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원 된 엔화, 지금 팔자"…5대銀, 이달 들어 6815억원 썰물

2024-07-30 16:00
902원까지 오른 원·엔 환율…20여일 만에 한 은행서 4680억원↓

엔·달러 환율 관련 이미지 [사진=연합뉴스]

일본 엔화 가치가 반등하자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외화 예금 잔액이 빠른 속도로 빠지고 있다. 이른바 ‘슈퍼 엔저’가 끝나고 환율이 900원대로 오르면서 그간 반등을 기다려왔던 환 투자 수요가 한꺼번에 몰렸기 때문이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최근 들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지난 6월 말 1조2929억1953만엔이었던 엔화 예금 잔액은 지난 26일 기준 1조2171억3641만엔으로 감소했다. 한 달도 채 안 돼 756억8312만엔, 원화로 환산하면 약 6815억원 줄어든 것이다. 또 지난 29일 기준으로도 단 3일 만에 5대 시중은행 중 세 곳에서 총 96억1873만엔(약 860억원)에 달하는 엔화가 빠져나갔다.
 
엔화 예금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건 반등하고 있는 엔화 가치 때문이다. 최근 들어 900원대에 진입한 원·엔 환율은 지난 29일 한때 100엔당 902원까지 올랐고, 금융권에선 슈퍼 엔저 현상이 끝났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은행에 맡겨뒀던 엔화를 원화로 바꾸려는 투자자들이 지난 며칠간 한꺼번에 몰리면서 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이 대거 빠져나갔다는 해석이다. 원·엔 환율이 최고점에 도달했다는 인식하에 환차익을 보려 엔화를 매도한 것이다. 또 예상보다 엔저 현상이 심화하면서 엔화 매수 시점보다 원·엔 환율이 더 떨어졌던 이들도 이번에 대거 환전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들어 계속 늘어나던 5대 시중은행 엔화 예금 잔액이 꺾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5대 시중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올해 5개월 연속 증가했다. 월별 엔화 예금 잔액은 △1월 1조1574억엔 △2월 1조2130억엔 △3월 1조2160억엔 △4월 1조2412억엔 △5월 1조2904억엔 등이다. 올해 1월부터 지난 6월 말까지 원화 기준 1조원 넘는 자산이 엔화 예금으로 몰렸다.
 
원·엔 환율은 지난해부터 800원대로 계속 약세를 이어오며 엔화 예금으로 환 투자 수요가 몰렸다. 지난달 28일 기준 원·엔 환율은 100엔당 855.60원으로 2008년 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엔·달러 환율도 이달 초 달러당 161.90엔까지 오르며 엔화 가치가 1986년 12월 이후 약 37년 6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당분간 원·엔 환율 변동성이 클 것으로 전망되면서 은행권에선 이에 따른 외화 리스크에 대비할 필요성도 커졌다. 실제 은행별 엔화 예금 감소세를 보면 이달 26일 대비 지난 29일 기준 최소 8억7300만엔에서 최대 46억2185만엔까지 변동 폭을 나타냈다. 한 은행에서 엔화가 3일 만에 최대 413억원가량 빠져나간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엔화 가치가 최근 반등하면서 그간 환투자로 엔화를 사들였던 재테크족이 대거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며 “은행은 항상 일정 수준의 외화를 안정적으로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환 투자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