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양념치킨 창시자 윤종계 회장이 바라는 것

2024-07-11 09:44

‘국민간식’, ‘치느님’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치킨에 대한 사랑은 정말 대단하다. 요즘에는 치킨의 종류가 엄청나게 다양하지만 예전에는 후라이드 치킨밖에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 그 시절 양념치킨과 치킨무를 세계최초로 개발한 윤종계 회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양념치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윤종계 회장 [사진= 윤종계 회장]


어쩌다가 양념치킨을 개발하게 됐나
-처음에는 가마솥으로 만드는 치킨집을 했다. 그당시에는 기계가 없어서 가마솥으로 만들었는데 맛도 일정하지 않고 손님들이 먹다가 남기더라. 포장을 하면 포장비 등 추가비용이 들어서 사람들이 치킨을 안남기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염지빙식을 개발했다. 그러니까 맛있다고 하더라. 그런데도 계속 남겨서 손님들한테 물어보니까 식어서 맛이 없다고 해서  튀김기를 개발했다. 기계가 불티나게 팔렸다.
처갓집양념치킨 회장도 내 회사 공장장을 했었다. 그러다가 양념치킨을 개발했는데 수많은 실패를 했다. 한 할머니가 물엿을 넣어보라고 해서 넣었더니 맛이 살아나더라. 할머니 덕분에 특별한 노하우가 생겼다. 대구가 치킨의 원조라고 하는 게 전부 나와 일하다가 나갔기 때문이다. 

처음 양념치킨을 개발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
-대구 효목동에 있었는데 산면도로였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100명 정도 돗자리 가지고 와서 기다릴 정도였다. 손님들 때문에 잠을 못잔다고 신고도 당하고 물을 끼얹기고 했다.

양념치킨을 개발하기 위해서 이것까지 해봤다 하는 게 있나
- 개발을 하는데 6개월~1년 가까이 걸렸다. 시식회를 하면서 손님들에게 평가를 받았다. 한마리 더 먹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후라이드치킨과 달리 맛은 좋은데 손에 묻는게 번거롭다는 말이 많았다. 그건 아직도 해결 못했다(웃음). 

치킨무는 또 어떻게 개발하게 된 건가
-기계와 양념치킨을 개발하기도 전에 치킨을 먹으면 목이 답답하니까 무와 오이에 식초와 사이다 등을 넣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맛이 나오게 됐다. 치킨과 함께 먹어보니까 목이 답답하지 않더라. 처음에는 동치미처럼 만들었었다. 


돈도 많이 벌었을 것 같은데, 그 돈으로 어떤 것들을 하셨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
-돈을 많이 벌어서 제2의 식량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는 치킨을 간식으로 먹었는데 제2의 식량을 만들기 위해서 5천평 규모로 식품 공장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하림에 넘겼다. 호남 지사장이었던 하림 김흥국 회장이 상장 업체를 만들자고 했었다.

어떤 어린시절을 보냈나
-6.25전쟁이 끝났을 때라 밥도 제대로 못먹었던 시절이었다.

양념치킨 개발을 통해서 잃은 것과 얻은 건 뭔가
- 얻은 건 지금의 하림 같이 우리나라의 축산업계 성공신화를 만들었다. 지금 같으면 노벨상감인데  상장 하나 못 받았다. 근데 지금도 내 이름만 말하면 대부분 다 알 정도로 유명하다. 잃은 건 내가 잘돼서 주변에 여려운 사람들을 도와줬는데 내가 어려울 때 나몰라라하더라. 1780개 체인점이 있었는데 몸이 아파도 믿고 맡길 사람이 없었다.

스스로 성공했다, 망했다 라고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
- 성공했다고 느낄 때는 국내 농수산부 행사뿐만 미국 정부에서도 초청을 받았다. 닭 먹이가 옥수수라서 미국에서 수입을 받았었다. 한달동안 15개주를 돌고 한국에 와서 기자회견도 했었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은 다 초청받아서 다녀왔다. 대구치맥페스티벌도 내가 만들었다. 망했다고 느꼈던 적은 없다.

