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한계(限界)

2024-08-16 07:00

사나울 '폭(暴)'에 불꽃 '염(炎)'. 한자의 뜻에서 드러나듯 단순한 더위가 아니라 매우 심한 더위, 맹렬한 더위를 의미한다. 사납도록 불타는 더위가 올해 유독 길게 이어지고 있다. 더위 앞에 '사막', '가마솥', '살인적' 등 온갖 접두어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다. 

불볕더위에 냉방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 총수요도 역대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하루 최대 전력 소비가 100GW를 넘는 상황이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자리잡고 있다. 이달 들어 세 차례나 여름철 전력 소비 최대치를 경신했고 전력 위기 경고등 역할을 하는 전력예비율도 올 들어 최저치를 찍었다. 

문제는 이 같은 기록적인 폭염이 광복절 이후에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전력당국은 대란을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설명하지만 지난 2011년 9월 블랙아웃(대정전) 공포가 떠오르는 게 사실이다. 당시 사상 초유의 정전 대란으로 접수된 피해 신고가 9000건, 피해 금액만 610억원에 육박했다.

폭염은 한국전력에도 악재다. 한전이 발전 자회사들로부터 사오는 전기값인 전력도매가격(SMP·전력구입가격)이 올라 실적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전력거래소 전력통계정보시스템(EPSIS)에 따르면 지난달 가중평균 SMP(통합 기준)는 kWh(킬로와트)당 132.49원으로 넉 달 만에 130원대를 웃돌았다. 지난달 120~130원 수준이던 가중평균 SMP는 이달 들어 140원대를 돌파했다. 일시적으로 150원대를 넘기도 했다. 

여기에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전력 구매 비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전의 실적 개선 속도가 더뎌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통상 유가 흐름은 3~4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전력 도매 가격에 반영된다.

한전은 더 이상 고통을 감내할 여력이 없다. 한계에 다다른 모습이다. 간신히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지난해 3분기 이후로는 영업이익 흑자 폭이 계속 줄고 있다. 

결국 전기요금 인상이 해법이다. 요금 현실화로 안정적인 재정 기반을 구축하는 동시에 기업·가계도 지나친 전력 과소비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국회가 나서야 한다. 전기요금 현실화는 물론 인공지능(AI)시대 도래에 따른 송전망 확충 등 전력 수급 안정도 시급한 과제다. 신한울 1·2호기가 2022년 12월과 지난 4월 각각 상업운전을 시작했지만 생산한 전기를 옮기는 송전망이 부족해 공급 능력만큼 활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전력망 구축 적기를 놓쳤다간 국내 산업 생태계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행보가 필요할 때다. 시간은 이미 많이 늦었다. 
 
최예지 경제부 기자[사진=아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