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신안 섬 마을 민간인 19명 학살사건 유족 승소

2024-08-18 14:18
법원, 전남 신안군 '증도면 등선리 희생사건' 유족들 손 들어줘...원고 3명에게 1억4400만원 지급 주문
한국전쟁 당시 경찰 좌익인사 색출이라는 명목하에 신안군 주민 19명 구타·고문 뒤 총살시켜

신안군 증도면 병풍도 [사진=연합뉴스]
법원이 6·25전쟁 당시 경찰이 전남 신안군 증도 돌마지 마을 주민 19명을 학살한 사건에서 유족 측 손을 들어줬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법 민사10단독 하종민 부장판사는 전쟁 당시 경찰에 사망한 황모씨 유족 3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날 법원은 좌익과 우익 간 갈등에 휘말려 희생당한 황씨 유족들에게 정신적 손해배상을 할 필요성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한국전쟁 시기 경찰이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황씨를 살해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이에 따라 유족들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은 경험칙상 명백하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이날 재판부는 원고 3명에게 모두 1억4400만원의 정신적 손해배상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황씨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게 된 것은 대통령 직속 기구인 진실화해위원회가 한국전쟁 당시 전남 신안군에서 벌어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인 '증도면 등선리 희생 사건'에 대해 진상 규명을 촉구하면서다.

당시 사망한 황씨(1912년생, 당시 38세)는 이 사건으로 희생된 19명 중 첫 번째 사망자로, 전남 신안 병풍도에서 가족과 함께 살던 어민으로 알려졌다.

1950년 전쟁 초기 북한 인민군은 전남 신안을 장악해 섬마을까지 들이닥쳤고, 병풍리 이장 A씨 부자를 우익인사라고 주장하며 총살했다. 이후 국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목포를 수복한 뒤 병풍리에 들어와 좌익을 몰아낸다는 취지로 주민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였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결과 당시 경찰은 "자수하면 살려준다"며 주민들을 우익단체인 대한청년단 사무실로 유인했고, 당시 다른 섬에 있던 황씨에게도 "배 젓는 노와 키를 가지고 오라"고 유인했다.

경찰 측 부름을 받고 대한청년단 사무실로 찾아온 황씨는 사무실에 갇혀 경찰들에게 무자비한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 황씨 외에도 경찰에 붙잡힌 주민 18명은 좌익으로 몰려 구타를 당했다. 

이후 경찰은 이들을 인근에 있는 증도 모래섬으로 끌고 간 뒤 제일 처음으로 황씨를 사살했고, 이후 18명을 인근 야산으로 끌고 가 모두 총살했다.
 
당초 황씨 어머니는 황씨 행방을 알기 위해 대한청년단 사무실에 식사를 제공하며 아들 소식을 알고자 했으나 행방을 알 수 없었고, 이후 황씨가 증도로 끌려 갔다는 소식을 듣고 뒤늦게 증도를 찾아 황씨 시신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