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 Biz] "황무지에서 일군 '보랏빛 꿈'"…中와인 1번지 닝샤에 가다

2024-08-29 06:00
여의도 면적 140배···중국 와인 1번지
국제대회 휩쓰는 中와인···'닝샤의 심판'?
왕이도 극찬한 부티크 와이너리

허란훙 와이너리에 방문객을 위해 마련된 와인 시음실. [사진=배인선 기자]

지난해 4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건넨 선물은 중국산 와인 6종 선물세트. 중국 닝샤후이족자치구에서 자란 포도로 중국인이 직접 만든 와인이다. 시 주석은 올 초 방중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국빈 만찬에서도 닝샤 와인으로 건배를 했다. 시 주석은 2016년과 2020년 두 차례 닝샤를 찾아 중국산 와인 산업 발전을 장려하기도 했다. 중국 최고 지도자가 직접 나서서 띄우는 닝샤는 오늘날 중국 와인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 와인 1번지’로 떠올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20년 6월 닝샤자치구 인촨 허란산 일대 포도밭을 방문했다. [사진=신화통신]
 
여의도 면적 140배 포도밭···중국 와인 1번지 우뚝
닝샤자치구 인촨 국제공항에 내리면 와인병 모양의 LED 조형물이 관광객을 반긴다. [사진=배인선 기자]

이달 초 중국 닝샤자치구 인촨의 현지 포도주 산업 현장을 찾았다. 닝샤 공항에 내리자마자 ‘와인의 도시’라고 적힌 와인병 모형의 LED 전광판이 취재진을 반긴다. 인촨 시내로 들어오는 도로 옆 전광판엔 현지 와이너리 홍보 광고가 내걸려 있다. 보통 부동산이나 바이주 광고로 채워진 다른 도시 전광판과 사뭇 다르다.

인촨에서 서쪽으로 약 30㎞ 떨어진 허란산 동쪽 기슭. 고비 사막 가장자리에 위치한 이곳은 1980년 초까지만 해도 나무 한 그루 나지 않는 황무지였다. 하지만 현지 정부의 재정·행정 지원 속에 도로를 닦고 전기선을 깔고 황허의 물을 끌어와 수로를 구축해 포도밭으로 개간하면서 오늘날 중국 와인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허란산 일대가 실현한 ‘보랏빛 꿈’은 중국에서 TV 드라마로도 제작됐을 정도다. 

"天上無飛鳥,地下石頭跑, 張嘴吃沙土,牛羊沒有草 (하늘에 나는 새 한 마리 없고, 땅엔 자갈만 굴러다니고, 입만 열면 모래가 씹히고 소와 양은 먹을 풀이 없네)"

닝샤 포도주 굴기를 그린 드라마 ‘싱싱의 고향(星星的故鄕)’에 나오는 첫 대사다. 1984년 허란산 일대의 황무지 모습을 그대로 묘사했다.

하지만 이제 허란산 일대는 포도 재배 면적만 60만2000무(畝·1무는 약 666.67㎡)에 달하는 중국 최대 포도주 산지로 떠올랐다. 여의도의 140배에 달하는 1억2000만평이 넘는 어마어마한 면적이다. 이곳에서 창출되는 일자리 수만 13만개, 연간 생산액만 400억 위안(약 7조4400억원)이 넘는 와인은 닝샤의 핵심 산업으로 떠올랐다. 

이곳은 프랑스 보르도와 같이 세계 와이너리의 황금지대라 불리는 북위 38도의 해발고도 1000m 지역에 위치해 있다. 황허가 흐르는 허란산 기슭의 충적 평야지대로, 모래 자갈이 섞인 토양으로 이뤄져 배수와 통풍이 좋은 데다가 미네랄 성분도 풍부하다. 일조량 3000시간 이상, 연간 강우량 200mm 이하의 다소 건조한 기후이고, 일교차도 11~15도로 커서 포도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 보존이 잘된다고 한다. 

