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리더십] ②주력사업 배터리·OLED...그룹 차원 전략 정비 필요
2024-08-13 05:00
새 미래 먹거리 'ABC' 집중하는 구광모 회장
배터리·전장·OLED도 직접 챙겨야 목소리 커져
글로벌 1류 기업으로 도약할지 추락할지 기로
배터리·전장·OLED도 직접 챙겨야 목소리 커져
글로벌 1류 기업으로 도약할지 추락할지 기로
실제로 그동안 많은 성과를 거뒀다. 전기차 업계 대표주자인 테슬라를 필두로 북미 자동차 3사(GM·포드·크라이슬러)와 현대차그룹 등을 배터리·전장 고객사로 확보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시장 상황이 변하면서 위기가 닥쳤다. 전기차는 올해 초 최대 시장인 미국에 북극 한파가 닥치면서 동계 주행이 어려운 문제점을 드러내며 수요가 급감했고 여기에 주요 부품을 공급하던 LG그룹사 실적도 함께 하락했다. 중국에선 전기차 강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CATL, BYD, 창청 등 중국 배터리·전장 기업의 텃밭이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재계에선 구 회장이 'ABC(인공지능·바이오·클린테크)'뿐만 아니라 그동안 전문경영인에게 맡겨뒀던 '배터리·전장·OLED'도 직접 챙기며 LG그룹 지속 성장을 위한 미래 비전을 제시할 때가 되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선대회장이 기틀 잡은 배터리···'캐즘' 극복 방안 마련해야
구 회장이 취임 후 가장 힘을 준 사업은 배터리다. 구 회장은 이사회 동의를 거쳐 2020년 9월 LG화학 사업부서(전지사업본부)였던 배터리를 분리해 배터리 전문 기업 LG에너지솔루션을 세웠다.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약 30년에 걸친 LG그룹의 배터리 관련 투자는 마침내 빛을 보기 시작했다. 재계 관계자는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이 1992년 유럽 출장 자리에서 재충전해서 쓸 수 있는 이차전지 기술을 접하고 이를 그룹 미래 먹거리로 삼아야겠다고 정하면서 LG그룹 배터리 사업이 시작됐다"며 "2000년대 초반 그룹 내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배터리 사업을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으나 구 선대회장이 (배터리 사업 가능성을) '길게 보고 투자와 연구개발을 더 강화할 것'이라고 사업 지속에 강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사업 정리는) 없던 일이 됐다"고 술회했다.
이후 LG그룹은 국내외 주요 자동차 기업을 지속해서 배터리 고객사로 확보하며 매출과 영업이익을 확대했고 이는 2022년 1월 LG에너지솔루션 기업공개(IPO) 성공에 원동력이 됐다. 재계에선 오너(구 선대회장)가 뚝심 있는 리더십으로 그룹 미래 먹거리를 발굴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미국발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후폭풍이 닥치면서 LG에너지솔루션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처했다. 올 1분기 미국 IRA(인플레이션 세액공제)에 따른 세액공제를 제외하고 316억원 적자를 낸 데 이어 2분기에도 영업손실 2525억원을 기록했다.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시장 점유율도 CATL에 밀려 2위로 집계됐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하이브리드차(HEV) 배터리 총사용량은 165.3GWh로 전년 동기 대비 13.1% 늘었다.
지난해 하반기까지 1위였던 LG에너지솔루션의 올 상반기 총사용량은 43.8GWh(26.5%)로 전년 대비 6.9% 늘었다. 지난해 2위였던 CATL은 총사용량 44.9GWh(27.2%)로 전년 대비 12.1% 성장하며 LG에너지솔루션을 추월했다.
업계에선 이를 두고 대용량 전기차 배터리에 집중하고 상대적으로 용량이 작은 하이브리드차 배터리 시장 공략에 소홀했던 것을 이유로 꼽는다.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할 때는 큰 문제가 없는 전략이었으나 하이브리드카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회사에 악영향을 끼쳤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하이브리드카 배터리 공급량은 삼성SDI, CATL, SK온 순으로 집계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공급량 기준 4위에 불과했다. 올 상반기 전체 배터리 총공급량에서 하이브리드카 비율이 줄어든 기업은 LG에너지솔루션이 유일했다. 아직 전체 배터리 총공급량에서 하이브리드카가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그 미세한 차이가 LG에너지솔루션과 CATL 간 점유율 차이를 만드는 결정적 작용을 했다.
책임 경영을 강조하는 구 회장은 지난해 정기 인사를 통해 LG맨 권영수 전 부회장 후임으로 김동명 사장을 LG에너지솔루션 대표로 임명했다. 당시에는 권 전 부회장보다 12살이나 젊은 대표를 배터리 사업 수장으로 선임하며 미래 준비를 위한 세대교체를 꾀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회사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이한 시점에선 사장급 인사만으로 위기를 돌파하기엔 힘에 부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이브리드카 배터리 공급 확대 등 위기 돌파를 위해 기존 사업 방향을 바꾸는 결정에는 오너가 직접 나서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투자 여력 없는 LGD···그룹 차원 비전 필요
야심 차게 추진한 OLED 사업은 현재 LG그룹의 또 다른 아픈 손가락이 됐다. 올 1분기 영업손실 4694억원으로 1개 분기 만에 다시 적자로 돌아선 LG디스플레이는 2분기에도 영업손실 937억원을 기록하며 좀처럼 실적 반등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구 회장은 '인사가 만사'라는 전략 아래 지난해 LG이노텍 대표였던 정철동 사장을 LG디스플레이 대표에 앉히며 위기 극복을 주문했다.
LG디스플레이가 침체를 겪고 있는 이유는 LCD를 대신해 프리미엄TV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여겨졌던 대형 OLED TV 수요가 LG그룹의 기대만큼 확대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따른 영향이다.
결국 LG디스플레이 흑자 전환의 키는 세계 최대 OLED 수요처인 애플에 얼마만큼 중소형(IT·모바일용) OLED 패널을 공급하는지에 달렸다. 실제로 지난해 4분기 흑자 전환도 애플에 아이폰15용 OLED 패널 공급을 확대하면서 이뤄졌다.
LG디스플레이는 2021년 중소형 OLED 패널 생산 확대를 위해 3년간 3조3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지난해 3월 LG전자에서 1조원을 차입하고 12월 신디케이트론(다수 은행 출자)으로 6500억원, 유상증자로 1조3600억원을 조달하는 등 투자금 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도 IT용 8.6세대 OLED 양산을 위한 대규모 투자 발표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 BOE 등 일찌감치 관련 발표를 한 경쟁사와 비교하면 생산능력 경쟁에서 힘에 부치는 게 눈에 띈다. LG디스플레이 광저우 LCD 공장 매각가에 시장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재계 관계자는 LG디스플레이 사업 경쟁력 강화를 구 회장이 LG그룹 차원에서 결단을 내릴 필요성이 있다며 디스플레이 치킨게임을 포기할 수 없다면 경쟁사보다 앞서갈 수 있도록 과감한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