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윤태호 작가가 말하는 자기 주변과 잘지내는 게 중요한 이유

2024-08-05 09:26

사회초년생의 눈으로 바라본 직장인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샐러리맨의 교과서’라는 애칭을 얻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끈 ‘미생’. 미생을 통해 사회초년생들은 혼자만 이런 시기를 겪는게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하며 위로를 줬다. 윤태호 작가의 사회생활은 어땠을까?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윤태호 작가 [사진= 슈퍼코믹스스튜디오]

 
윤태호 작가의 첫 사회생활이 궁금하다. 웹툰작가는 어쩌다가 하게 됐나
-웹툰작가는 만화의 연장선으로 하게된 건데 88년도에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사회생활을 하게됐다. 만화가 허영만 선생님의 문하생으로 들어가서 93년도에 데뷔하고 지금까지 하고있다.
 
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 학급일지에 네컷만화를 그렸고 지금까지 꾸준하게 만화를 그리고 있는데 꾸준함의 원천은 뭔가. 좋아하는 일을 오래하기 위한 방법이 있나
- 이걸 제일 잘한다. 어떤 사람들은 고르게 잘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그림 그리는 재능이 다른 재능들보다 월등하게 높아서 그림밖에 할게 없었고 초등학생 때부터 미대 진학을 염두에 두고 미술공부를 해오면서 자연스럽게 만화 쪽을 계속 하게됐다.
 
 
잘 먹고 잘산다는 의미가 뭔가.
- 대단히 큰 게 아니라 자기 주변과 잘지내면 잘먹고 잘사는 것 같다. 사회적으로 어마어마한 사람이 되는 건 비현실적인 것 같지 않나.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친해져야 되고 가까워야 거기에서 행복을 느끼는 거다. 감사할 일이지만 독자가 천만명, 5천만명처럼 어느정도 선이 넘어가면 피부에 깊게 와닿지는 못할 것 같다.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겠나. 현실감있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자기 주변과 잘먹고 잘사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고 가족과 갈등 없이 잘지내는 게 미생에서 완생을 추구하는 삶이다. 꿈을 위해서 용맹하게 정진하는 게 아니라 이 나이 먹고 보니까 주변과 잘지내는 것보다 어려운 게 없더라.
 
인간관계에 있어서 중요시 여기는 게 있나
- 점 봐주시는 분들이 하는 말이 제가 직접 돈을 버는 것보다 제 옆에 있는 사람들이 저와 함께 일하면 돈을 번다더라. 제 옆에 있는 사람들시 돈을 벌 때 시기질투가 안나려면 리스펙 하는 좋은 사람들이 옆에 있어야된다. 저한테는 좋은 사람들과 같이 지내는 게 일생일대의 목표다. 후회하지 않을 만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지내는 것.
 
윤태호라고 하면 '미생'이 수식어로 붙는데 다음 작품을 하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기도 하나
- 아니다. 도움이 된다. 이정도 네임밸류를 갖게 해준 작품이기 때문에 한 작품이 잘되면 다음 작품을 할 때 도움받는 게 많다. 취재를 하러 갈 때 미생을 그린 윤태호라고 하면 호의적인 반응이 대부분이고 뭔가를 여쭤봤을 때도 답변해주시는 게 다르다. 미생이 없었다면 엄청나게 더 애를 써야됐을 것이고 잘 안됐을 수도 있을 거다. 물론 너무 잘된 작품이 있다 보면 심적으로 힘들 수는 있지만 감수해야된다. 얼마나 복 받은 건데.
 
작품이 처음부터 잘되고 5년 동안 가는 게 좋나. 나중에 5년 후에 잘돼서 오래 사랑받는 게 좋은가
- 그건 의도할 수 없다. 저는 나이가 40이 넘어서 이름이 알려졌다. 그래서 먼저 잘된 사람들의 정서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잘모른다.
 
친구들보다 빠르게 사회에 진출하자고 마음먹은 나이가 왜 20살이었던 건가. 사회생활은 어땠나
-20살 때 문하생으로 들어갔는데 대학에 떨어져서 이고 예전에는 그런 순간순간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했었는데 돌아보니까 큰 의미가 있었나 싶다. 그 순간에는 다 저한테 자연스러웠고 사회에 나와서 허영만 선생님 문하생으로 있으니까 전형적인 문하생 생활을 했다. 특별한 결심은 없었고 그때 당시의 풍경에 녹아들려고 했었다. 25살에 인생의 그림을 그리는 게 어렵지 않나. 저도 마찬가지로 고집은 피웠지만 그림은 잘 안그려졌다.
 
오랜 작업 생활을 보상받았다고 느꼈던 순간은 언제이고 그 이유는 뭔가
-보상이 안되는 것 같다. 죽을 때는 보람있었다고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살아가면서는 보상은 없는 것 같다. 미생으로 얻는 게 있었으면 잃는 것도 있었기 때문에 보상이라는 느낌은 안든다.
 
