로 적용한 분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는 물론 영국이긴 하지만 자치권을 가지고 있고 자국 화폐도 가지고 있다. 유럽연합(EU) 속에 자주적인 각 나라가 연합되어 있듯이 영국(UK) 속에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가 연합되어 있다. 영국국기 유니온잭은 이 나라들의 깃발을 합쳐 놓은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스코틀랜드는 로마화되지 않은 지역이기도 하다. 로마가 브리튼 지역을 정복하면서 북부지역 사람들의 강력한 저항과 춥고 음습한 기후로 더 이상 사람이 살지 못할 곳으로 여겨 선을 그은 것이 하드리아누스 방벽이다.

로마도 포기한 지역, 지금은 주로 하이랜드라고 불리는 이곳은 기후가 음습한 곳으로 한여름 아침 기온이 12도였다(당일 서울은 35도였다). 춥기 때문에 알코올 도수가 높은 위스키를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이런 날씨에 비가 내리면 정말 겨울 잠바를 꺼내 입어야 한다. 축제 기간 내내 우산과 잠바를 가지고 다녀야 했다. 이런 춥고 음습한 환경 때문인지 사람이 자꾸 생각을 하게 된다.

에든버러 대학 기숙사 뒤에는 아서왕이 앉았다는 바위산이 있다. 아침마다 이 산에 오르면서 생각나는 것이 춥고 돌이 많은 지역과 덥고 나무가 많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 어떤 사유를 하게 될까 하는 것이었다. 돌로 집을 지으니 몇 백년을 유지한다. 여러 집을 지어야 되다보니 도시계획을 세워야 하고 거기서 디자인 개념이 생겨나고 도시에 시장이 생기니 질서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런 사유 때문인지 스코틀랜드엔 유명한 과학, 철학, 경제학 등 분야의 학자가 많다. <국부론>을 집필한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 인식론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흄, 힉스입자를 제안한 피터 힉스, 증기기관을 개량한 제임스 와트, 페니실린을 만든 알렉산더 플레밍 등이 모두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유명한 작가도 많다. 역사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연 월터 스콧, <셜록 홈즈>를 집필한 아서 코난 도일, <해리포터>의 저자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 1권과 2권을 쓴 곳이 에든버러다. 정말 에든버러에 와 보면 해리포터의 세트장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고색창연한 분위기다.

위와 같은 학자들을 배출하는 데 스코틀랜드의 개혁성향을 만든 사람은 역시 존 녹스(John Knox)일 것이다. 시내에는 그를 기리는 동상이나 교회가 많이 있었다. 존 녹스는 종교개혁자로서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기초를 놓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권위는 군주보다 앞선다’는 그의 가르침은 신앙을 위협하는 군주에 대항할 권리와 의무에 확신을 주었으며, 가톨릭의 권위에 대항한 그의 개혁 신앙은 스코틀랜드인들 특유의 진보적 사고를 가져왔다.

미술에 있어 인상파의 그림이 그러한 것이다. 전통적인 즉 왕과 교회 그리고 귀족을 위한 그림과 기법에서 자기의 시각과 생각을 가지고 색채와 색조 구도 자체를 자유롭게 표현해 보려는 시도는 이러한 개혁성향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여기에 당시 일본 우키요에의 색채와 구도도 인상파 그림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당시 우키요에는 유럽의 화가들이 생각하지 못한 구도로 그림을 그렸다. 인상파의 효시라고 할 모네의 작품이나 고흐의 작품에는 일본풍이 많이 묻어난다. 지금도 유럽에는 일본문화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많다. 파리시내에 일본영화 ‘멜랑꼴리’ 포스터가 거리마다 붙어 있었다.

한류도 만만치 않았다. 이번 에든버러축제에 가장 인기있는 공연은 정선군에서 제공한 아리랑 뮤지컬 ‘아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내 부스에 찾아오는 손님들마다 한국 공연이 너무 재미있었고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내가 보러 갔을 때에도 만석이었는데 매번 만석이었다고 한다. 하긴 에든버러 대학 구내편의점 한 코너는 한국 라면으로 가득했다.

런던에서 파리로 올 때 유로스타를 이용했다. 국가간의 이동이라 간단한 출국심사를 거치지만 전철 타듯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현재 영국과 프랑스는 관계가 좋아 보이지만 사실 두 나라는 100년간의 전쟁을 한 나라다. 100년간 잉글랜드가 프랑스를 유린했다. 잉글랜드군은 대부분 용병으로 기사도나 명예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고 약탈을 일삼았다. 프랑스 북부는 아예 잉글랜드가 오랫동안 점령하고 있었고 남부 프랑스마저 무너질 절체절명의 순간 프랑스를 구한 것은 오를레앙의 잔 다르크라는 일개 소녀였다. 오늘날의 영국이 섬나라로 국경이 확정된 것이 이 100년 전쟁의 결과다.

그렇지만 두 나라는 역사문제로 감정소비를 하지 않는다. 종교개혁과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이념과 명분이 아니라 현실을 중시하게 된 것이다. 한·일관계도 이젠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역사적 울분으로 증오만 키울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한·일 두 나라가 영국과 프랑스처럼 협력관계가 되고 철도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면 세계 최고의 관광지가 될 것이다.

25일간의 긴 여행으로부터 돌아오면서 ‘노동해방’이란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적어도 난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소외에서 제외된 자 같다. 어쩌면 노동에서 해방된 자인지도 모른다. 일당으로 사는 일용직 노동자가 거의 한 달간 일을 안 하고 사치나 공상하고 여행이나 즐기는 덜 떨어진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나는 노동이야말로 창조 행위이며 예술적 행위라고 생각한다. ‘생산수단’을 공동 소유한다고 노동자가 노동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세밀하게 바라보고, 섬세하게 느끼며 정성을 다해 일하는 노동은 그 자리가 어디든 빛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창조는 그런 반복적인 작업을 감사하게 여기며 오늘 더 새로운 생각을 표현해 보는 것이다. 나만의 시각으로. 이번 에든버러 프린지 축제의 캐치프레이즈는 “unleash the Fringe 프린지를 자유롭게 누벼라!” 인데, 프린지(Fringe)의 의미가 ‘자유로운 상상력’, ‘실험정신’ 이런 뜻이란다.







이두수 작가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건설 현장의 안전을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노동자의 인문학적 소양 계발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생활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