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자의 알려주Zip]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 막는다...자구책 마련 나선 건설사들

2024-08-08 06:00

지난 2일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의 아파트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 현장에서 소방당국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전기차 포비아'(공포감)가 확산하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건설사도 자구책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전기차 화재를 막기 위해 자체 기술 개발에 나서는가 하면, 화재를 견딜 수 있게 아파트 시공·설계 보완에 나서는 기업들도 생겨나고 있다. 
 
전기차 화재 증가세...1년 새 67%↑
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한 건수는 72건으로 전년(43건) 대비 67.4% 급증했다. 

전기차 화재 건수도 매년 증가 추세다. 연도별로 보면 전기차 화재 건수는 △2017년 1건 △2018년 3건 △2019년 7건 △2021년 11건 △2022년 24건 △2023년 43건 등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최근 6년 사이에 72배 급격히 증가한 수준이다. 

전기차 화재 사고는 주차 혹은 충전 중에 발생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청이 발표한 지난 2021~2023년까지 3년간 전기차 화재 분석에 따르면 주차 혹은 충전 중에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2021년 10건에서 2022년 18건, 2023년 34건으로 최근 3년 새 3배 이상 크게 늘었다. 지난해만 놓고 보면 주차 혹은 충전 중에 발생한 화재 건수가 전체(43건)의 79%를 차지했다. 화재 사고 10건 중 8건 가까이가 전기차 주차 혹은 충전 중에 발생한 셈이다. 

건축물 중에서도 특히 아파트는 반드시 전기차 주차구역을 설정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현행 친환경자동차법에 따라 2022년 1월 28일 이전 건축허가를 받은 아파트는 주차면 수의 2% 이상을, 100가구 이상의 신축 아파트는 5% 이상의 전기차를 포함한 친환경 자동차 전용 주차구역을 설치해야 한다.

문제는 전기차 충전시설을 지하주차장에 설치하면 화재 발생 시 진압이 어렵다는 데 있다. 일단 화재 진압 장비의 진입이 어렵다. 또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 차량과 달리 화재가 발생하면 배터리 온도가 1000도 이상으로 급상승하는 ‘열 폭주’ 현상을 보인다. 지하주차장에서 열 폭주 현상이 발생하면 주변에 주차된 차량 전소는 물론, 대형 재난으로 확대될 위험이 존재한다. 이번 인천 청라 아파트에서도 전기차 화재로 140여대의 차가 불에 타거나 손상됐다.

주민들의 불편도 상당하다. 화재 발생 시 지하주차장 내부 온도가 1500도까지 치솟으면서 수도관과 전기 시설이 녹아내려 전기와 수도 공급이 끊긴 상태다. 현재 단전·단수로 청라1동 행정복지센터 등의 임시주거시설 10곳에서 지내고 있는 이재민은 지난 6일 기준 264가구 822명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 이후 다른 아파트 단지에서도 전기차 주차를 둘러싸고 주민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일부 아파트 단지는 입주민 회의를 열고 전기차를 지상에만 주차하도록 강제하거나 지하층의 전기차 충전구역을 지상으로 옮기는 것을 놓고 의견 충돌을 빚고 있다. 저층에 사는 주민들도 지상에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 시 집값이 하락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DL이앤씨가 자체 개발한 '건물용 전기차 화재진압 시스템' 모습. [사진=DL이앤씨]
 
건설사들도 자구책 강구...자체 기술 개발도
전기차 화재사고가 아파트 안전 문제로 비화되자 대형 건설사들은 자체적으로 대책 강구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전기차 화재가 대형 재해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인 건설사는 DL이엔씨다.

DL이앤씨는 지난 4월 세계 최초로 '건물용 전기차 화재진압 시스템'을 개발했다. 화재가 발생하면 차량 위치로 진압 장비를 이동시킨 뒤 배터리팩에 구멍을 뚫고 물을 분사해 빠르게 진화하는 시스템이다.

DL이앤씨는 ‘e편한세상’ 아파트 현장에 화재진압 시스템의 시범 적용을 검토 중이다. 신축 아파트의 경우 내년부터 전기차 충전시설을 총 주차면수 대비 10% 이상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해 관련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DL이앤씨 관계자는 "건물용 전기차 화재진압 시스템은 당사와 탱크테크가 건축물 내 고객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민한 끝에 탄생한 혁신 기술"이라며 "리튬이온과 리튬인산철 등 전기차 배터리 종류에 관계 없이 10분이면 화재를 완전 진압할 수 있는 성능을 입증받았다"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최근 전기차 화재에 대한 높아진 불안감을 크게 해소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물산도 전기차 화재 발생 시 아파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시공·설계 보완책을 마련하고 적용할 계획이다. 우선 지난해 말 수주한 '래미안 원 마제스티'(과천주공10단지) 단지에 전기차 주차구역 후면과 양 측면을 방화 벽체로 시공할 방침이다. 또 오는 10일 시공사 선정 총회가 있는 '래미안 자이 더 아르케'(거여새마을 공공 재개발) 단지에는 전기차 화재 발생 시 상향식 스프링클러를 작동시켜 신속한 화재 대응이 가능하도록 설계해 시공할 예정이다. 

삼성물산은 올 10월 분양 예정인 '래미안 송도역 센트리폴'에는 불꽃센서 일체형 카메라를 설치하는 동시에, 전기차 전용 소방설비를 추가할 방침이다. 여기에 전기차 하부 관통형 화재진압장비도 제공한다. 
 
현대건설은 전기차 화재 특성을 고려한 설계 가이드를 마련해 적용 중이다. 전기차 충전 공간에 블록벽을 구획하고 연소 중인 차량을 덮어 산소를 차단하는 질식소화포를 전기차 충전소가 있는 층에 제공하기로 했다. . 

HDC현대산업개발은 전기차 화재가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아파트에 질식소화덮개를 구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질식소화덮개는 불이 난 전기차 전체를 덮어 산소를 차단해 화재를 진압한다. 유독 가스와 화재 확산을 막는 초기 진화용 소방 장비다. 전기차 화재 발생 시 질식소화덮개를 사용하면 일단 연기 발생 억제가 가능하고 주변 차량으로 불이 옮겨붙는 것도 일부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HDC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담당부서 중심으로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면서 "우선적으로 질식소화덮개를 아파트 내에 구비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우건설은 화재를 견딜 수 있는 성능을 가진 3면 내화(耐火) 구조 설계를 비롯해 6면을 바라보는 폐쇄회로(CC)TV, 열적외선 카메라 사용 등을 적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