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제의 기출문제] 개원 3개월 만의 민생 국회…박수 쳐줘야 할까

2024-08-29 06:00
전세사기특별법·구하라법 등 28개 법안 통과
"밀린 숙제 풀듯 후다닥…곱게 볼 수 있겠나"

서울 여의도 국회 전경. 2024.06.28[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제22대 국회가 지난 6월 5일 개원한 뒤 약 3개월 만에 '민생 법안'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소리만 지르던 여야가 드디어 손을 잡고 발을 맞추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법안들과 22대 국회에서 새로 발의한 민생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건데, 왜 그동안엔 서로 싸우기만 했느냐는 의문이 나온다.

28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는 29개의 의사일정이 상정돼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일정 중 1개는 국정감사 실시 관련 안건이고, 나머지 28개는 민생 법안이었다. 
 
여야 이견 극명했던 간호법 제정안도 처리
우원식 국회의장이 28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전세사기특별법이 통과를 알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8개의 민생 법안 중에서 '전세사기 특별법'은 여야가 수 없는 다툼 끝에 합의 처리한 대표적 법안이다. 이 법은 22대 국회에서 여야가 처음으로 합의해 상임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하기도 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경매로 매입해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주택을 장기 공공임대하거나 경매 차익을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피해자는 임대료 없이 최장 10년 동안 거주할 수 있게 규정했다. 

이른바 '구하라법'으로 불리는 민법 개정안도 본회의를 넘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양육 의무를 불이행한 친부모에 대해선 상속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27일 하루 동안 법안심사1소위원회와 전체회의를 거치며 여야 의원들 만장일치로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는데, 서 의원은 법사위 통과 직후 "오늘은 정말 역사적인 날"이라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여야의 의견 차이가 극명했던 간호법 제정안도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은 수술 집도 등을 보조하는 등 의사의 일부 업무를 담당하는 '진료지원(PA) 간호사'의 역할을 법제화하고, 이들의 의료 행위를 법으로 보호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 외에도 △범죄피해자 보호법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 △도시가스사업법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법 개정안 등이 국회 문턱을 통과했다.
 
야당 주도 통과된 쟁점 법안에 尹 거부권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1일 오후 국회 로텐더홀에서 야당의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 발의와 '노란봉투법' 본회의 상정 등을 규탄하고 있다. 추경호 원내대표가 규탄발언을 하는 동안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의원총회를 마치고 본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야는 이날 본회의에 쟁점 법안들을 단 하나도 올리지 않았다. 민주당의 입법 강행으로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돌아온 법안들도 이날 본회의엔 상정되지 않았다.

22대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제외하고, 그간 8번의 본회의를 열었다. 첫 본회의는 지난달 4일로 야권이 강행한 '채상병 특검법'이 통과됐다. 이 법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돌아왔다. 같은 달 25일 열린 본회의에서 재표결에 부쳐졌으나, 찬성 194표, 거부 104표, 무효 1표로 폐기됐다.

지난달 26일부터 30일까지는 '방송4법'이 차례대로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이달 2일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논의를 띄운 전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특별조치법(전 국민 25만원 지원금법), 5일에는 노동조합법 개정안(노란봉투법)이 각각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들 법안은 모두 정부와 여당이 부작용을 우려해 반대한 법들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과정에서 여야는 서로 얼굴을 붉히고 고성을 질러가며 끝없이 싸웠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반대에도 의석수를 앞세워 법안을 강행 처리했고, 여당 의원들은 이에 반발해 상임위 전체회의 표결이나 본회의 표결에 불참하는 방식으로 항의했다. 여당 의원들은 본회의 때마다 민주당 행태를 규탄하며 국회 로텐더홀을 가득 채웠다. 

정치권에서는 애초 민주당이 이번 본회의에 재표결을 요청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우원식 국회의장이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오늘은 (여야) 합의 처리된 법안이 통과된다"고 못 박았고, 민주당도 한 발 물러나면서 결국 본회의 의사일정에서 쟁점 법안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22대 국회 개원 3개월 만에 민생 법안이 대거 처리됐으나, 마냥 박수를 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날 본회의를 두고 '할 수 있었는데 왜 안 하느냐'는 불만 섞인 소리가 나온다. 영남권의 한 국민의힘 원외 인사는 "국민들께서 우리 정치에 혐오감이나 불신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오늘 같은 모습 때문"이라며 "맨날 싸우다가 밀린 숙제를 풀듯이 민생 법안을 후다닥 처리하는 모습을 곱게 볼 수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기 국회를 앞두고, 또 추석 연휴를 앞두고 뭐라도 성과가 있어야 하니 거의 30개에 이르는 법안들을 처리한 것 아니겠냐"며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이 서로 싸우라고 뽑은 게 아니라 문제가 되는 법을 고치고, 민생 법안을 새로 만들라는 요구에 의해 뽑힌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