대구 치맥페스티벌은 어쩌다가 만들게 됐나
- 91년도에 닭모형을 수집했었다. 대구백화점에서 그걸로 전시를 했는데 방송 3사가 생중계까지 왔었다. 그때는 9월9일을 구구데이라고 불러서 닭 먹는 날이었는데 그러면서 양념치킨 붐이 일어나면서 대구치맥페스티벌이 만들어진거다. CF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특허 등록을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처음에는 특허라는 걸 몰랐었다. 내 직원으로 있던 사람이 특허 등록을 하고 제작 판매 중지를 하라고 하더라. 공문까지 집으로 와서 특허청으로 갔는데 이 사람이 내 직원이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으면 된다고 했다. 나와 일했던 사람들이 증인을 해줘서 특허 권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요즘에는 뿌링클치킨, 볼케이노 치킨을 비롯해 다양한 치킨들이 있는데, 처음 양념치킨을 개발할 당시의 치킨은 지금과 비교해서 어떤 게 가장 달라졌나
-요즘 엄청나게 좋고 맛있는 치킨들이 많이 나왔다. 근데 내가 만든 염지방식과는 많이 달라서 내 입맛에는 안맞는다(웃음). 

그러면 치킨과 관련된 일은 어쩌다가 하게 된 건가
-원래는 인쇄업을 했었는데 부도로 인해서 쫄딱 망했다. 먹고 살 방법을 찾다가 치킨을 하게된 거다. 당시에는 흑백으로 했던 광고도 난 광고업을 했던 경험을 살려서 컬러로 하는 등 남들이 하지 않는 방식으로 했고 맥시칸 치킨을 창업하게 됐다.

요즘 10~20대한테는 치킨을 치느님이라고 할 정도로 큰 인기가 있다. 언제 보람을 느끼나
- 내가 몸이 안좋아서 1년에 병원을 10번 정도 입원하는데 사람들이 다 알아본다. 병원에 입원 중에도 방송국 세군데에서 촬영을 할 정도다. 내가 그때 어떻게 이런 걸 다 했을까 하면서 놀랄 때가 있다.

치킨을 자주 드시나. 치킨을 드시면서 생각하는 것들이나 아쉬움이 있나
-치킨을 사먹지는 않고 먹고 싶으면 집에서 만들어먹는다. 좋은 치킨 기계와 레시피들을 개발해놨는데 지금 내가 사용할 수는 없고 누구한테 줄지 못찾았다.

양념치킨 개발자로서 배네핏이 있다면 뭔가
-그런 건 없다. 단 나와 함께 일하던 직원들이 많이 때문에 명절 되면 선물들을 보내준다.

양념치킨과 어울리는 것과 안 어울리는 건 뭔가
- 치킨이라고 하면 간식으로 생각한다. 치킨을 주 식으로 만들고 싶다. 배고프면 짜장면 먹듯이 치킨이 떠올랐으면 좋겠다.
 
브랜딩이 엄청나게 중요해지는 시대인데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영업 방법을 전문가에게 돈을 주고서라도 배워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가르쳐주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도 보람있다.

예전부터 은퇴를 하면 치킨집을 한다는 말들이 있다. 이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 그리고 치킨집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
- 칼국수나 된장찌개집을 한다고 해도 쉽게 결정하지 말고 잘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앞으로 치킨으로 하고 싶은 일들이 있나
- 이 인터뷰를 하는 이유도 인터뷰를 보고 현재 내가 개발해 놓은 걸로 잘되는 걸 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남들이 가지 않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말씀 해달라
- 쉽게 생각하지 말고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라는 말처럼 이미 성공한 전문가에게 배워봤으면 좋겠다. 배우기 위해서 투자를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