특히 허란산이 '천연 병풍' 역할을 하며 사막의 모래는 물론 북쪽의 찬바람을 막아줘 서리 걱정 없이 충분한 일조량을 누릴 수 있다. 와인용 포도를 재배하기엔 안성맞춤이다. 
 
국제대회 휩쓰는 中와인···'닝샤의 심판' 기대감도
창청톈푸 와이너리 포도밭. 9월초 수확을 앞둔 카베르네 소비뇽 포도알이 주렁주렁 맺혀있다. [사진=배인선 기자]

취재진이 직접 찾아간 창청 톈푸 와이너리. 이곳은 중국 최대 국유 식품회사인 중량그룹(코프코) 산하의 와인 브랜드 창청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푸틴 대통령 만찬 국빈주로 대접한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광활하게 펼쳐진 포도밭은 9월초 수확을 앞두고 있다. 포도 덩굴마다 카베르네 소비뇽 포도알이 보랏빛 구슬처럼 영글어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포도가지가 비스듬한 방향으로 자라고 있는 것. 이는 닝샤의 겨울철 기후 요인에서 기인한 것이라 한다.

창청 톈푸 와이너리 두전장 총경리(대표)는 “닝샤의 겨울은 상대적으로 춥고 건조해서 가을 수확을 마치면 포도가지도 ‘월동’ 준비를 한다”고 설명했다. 포도가지를 지면에 눕혀 흙으로 덮어 약 40㎝ 깊이로 묻는데, 비스듬한 포도가지는 이러한 월동 준비에 유리하다는 것.

4억2000만 위안을 투자해 만든 이곳 포도밭에는 카베르네 소비뇽뿐만 아니라 메를로, 피노누아, 샤도네이 등 10종의 다양한 포도 품종이 재배되고 있다. 관개용수, 비료, 토양 등은 실시간으로 스마트 빅데이터 플랫폼에서 관리된다. 이곳 포도밭서 수확한 포도로 연간 2만톤의 와인을 생산한다. 

창청 톈푸처럼 이곳 닝샤에 둥지를 튼 와이너리만 모두 200여 곳. 이곳의 연간 와인 생산량은 1억4000만병에 달해 중국 전국 와인 생산량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다. 현지 60여 개 와이너리가 벨기에 브뤼셀, 독일 베를린 등에서 열린 국제 대회 수상경력만 1700여 차례에 달한다. 현재 40여 개 국가 및 지역으로 수출되고 있다.

중국 부자연구소 후룬이 올해 처음 발표한 '중국 50대 와이너리' 순위에 닝샤 현지 와이너리 27곳이 이름을 올렸을 정도다.

특히 닝샤시 정부가 현지 포도주 산업 발전을 적극 지원사격하고 있다. '허란산 와인 문화 회랑 발전규획'을 마련하고, 정부 산하에 전국 최초로 포도주산업단지 관리위원회(국장급)를 만드는가 하면, 와이너리에 각각 등급을 매겨 철저히 관리도 하고 있다. 국제 와인대회에 수상한 와이너리에는 장려금도 지급한다.

허란산 일대 와인 브랜드 파워를 키우기 위해 몇몇 중소 와이너리를 묶어 ‘허란훙’이라는 지역 브랜드를 만들고, 매년 국제 와인 엑스포도 개최하고 있다. 중국 최초로 와인을 주제로 한 국가급 국제 종합 박람회 행사로, 올해로 벌써 4회째를 맞이했다. 
8월 9일 중국 닝샤자치구 인촨에서 국제와인문화관광박람회가 개막했다. [사진=배인선 기자]

중국 특색 와인을 육성하기 위한 노력도 진행 중이다. 프랑스 수입산 포도 품종인 마르셀란을 중국화한 게 대표적이다. 카베르네 소비뇽과 그르나슈 누아의 교배종인 마르셀란은 최근 프랑스보다 중국에서 더 활발하게 재배되며 중국을 대표하는 품종으로 거듭나는 모습이다. 지난해부터는 세계 최초 마르셀란 국제포도주대회도 개최하고 있다. 