미생을 통해서 얻은 것과 잃은 건 뭔가
-얻은 건 대중 작가로서 이름을 얻었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실질적인 경험들이다. 잃은 건 한 작품이 잘되다 보면 진이 빠지는 경험을 하게된다. 나를 넘어선 평가들에 대해서 제가 반응을 해야되고 그걸 묵묵히 듣고 있어도 힘들고 칭찬이나 여러 반응들에 대해서 그게 아니라고 반응을 하는 것도 지친다. 평안하게 자기 인생을 살기가 어려워진다. 결코 인생이라는 게 거저먹는 게 없기에 보상은 살아있는 한 없다.
 
시작을 할 때부터 언제 완결을 해야겠다는 걸 정해두나
- 원래는 236수까지 였는데 216수에서 끝냈다. 이쯤 하면 이야기가 다 나왔다 싶어서 끝냈다.
 
무엇을 그릴지 어떻게 정하나. 어떤 영감이 작업으로 이어지는지 궁금하다
- 대부분 작가님들이 마찬가지일텐데 특별한 계기는 없다. 어떤 작품은 한 문장에서 시작될 때도 있고 어떤 작품은 꼭 그리고 싶은 이미지에서 시작될 때도 있다. 어떤 작품은 뉴스나 신문기사를 보고 꽂혀서 생각이 축적되다가 이야기가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에 만들어진다. 꽤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어떤 하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기도 어렵고 이 작품을 하기 위해서 단계를 쌓아왔다고 하기도 어렵다.
 
그림을 보면 ‘윤태호 스타일’이 있는데 어떻게 ‘내것’을 찾았나
- 의도하는 작가가 있고 하다보니까 고착된 작가도 있다. 저는 아무래도 문하생 출신이라 선생님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거기에 원래 제 그림 습관이 가미됐다고 생각한다. 지나고 나서 보니까 나라는 사람의 화풍이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사실 연재하는 작가는 그림 스타일을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스토리를 채워가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에 어떤 회는 어떻게 그렸는지도 모를 정도로 나오는 대로 그리고 끝나는 회차도 많고 솔직히 제 화풍이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라는 직업에서 기록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고 작가로 자리 잡는데 어떤 도움이 됐나
- 일상 기록은 잘 안하고 떠오르는 생각들은 메모하는 편이다. 책 읽을 때 메모를 많이 하고 출처를 꼭 적어놓는다. 그걸 안적어 놓으면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내가 한 생각인줄 알게 되니까. 일을 위한 취재를 할 때는 녹음하고 녹취를 끊임없이 다시 듣고 부족한 건 카톡으로 다시 물어보면서 빈 공간을 채운다. 아마 기자 분들이 취재하는 것과 비슷할 거다.
 
[사진= 슈퍼코믹스스튜디오]


삶의 경험 중에서 작품에 가장 영향을 준 건 뭔가
- 80대에 학교를 다녔는데 민주화운동이나 정권이 바뀌는 경험을 많이 해봤다. 큰 권력이 바뀌는 걸 어렸을 때부터 인상 깊게 봤고 그게 스토리텔링을 할 때도 상상을 많이 하게한다.
한때는 거인이었던 사람이나 캐릭터가 어떻게 더 단단해지거나 붕괴되는가 등 시대적인 배경을 만화 속에 녹인다.
 
취재를 하면서 흥미롭거나 관심있던 직업이나 이 직업 한번 경험해보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던 직업이 있었나
- 그런 생각은 전혀 안 갖는다. 어떤 분들은 특수한 직업 가지고 있는 분들 보면서 "이 직업 어떻게 하세요"하면서 흥미롭게 보는데 저는 워드나 엑셀 쓰거나 복사기 잘다루는 분들 등 사무직이든 어떤 직업이든 저는 경험을 안해봤기 때문에 너무 어려워보인다. 제가 하는 일이 제 입장에서는 제일 속 편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까 다른 직업을 꿈꿔본 적은 한번도 없다.
 
취재를 할 때 가장 많이 물어보는 건 뭔가
- 제가 설정한 에피소드에 해당하는 사실관계를 물어본다. 어떤 에피소드이냐에 따라서 다르다.
 
상상력의 한계가 올 때는 어떻게 하나. 상상력의 한계로 인해 이것까지 해봤다 하는 게 있나
-미생 취재를 할 때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취재원 분들도 책임감을 가지고 대해 주셨고 단어 하나 때문에 그 분들 출근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컨펌 받고 마감한 적도 있다.
연재 작품이라는 건 일주일에 한번씩 마감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기 때문에 매순간이 어렵고 특이하다.
 
윤태호 작가에게 출퇴근의 의미는 뭔가
-일 시작할 때 출근하고 일 끝날 때 퇴근하는데 일이 빨리 끝나면 당일에 출근해서 당일에 퇴근 하는 거고 일이 안 끝나면 1박2일, 2박3일까지 할 때도 있다.
 
엄청나게 공을 들였는데 덜 사랑받았던 작품, 조금은 힘을 뺐지만 사랑받은 작품이 있나
-'로망스'라는 만화가 힘빼고 그린 작품인데 사랑을 많이 받은 작품이고 최근에 '어린'이라는 남극 만화를 그렸는데 사색적인 만화여서 미생만큼 터질 거라고는 생각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정도 평가를 받은 것 같다.
 
