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목 칼럼] 안세영이 분 '호루라기'

2024-08-12 06:00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2024년 파리 올림픽의 배드민턴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안세영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자마자 대한배드민턴협회를 겨냥한 폭탄 발언을 쏟아냈다. 20대 젊은이가 얼마나 맺힌 게 많았으면 그 어려운 금메달을 목에 걸자마자 자신이 속한 협회를 상대로 직격탄을 날렸을까,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일단 금을 목에 걸게 되면, 어디까지나 좋은 게 좋다고, 그냥 이대로 덮어버리자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까?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말을 안세영 선수는 몰랐을까?
 
겉으로는 부상 관리와 트레이너의 문제가 대두되는데, 서로 ‘라포(rapport)’만 형성되어 있다면 충분히 원만히 해결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논란은 세대 간의 오해와 갈등이 증폭된 결과일 수도 있다. 규정이 없어서 할 수가 없고 해줄 수 없다는 말은 해주기 싫을 때 제일 먼저 하는 말이다. 원래 법과 규정은 현실보다 뒷북을 치는 것이다. 해주고자 한다면 규정을 고치고 규제를 풀면 된다. 법과 규정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신속하게 업데이트해야 한다. 그래서 협회 임원들도 관련 분야에 종사하거나 지식이 있는 자라야 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사람이 제 자리에 있어야 알고리즘을 안다. 그래서 법과 규정과 현실을 알고 시대와 상황에 맞게 바로 대처하면서 규정을 변경해야 이러한 사달이 나지 않는다. 누가 먼저 빈정을 상하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라포’만 형성되어 있다면 규정이든 내규든 신속히 수정하여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인간이지 일이 아니다.
 
민첩한 몸의 움직임을 요구하는 배드민턴에 신발은 엄청 중요할 터인데 후원사 제품 외에는 신을 수 없다는 방침이나 규정은 수정하여야 하지 않을까? 서로 신뢰하고 소통하는 관계였다면 공식 후원업체와 머리를 맞대고 별도의 비용이 들더라도 선수 맞춤형으로 제작하지 않았을까? 반드시 다른 업체의 신발을 신어야 한다면 다른 문제이겠지만 말이다.
 
‘MZ세대’는 ‘밀레니얼(Millennial)’ 세대와 제로(Zero)의 ‘Z세대’를 가리키는 신조어로 1981년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안세영 선수는 ‘MZ세대’이다. 반면 협회 임원진은 모르긴 몰라도 1946년에서 1964년에 이르는 실버 세대이거나 1965년에서 1980년대에 출생한 베이비부머 세대일 것이다. 그러니 서로가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는 절대로 소통이 되지 않는다. ‘꼰대문화’라고 비난하는 바로 그 기성세대의 문화, ‘Latte is horse.’라는 말과 1만5000여 년 전에 그려진 고대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 내용이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다.’는 것이 배드민턴협회와 안세영 선수 간의 갈등 원인 중에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갈등 해소를 위한 소통, 마음의 편지함이 중요한 것이다.
 
대한체육회에서는 이번 논란과 관련하여 “스포츠계를 잘 알고 있는 감사원 출신, 경찰 출신, 청렴 시민감사관, 변호사, 권익위 감사관 등 5명으로 감사팀을 꾸려 사안을 살필 것”이라고 한다. 왜 평소에는 하지 못했는지 묻고 싶다. 대한체육회는 감사 규정에 따라 회원단체에 대하여 기관의 업무 및 예산, 회계 등 재무를 감독하고 검사하는 감사업무를 수행할 권한이 있다. 이런 논란이 생겨야만 감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위법하거나 논란의 소지가 있는 규정이나 협회의 운영에 대해서는 상시적인 감사 시스템을 통하여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감사팀을 꾸려 진상 조사를 한다고 하지만 사실 문제가 있는 협회가 배드민턴협회만은 아닐 것이다. 대한체육회가 감사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를 받아 제대로 고쳐야 하고, 문체부가 감사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국정감사를 받아 제대로 고쳐야 한다. 시스템이 없어도 문제이지만 있는데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문제는 비단 체육계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이 땅에 협회뿐만 아니라 학회, 위원회 등은 부지기수이다. 학회, 협회, 위원회는 카르텔의 온상인 경우가 많다. 각종 학회, 협회, 위원회에는 학회장, 협회장, 위원장이 있으면 감사도 다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감사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왜냐하면 ‘초록은 동색’이기 때문이다. 학회, 협회, 위원회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관변단체들이 많이 있다. 또한 이들 단체의 주변에는 이익이나 혜택을 누리려고 기웃거리는 하이에나들도 많다. 전망이 좋은 사무실, 공짜 점심, 기사가 딸린 차량, 판공비, 그리고 요즘 ‘핫’한 ‘법인카드’가 바로 그것인데, 이를 영어로 ‘퍽(perk)’이라고 부른다.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는 족속들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는 속담이 있다. 고생하는 사람 따로 있고 이에 기대어 이익을 보는 사람 따로 있는 경우를 꼬집어서 하는 말이다. 이들의 특혜와 부당이익도 제대로 된 감사의 메커니즘으로 막아야 한다.
 
이제는 국적도 선택하는 시대이다. 사람들은 세금 문제, 경제적인 문제, 정주 여건과 교육 환경, 안락한 생활과 안전 등 요소들을 고려하고는 쇼핑하듯이 국가를 선택한다. 우리나라에서 과학, 예술 분야의 인재뿐만 아니라 스포츠 분야의 인재들도 이미 국적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종합격투기의 추성훈 선수는 일본 오사카에서 재일 한국인 4세로 태어나 2001년 대한민국에서 일본으로 귀화하였다. 무슨 이유에서든 한국에서 활동하고 싶었지만 일본으로 귀화했다. 빙상계의 안현수 선수는 러시아로, 임효진 선수는 중국으로 귀화하였다. 한국에서의 부조리와 불만을 뒤로한 채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나는 이들을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자신의 부상을 잘 보듬어 완벽하게 치료해 주고,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게 해준다면 안세영 선수인들 그렇게 해주는 나라로 귀화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양금택목(良禽擇木)’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서 선택한다는 말이다.
 
필자의 애창곡, 조용필 가수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가 떠오른다.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와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어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 필자의 뇌리에 ‘페이드 인(fade-in)’ 그리고 ‘페이드 아웃(fade-out)’된다.
 

필자 주요 이력

△부산대 번역학 박사 △미국 University of Dayton School of Law 졸업 △대구가톨릭대 영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