세계 최대 와인 경진대회 ‘콩쿠르 몽디알 드 브뤼셀’이 내년 개최지로 닝샤를 선택했을 정도로, 닝샤 와인은 이제 국제 와인업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한 와인업계 관계자는 닝샤 와인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내며 1976년 '파리의 심판'에 빗대 2025년 '닝샤의 심판'을 기대하기도 했다. 파리의 심판은 1976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와인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프랑스 와인을 제치고 미국 와인이 1위를 차지한 사건이다. 파리의 심판이 미국 와인의 우수성을 알리며 세계 와인 역사를 바꿨듯, 내년 대회에서 중국 와인도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기대감을 보인 셈이다. 
 
"가장 맛있는 와인" 왕이도 극찬한 부티크 와이너리
 
궁제 허둥 와이너리 대표가 100년 포도덩굴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든 프리미엄 와인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배인선 기자[

최근엔 특색 있는 프리미엄 와인을 취급하는 부티크 와이너리의 약진도 눈에 띈다. 취재진이 찾은 허둥 와이너리가 대표적이다. 

“왕이 외교부장도 중국에서 가장 맛있는 화이트 와인이라고 극찬했지요." 궁제 허둥 와이너리 대표는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2016년 3월 왕이 당시 외교부장이 자신이 직접 따른 포도주를 마시며 한 말을 떠올리며 “최상의 품질로, 특색 있는 와인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허둥 와이너리는. 창청·장위 등 중국 전통 국유 와인 브랜드와 당당하게 경쟁하는 닝샤 현지 부티크 와이너리다. 후룬이 선정한 중국 50대 와이너리 2위에 올랐을 정도다. 최상급의 고급 와인을 주로 취급한다. 750ml 한 병에 최고 5000위안짜리 와인도 있다. 중국 국가 국빈 접대주로도 간택된 허둥 와이너리 와인은 지난해 시 주석이 마크롱 대통령에 선물한 6종 와인 세트에도 포함됐다. 연간 생산량은 고작 25만톤 내외로 적다. 

궁 대표는 과거 네이멍구 광산업자였다. 평소 와인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2010년 닝샤의 낡은 국유 와이너리를 매입해 본격적으로 와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1997년 세워진 국유 와이너리는 무성한 잡초에 가려 포도덩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실상 버려진 포도밭 투성이었다고 한다. 리모델링에만 2억 위안 가까운 거액이 들었다. 차라리 새로 포도밭을 개간하는 게 낫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궁 대표는 이에 대해 “와이너리의 역사와 스토리를 이어가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명품 와인처럼 되려면 맛은 기본이고 수백년에 걸친 역사와 스토리가 필요하다는 게 궁 대표의 생각이다. 

실제로 허둥 와이너리의 자랑거리 중 하나가 100년 포도덩굴 스토리다. 100년 전 심었다는 이 포도덩굴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든 와인 가격은 1.5ℓ에 무려 8만 위안이다. 덩굴 하나에 생산할 수 있는 포도주는 연간 1ℓ에 불과해 희소성이 높다. 매년 경매로만 팔고 있는데, 경매 수입은 모두 공익사업에 기부하고 있다고 했다. 

와인과 예술 문화를 결합한 와이너리 투어도 인기다. 포도밭을 한 바퀴 둘러보는 관광열차, 낡은 기차를 개조한 호텔, 포도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문화공간까지, 이미 국가 4A급 관광지로도 지정됐다. 매년 허둥 와이너리 투어를 찾는 관광객만 8~10만명에 달하고 있다.

최근 중국 경기 불황 속에 중국인들이 프리미엄 와인 소비를 줄이고 있는데도, 허둥 와이너리가 연간 10~20% 매출 성장세를 안정적으로 이어 나갈 수 있는 배경이다.  허둥 와이너리처럼 닝샤 현지 부티크 와이너리들의 최고급 품질의 특색있는 와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3대째 와이너리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현지 부티크 와이너리인 화하오 와이너리 청이어우 대표는 “매년 연구 개발을 하며 끊임없이 기술과 경험을 계승할 수 있다는 게 부티크 와이너리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선물한 닝샤 와인 6종 선물세트. 닝샤 와인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사진=배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