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리더십] ④'이혼소송·재원마련' 등 위기 산재...'돈 문제' 어떻게 해결하나?
2024-08-01 05:00
25년간 혁신으로 그룹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리더십은 최근 외부 요인에 의해 크게 흔들리는 상황이다. ‘세기의 이혼’이라고 불리는 최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은 개인사를 넘어 그룹의 위기로도 이어졌다. 항소심 재판부가 책정한 재산분할액 1조3800억원은 최 회장이 가진 SK실트론 주식뿐 아니라 지주사 SK(주) 지분까지 처분해야 감당이 가능한 수준이다. 2003년 해외 자본의 거센 공격을 막아야 했던 SK그룹은 20년이 지난 현재 오너의 개인사와 이를 감정적으로 판단한 사법부에 의해 다시 경영권을 위협받는 상황이다. 최 회장의 숙제는 개인사뿐이 아니다. 그룹의 미래 투자를 위해 2026년까지 재원 80조원을 마련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는데 이미 실패하거나 수익성이 낮은 사업에 대한 매각이 난항을 겪으면서 대규모 자본 손실도 전망되고 있다.
◆ 경영권 위협하는 '세기의 이혼'···'제2의 소버린 사태' 우려까지
SK그룹의 최대 위기를 꼽으라면 2003년 ‘소버린 사태’를 들 수 있다. 소버린 사태는 모나코에 기반을 둔 소버린자산운용이 SK주식회사 주식 14%를 매입해 경영권 탈취를 시도한 사건이다. 당시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까지 간 결과 SK그룹이 팬택앤큐리텔 등 우호 세력, 외국인 주주, 소액주주의 도움으로 승리한 바 있다. 소버린 사태가 종료된 2008년 9월 최종현 선대회장 서거 10주기 추도식에서 최 회장이 임직원을 향해 큰절을 올리며 "힘겨웠던 SK그룹이 지금의 자리까지 온 건 모두 전·현직 임직원 덕분"이라며 감사의 뜻을 표한 것으로 이 사건의 심각성을 가늠할 수 있다.
노 관장과 벌이고 있는 이혼소송이 소버린 사태와 비교되는 것은 이번 사건이 SK그룹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30일 서울고법 가사2부는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소송에서 "원고(최 회장)가 피고(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 회장은 이에 상고를 했고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대법원이 항소심 판단을 확정한다면 최 회장은 재산분할액 마련을 위해 지분 매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날 기준 최 회장이 가진 SK(주) 지분 17.13%의 가치는 약 1조8000억원이다. 최 회장은 SK(주) 지분을 담보로 5000억원을 대출받았는데 이를 제외한다면 사실상 SK(주) 지분 전부를 매각해야 마련할 수 있다. 최 회장은 비상장사인 SK실트론 지분 29%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전부 매각해도 SK(주) 지분 일부 매각은 불가피해 보인다.
SK그룹은 지주사 SK(주)의 특수관계인이 가진 전체 지분은 25.57%며 소액주주가 51.41%, 국민연금이 7.39%를 보유하고 있다. 즉 최 회장 지분이 축소되면 소액주주나 외부 자본에 의해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는 구조다. 집안 내부 경영권 분쟁도 조심스럽게 점쳐볼 수 있다. 국민연금을 제외하고 최 회장에 이은 SK(주) 2대주주는 지분 6.58%를 가진 여동생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이다. 최 회장 지분이 10%대 초반으로만 떨어져도 일부 소액주주와 연대해 경영권을 넘볼 수 있는 수치다.
그룹 주인이 바뀔 수 있는 중대사인 만큼 외부의 비판에도 최 회장의 이혼소송은 그룹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재계는 이번 사태가 최 회장의 지분 매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데에는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고 있다. 항소심 재판부 판단에서 다수 오류가 발견돼 대법원에서 파기환송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이 인정한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 665억원을 조 단위로 확대했다. 이유는 SK그룹이 이룬 대부분의 성장을 최 회장과 노 관장의 결혼 이후 일로 판단한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 임기 시작(1988년)과 최 회장의 회장 취임(1998년)이 10년이나 차이 남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SK가 6공화국의 비호를 받았다고 봤다. 그러면서 6공화국 시절 기업 총수였던 최종현 선대회장의 공은 크게 축소했다. 실제 항소심 재판부는 SK가 기업가치 산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판결문을 한 차례 고쳐 쓰기도 하면서 사실상 실수를 인정하기도 했다.
◆80조 재원 마련 방안도 숙제···美 대선이 변수
최 회장은 이혼소송 외에도 그룹 투자재원 마련이라는 또 다른 돈 문제를 안고 있다. 지난달 그룹 CEO(최고경영자)들이 모인 ‘경영전략회의’에서 회사는 2026년까지 80조원이라는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재원 마련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정해지지 않은 가운데 최창원 SK수펙스추구위원회 의장을 중심으로 전략 수립이 한창인 것으로 전해진다. 유력한 재원 마련 방안 중 하나는 올해 1분기 기준 698개에 달하는 그룹 연결회사 매각인 것으로 전해진다.
SK그룹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중복 투자가 진행 중인 에너지 분야 법인들을 매각·청산하기 시작하면서 한 분기 만에 29개 법인을 정리했다. 이 중 17개가 매각됐다.
당장 의미 있는 숫자는 SK스퀘어에서 기대할 수 있다. SK스퀘어는 현재 11번가가 가진 바로고 우선주 6.24% 매각을 진행 중이다. SK그룹은 약 4000억원대 몸값을 기대하고 있으며, SKS프라이빗에쿼티(SKS PE)가 인수자로 나섰다. SK스퀘어는 바로고 소수지분 매각 이후 11번가 자체 매각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밖에도 △콘텐츠웨이브 △스파크플러스(공유오피스) △코빗(가상자산운영소) △온마인드(가상인간) △베르티스(프로테오믹스 기반 유방암 조기 진단) △메이크어스(디지털 브랜드 딩고 운영) △그린랩스(애그테크) 등이 SK스퀘어가 시장에 내놓을 가능성이 높은 매물로 전해진다. 앞서 SK쉴더스 매각으로 현금 8600억원을 회수한 SK스퀘어는 연이은 포트폴리오 재조정을 통해 SK하이닉스 투자 재원을 마련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11번가를 비롯해 SK스퀘어가 투자한 20여 개 기업들이 매년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천억 원대 적자를 내는 기업이라는 점이 문제다. 당장 바로고 소수지분 매각 과정에서도 양측 간 몸값이 큰 차이를 보이면서 실사가 일시 중단된 상태다.
SK에코플랜트가 가진 폐기물 소각장이 매물로 나올 가능성도 점쳐진다. SK에코플랜트는 친환경 사업과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해 국내 폐기물 소각장 매입에 약 2조원을 투입했다. 국내 폐기물 소각장 점유율이 30%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소각장은 사업 특성상 신규 허가를 받기가 힘들어 자산가치가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 SK이노베이션은 계열사 매각보다는 SK E&S와 사업 시너지를 통해 수익성을 제고해 현금 창출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SK그룹 재원 마련에 있어 가장 큰 변수는 미국 대통령선거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에 무게추가 기우는 가운데 핵심 신사업인 배터리 사업 회복이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다. 특히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철폐를 강력히 주장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은 연간 약 1조원에 달하는 SK온의 보조금 철폐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또 SK온은 올해만 7조 이상 대규모 설비투자를 계획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 역시 5조원대 미국 현지투자를 진행 중이다. 강력한 보호주의를 주장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은 미국을 주요 시장을 두고 있는 SK그룹의 재원 확보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