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국가 위기 속 김정은의 해법, 대남 비난과 애민 정신

2024-08-14 06:00

최근 압록강 수해로 대규모 피해를 입은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애민 정신을 부각하는 동시에 대남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김 위원장의 수해 지역 위로 방문은 집중 조명됐으며, 인도적 지원을 제안한 남측에는 "쓰레기"라는 원색적인 비난이 돌아왔다. 만성적인 경제난에 수해까지 덮친 상황에서 북한 당국은 민심 다잡기에 집중하는 모습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8∼9일 평안북도 의주군 수해 현장을 방문해 "한국 쓰레기 언론들"이 "피해 지역 실종자가 1000명을 넘는다느니, 구조 중 직승기(헬기) 여러 대가 추락한 사실이 정보 당국에 의해 파악됐다느니 하는 날조 자료를 계속 조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주민들을 향해 "재해 복구가 단순히 우리들 자신만의 사업이 아닌 심각한 대적 투쟁임을 다시 한번 새겨둘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김 위원장은 2일 침수 지역 주민을 구조한 공군 부대를 축하 방문한 자리에서도 남측 언론이 사실과 다른 보도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당시 격려 연설에서 그는 "적들의 쓰레기 언론들" "모략선전에 집착하는 서울 것들의 음흉한 목적은 뻔하다"는 등 발언을 쏟아내며 날을 세웠다. 그간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혹은 담당 기관의 담화 형태로 대남 비방을 이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김 위원장의 이번 행태는 꽤 이례적이다. 통일부는 이 같은 김 위원장의 언급을 두고 비난의 대상을 외부로 돌림으로써 민심 이반을 최소화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평가했다. 

김 위원장의 날카로운 반응 후에는 약 보름 만에 오물 풍선 살포가 재개됐다. 다만 이번에는 식별된 풍선 중 고작 4% 남짓만이 남측에 떨어졌다. 10차 살포 때에는 포착된 풍선 500여 개 가운데 480여 개가 발견된 것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는 당시 남풍·남서풍이 불었음에도 무리해 풍선을 날렸던 탓으로 추정된다.

극심한 피해에도 외부 도움은 받지 않겠다고 천명한 북한 당국은 주민들의 자발적 지원을 자구책으로 삼았다. 북한 대내 매체 노동신문은 수재민을 돕겠다고 나선 이들의 미담을 싣는 한편 간부들에게는 헌신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개인보다 집단'을 강조하는 전체주의 기조를 전파하는 분위기다. 이 역시 주민들의 동요를 완화하고, 지도자상을 다시금 정립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이번 재해를 체제 결속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대남 공세와 애민 정신을 내세우는 김 위원장 행보가 순조롭게 이어질지 주목되는 이유다.
 
[사진=송윤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