그림의 소재를 얻기 위해서 해외도 나가는 등 굉장히 열심히 하는데 원동력이 뭔가
-다들 열심히 하지 않나(하하). 열심히 라는 말은 좋거나 나쁜 말이 아니다. 악마들도 열심히 살지 않는가. 다 자기 처지에서 궁리를 해서 사는 것 같다. 완전한 사람은 없으니까 자기가 부족한 만큼 몸을 움직여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노력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갈다.
 
만화가로서 삶과 웹툰 작가로서의 삶 중 어떤 게 더 잘맞나
- 궁극적으로 창작을 한다는 의미에서는 똑같다. 창작을 하는 사람은 매번 플랫폼이 바뀐다. 그래도 창작을 한다는 본질만큼은 변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출판 만화는 독자가 멀리 느껴졌다면 웹툰은 독자가 코 앞에 있는 것처럼 댓글 등을 통해 실감나게 느껴진다는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창작을 한다는 의미에서는 똑같다. 차이를 많이 안느끼려고 한다.
 
윤태호에게 마감의 의미는 뭔가
- 마감이 있어야 이 작품이 존재하는 거다. 열심히 만들어서 서랍 속에 넣어놓으면 아무것도 아닌거다.
 
SNS를 통해서 작품에 어떤 영향을 줬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어서 달라진 게 있나
- 저는 SNS를 안한다. SNS를 하는 게 세상을 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소수의 제 지인들이나 해외에 나가있는 제 아이 소식이 궁금해서 하는거지, 세상에 대한 걸 SNS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윤태호에게 만화는 어떤 의미인가
-만화라는 건 저라는 사람이 남한테 이해되는 하나의 창구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자기 자신을 내보일 기회가 잘 없을텐데 창작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창작물로 자기라는 기상의 아바타가 생기는 거니까.
 
만화를 잘 그린다는 기준은 뭔가
-잘이라는 표현에 잘은 절대적인 게 아니지 않나. 어떤 작품은 대중성으로는 별로여도 작품의 의미적인 면으로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충격을 주는 작품이 있을 수도 있다. 어떤 작품은 어마어마하게 많이 팔리면서 사랑 받기도 하고 어떤 작가는 굳이 사람들이 안보고 싶어하는 답답한 현실을 작품의 소재로 끌어들여서 창작을 유지해가는 사람도 있다. 잘이라는 건 나답게 하는 것이고 나답다는 건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느끼는 희노애락을 잘 씹어먹은 것들이 잘 소화가 돼서 잘 나오는 것이 잘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만화가로서 자녀들이 만화를 볼 때 뭐라고 했나
-애들도 저도 만화를 잘 안봤고 좋아하는 소수의 만화만 반복해서 보니까 만화책을 사달라고 하면 바로바로 사주는 편이었다. 자기 할일들을 잘했기 때문에 제 어렸을 때와 비교하면 천사들과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숙제 할 거 다했었다.
 
윤태호가 계속 그림을 그리는 이유, 어떤 가치를 두고 작업에 임하나.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뭔가
- 입밖에 내면 시시해지는 것들이 있다. 내가 추구하는 것들이 언어가 돼서 말로 나오면 시시해지고 작은 말처럼 돼서 제가 말하지 않는 것들이다.
 
어떻게 하면 나다움을 지키면서 내 일을 해나갈 수 있을까
- 휘청휘청 하는 것도 다 자기다움을 지키는 거라고 생각한다. 꿋꿋한 것만 자기다운 게 아니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저절로 자기답게 살거다.
 
윤태호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 [사진= 김호이 기자]


작가로서 윤태호, 사람으로서 윤태호는 어떤 사람인가. 윤태호 답다는 건 뭐라고 생각하나
- 제 후배들은 저한테 냉한 사람이라고 한다. 훅 빠져있다가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애를 쓰는 타입이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하기 위한 방법이 있나
-그냥 일을 해야되면 계속 한다. 당연히 눈뜨면 일하는 거다. 창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머리에 든 게 없어도 창작을 해야되는 유전자를 타고 난 사람들이 있다. 저도 내 걸 내보이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인 것 같다.
 
윤태호의 다음 스탭은 뭔가
- 미생 시즌3 준비 중이다. '이끼' 드라마 시나리오 쓰고 있다.
 
바라는 삶의 모습과 꿈은 뭔가
-웹툰 환경이 되면서 독자들의 폭도 넓어졌다. 내 연령대 독자들과 늙어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기대하는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말씀 해달라
- 인생이라는 게 출렁임이 있는 거고 오늘 잘되면 내일도 잘되겠지 하지만 내일은 내 기대와 안맞을 수 있는 건데 지나고 나서 보면 "모든게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내 인생이었구나" 라는 걸 느낄 거다. 과거를 생각해보면 좋은 기억만 있는 게 아니라 안 좋았던 기억도 많다. 잘하는 일, 못하는 일, 부끄러운 일, 자랑스러운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사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윤태호 작가와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