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21) 서로 싸우다 함께 망하다 - 휼방상쟁(鷸蚌相爭)

2024-07-29 15:39

[유재혁 에세이스트]


진(秦)나라가 절대 강국으로 군림하던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 제후국 간에는 여전히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 해에 조(趙)나라와 연(燕)나라 사이에 마찰이 생겨 조나라가 연나라를 치기로 마음을 먹었다. 두 나라 사이의 전쟁은 호시탐탐 약소국 병탄을 노리는 패권국 진나라만 이롭게 할 게 뻔하기에 연나라 소왕(昭王)은 세객(說客) 소대(蘇代)를 조나라에 보내 혜왕(惠王)을 설득하도록 했다. 소대는 진나라를 제외한 6국이 힘을 합쳐 대항하자는 합종책을 입안한 소진(蘇秦)의 동생이다.

혜왕을 만난 소대는 연나라 공격이 부당함을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화창한 날, 조개가 물위로 올라와 백사장에 누워 흐뭇하게 입을 한껏 벌리고 따스한 햇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를 발견한 도요새 한 마리가 훤히 드러난 조갯살에 군침을 흘리며 쏜살같이 날아와 조개를 쪼자, 조개는 황급히 입을 다물고 새의 부리를 꽉 물어 버렸습니다. 다급해진 황새가 '어서 입을 벌려라. 오늘도 내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넌 산채로 햇볕에 말라죽을 것이다'라고 겁박하자, 조개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습니다. '흥! 내가 오늘도 내일도 꽉 물고 있으면 너야말로 산채로 숨이 막혀 죽을 거야!" 도요새와 조개는 어느 한쪽도 양보하거나 타협할 생각 없이 뒤엉켜 다투었습니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어부가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서로 버티며 힘겨루기 하던 두 놈을 다 잡아가고 말았습니다." 소대가 이야기를 마치자 혜왕이 이야기에 담긴 함의를 깨닫고는 연나라를 치려던 계획을 중단했다.

성어 '휼방상쟁(鷸蚌相爭)'의 유래가 된 이 이야기는 중국의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2》에 수록되어 있다. '휼방상쟁'은 이야기 속의 도요새와 조개처럼 서로 양보하지 않고 죽기살기로 싸우다가 제3자가 이득을 보게 하는 어리석은 행위를 비유한다. '방휼지쟁'이라고도 하며 대개 '어인득리(漁人得利)'가 대구로 함께 쓰인다. 어인득리는 우리에게 친숙한 '어부지리'와 같은 뜻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제부터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진작에 감을 잡았을 것이다. 우선 국민의힘 이야기부터 하자. 집권여당 국민의힘이 역대급 난타전 끝에 한동훈을 당 대표로 선출했다. '어차피'였든 '어쩔 수 없이'였든 '어대한'은 현실이 되었다. 친윤 진영이 '배신자' 프레임을 씌우는 등 노골적으로 딴지를 걸고 김건희 여사까지 슬쩍  참전했지만 한동훈 대세론을 잠재우진 못했다. 후보들끼리 벌인 자해성 폭로전의 밑바탕에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신임 대표 간의 갈등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른바 '윤•한 갈등'이다. 

윤•한 갈등의 저변에는 김건희 여사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김건희 여사는 미루고 미루던 검찰 조사를 받긴 했지만 비공개로, 그것도 제3의 장소에서 출장 조사를 받아 '여왕 조사'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당선 직후 한동훈은 김 여사의 검찰 조사를 놓고 “국민의 눈높이를 더 고려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본고 지난 회차에서 '영인이해(迎刃而解)'를 언급하며 대통령이 대나무를 쪼개듯 부인 문제를 해결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칼집에서 칼은 꺼냈지만 칼날이 너무 무뎌 대나무의 첫 마디가 쪼개지긴커녕 쓸데없는 생채기만 난 꼴이다.

한동훈은 국민여론조사와 당원투표에서 모두 60% 이상의 지지율을 얻어 당심과 민심 모두 윤심을 등에 업고 나온 경쟁 후보를 압도했다. 지금과 같은 국정운영 방식으로는 안되니 대통령이 변화하라는 요구다. 상명하복 당정관계를 추구하지 말고 수평적 협력관계를 구축하라는 요구다. 그 첫걸음이 공정과 상식에 입각한 김건희 여사 문제의 처리임을 거듭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눈높이를 얘기하는 당 대표에게 불쾌감을 드러내는 식이어서는 윤•한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고, 이는 민주당에 정권을 거저 줍는 어부지리를 안겨줄 것이다. 한동훈 대표 취임 첫날부터 까칠한 견제구를 날린 '친윤' 신임 지도부의 태도가 하루 만에 확 바뀌었다. 삼겹살 회동과 윤•한 러브샷의 약발일 테지만, 그 약발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사실 더 걱정스러운 건 여야의 극한 대립이다. 윤•한 갈등이 아무리 심각한들 국민의힘이 망할지언정 나라가 망하진 않는다. 하지만 정치권의 극한 대립이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음은 역사가 증명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을 나눠 가진 여야가 출구 없는 무한정쟁을 벌이고 있다. 탄핵은 일상 용어가 되어버렸고 특검은 더이상 특별하지 않을 정도로 빈번해졌다. 거대야당이 쟁점 법안을 여당과 합의 없이 단독 처리하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 야당이 망신과 모욕주기 청문회를 한 후 인사청문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고 다시 야당은 탄핵으로 응수한다. 악순환의 무한반복이다. 보고 싶지 않은 저질 드라마를 강제로 시청하는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민주당은 지금도 두 개의 탄핵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동훈이 국힘 당 대표로 선출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동훈 특검법'을 상정했다. 정치 파트너의 잔칫날에 재 뿌리는 격이고 정치 도의상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탄핵과 특검 발의를 다반사로 하는 등 절제와 관용이 사라진 작금의 민주당에 그 정도는 일도 아니다. 공멸의 길을 걷는 듯한 여야의 모습을 보면 '휼방상쟁'보다 더 적합한 비유를 찾기 힘들다. 오직 상대방을 겁박하고 양보를 요구할 뿐 타협의 정신은 실종되었다. 내가 하려던 것도 상대방이 추진하면 반대한다. 민생은 듣기 좋은 립서비스로 때울 뿐이고 국가 안보마저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러다가 평양의 김정은이 운수 좋은 어부가 되어 손도 안 대고 코 푸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조선을 망국으로 이끈 여러 요인 중 으뜸은 당파싸움이다. 나라를 이끄는 사대부들이 동인과 서인으로 편이 갈려 파당을 짓고 싸웠다. 사화(士禍)에서 보듯 패배는 곧 유배 내지는 죽음이었기에 더욱 더 피터지게 싸웠고, 그럴수록 국익은 뒷전이고 당리당략에만 매몰되어 갔다. 당대 최고의 지성 율곡 이이가 양쪽 모두 옳고 그를 수 있다는 '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을 주창하며 동인과 서인의 화합을 촉구했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율곡이 죽은 지 8년 만에 임진왜란이 터지고 나라가 거의 망할 지경에 이르렀다. 부끄러운 우리 역사다. 편을 갈라 싸우고 내 편이 아니면 적으로 간주하는 ‘증오의 정치’는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들의 귀에는 어부가 군침을 흘리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데 말이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