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현실판 나발레라 '피자헛' 신화를 이룬 일흔살 성신제 대표가 말하는 성공과 실패의 정의
2021-05-31 11:32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면서 실패를 거듭하다 보면 성공이 온다는 의미다. 그래도 실패가 반복되면 언젠가는 포기하게 되기 마련이다. 10번의 실패 경험에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성신제 대표다.
그는 우리나라에 피자라는 말이 익숙해지기 전에 피자헛(PIZZA HUT)을 들여오며, 한때 소득세만 110억을 납부하고 그해 개인종합소득세 1위에 오를 정도였다. 1980년대 우리나라에 피자헛을 선보인 뒤 성공적으로 안착시키자, 미국본사가 한국시장 직영방침을 통보하면서 320억원에 국내 경영권을 내줘야 했다. 그 이후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밑바닥까지 간 적도 있다. 그리고 나서, 재기하여 다시 성공하고, 다시금 실패를 하기도 했던 성신제 대표. 여전히 20여번의 암투병 대수술을 극복하고, 끊임없는 도전을 하고 있는 성신제 대표와 거듭된 실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은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Q. 피자헛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어쩌다가 피자헛을 우리나라에 들여오게 됐나요?
A. 여러분들은 지금 ‘피자’라고 하는데 84년도에 피자헛을 들여올 때 한국어 발음을 어떻게 하나를 고민할 정도로 생소한 음식이었어요. 외국문물에 대한 경험이 있던 사람들도 PIZZA라는 음식이 어떤건지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난감해하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나마 다른 발음보다 ‘피자’라고 표현하는게 적절하다고 판단했고, 그 이름 그대로 우리나라에 피자 유행을 만들어냈죠. 근데 원래 저는 무역업을 하던 사람이라 음식과는 전혀 관련이 없던 사람이었어요. 피자헛 글로벌 체인에 주방용품을 수출하러 미국에 갔다가 ‘사람들한테 물건을 많이 팔려면, 나도 피자헛 프랜차이즈 구성원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게 계기가 되었어요. 그러다가 피자헛을 한국에 들여오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음식분야에서 일하고 있죠. 당시 외식업계는 가족들이 함께 나가서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았어요. 피자헛을 통해 우리나라 가족외식문화가 활성화되었죠.
Q. 피자헛 회장을 만나러 미국에 갔다고도 들었거든요.
A. 그 당시 미국 피자헛의 모 회사는 펩시였어요. 그래서 펩시 회장을 만나러 갔죠.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게 무모한 얘기죠. 당시 펩시 회장이면 미국 대통령과도 언제든지 식사를 할 수 있는 거물이었거든요. 그때 저는 35살이고, 제가 운영하던 무역회사의 직원은 5명밖에 없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무슨 용기로 펩시 회장을 만나러 갔나 할 정도로 의욕이 넘쳤던 것 같아요.
Q. 무슨 용기로 펩시 회장을 만나러 간 거예요? 어떻게 요청을 했죠?
A. 만나자고 요청을 하니까, 그쪽에서 “한국의 대기업들이 가맹계약을 하려고 신청을 했다. 당신과 비교가 안되는 기업들이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제 대답이 ‘일단 똑같이 면접 볼 수 있는 기회는 달라’고 했어요. 미국으로 가서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는 시간 정도를 얻게 되었어요. 전혀 기댈 곳 없는 젊은이에게 관심을 갖는 상황은 아니었던거죠. 주로 하는 질문이 “당신 회사 매출이 얼마냐”에 대한 것이었어요. 그래서 이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외식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제일 중요한 건 가게 현장관리인데, 나는 피자레스토랑을 하면 주방에서도 일하고 손님도 직접 맞이할거다’라고 했어요. 그러더니 ‘너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고 하더라고요. 하버드대학교에 지지 않는 서울대학교를 나왔다고 했더니, 회사 변호사를 불러서 ‘한국 비즈니스는 이 청년과 하겠다’고 해서, 제가 우리나라에 피자헛을 들여오게 됐죠. 제가 펩시회장 앞에서 말한 내용이나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가 중요했던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제가 뿜어내었던 열정을 높이 평가해준거죠. 당시 펩시 회장에게 감사한 마음이 지금도 들어요. 우리 사회도 청년의 열정을 높이 사주는 문화가 확대되길 바래요.
Q. 10번의 창업을 하신 걸로 들었습니다. 피자 그리고 지금은 컵케익 공방, 또 어떤 창업들을 하셨죠?
A. 피자헛 이후에, ‘케니로저스로스터스‘라는 대형레스토랑사업도 했는데 IMF로 인해 외국 자본이 빠져가는 바람에 도산했어요. 다시 미국으로 가서 이태리식 피자 주방에서 일하면서 또 다른 노하우를 익히고, 한국에서 성신제 피자를 런칭했죠. 성신제 피자로 승승장구하다가 다시 서브프라임 금융위기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망했어요. 사실, 외부적 요인도 있었지만, 제가 빨리 큰 성공을 다시금 누리고 싶은 성급함에 확장지향적으로 회사를 운영했던 것도 연이은 실패의 큰 요인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가 뭔가 다시 해야겠다 싶어서, 컵케이크를 하게 됐어요. 미국 지지스 컵케이크 본사에 제 경력을 정리해서 보내고 미팅을 했는데, 마음에 들었는지 그쪽 주방에서 훈련을 받았어요. 결국, 지지스컵케이크 미국 본사 자본으로 한국에서 매장을 오픈했는데, 이후 미국본사가 다른 곳에 인수합병이 되며, 한국시장에서 철수하게 되었죠. 그래서 그 사업을 계속 이어가지 못했고, 지금은 조그마한 공방에서 제 방식대로 컵케이크를 만들고 있어요.
Q. 피자 사업을 할 때는 피자를, 컵케익 피자를 할 때는 컵케익을 매일 드셨습니다.
질리지 않은가요?
A. 매일 숨 쉬는 게 질려요? 안 질리죠. 나한테는 그게 숨쉬는 것과 똑같아요. 지금도 컵케익을 만들고 남는 걸 매일 먹어요. 반복적인 요리과정을 매일 기계적으로 하다보면, 본래의 맛을 챙기지 않는 실수로 이어질 수 있거든요. 매일 먹어봐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는게 사실이긴하죠. 제 손녀한테 먹어보라고 하면 조금만 달라져도 금방 알긴 하지만요.
Q. 집에서도 요리를 잘하시나요?
A. 아니에요. 제가 피자헛을 할 때는 주방에서 직접 했고, 성신제 피자를 할 때도 그렇고, 컵케익을 할 때도 요리를 다 직접 하는데 집에 가면 요리를 안 해요. 내가 하는 것보다 집사람이 하는 게 훨씬 맛있기도 하고, 사실 밖에서 종일 요리하면 집에 가서는 주방일 안하고 싶은 속마음도 있긴 하죠.
Q. 창업에 매진한 이유가 뭔가요?
A. 원래는 창업과 관련이 없었어요. 무역회사에 다니다가 문을 닫아서 나오게 됐어요.
30대 초반에 부장급으로 올라가고 있었으니까, 제 나이 또래에 그 업계에서는 제일 빨리 승진했어요. 해외출장도 많이 다니면서 그때 꿈이 그 회사 사장이 되겠다는 것이었는데 하루 아침에 꿈이 깨졌죠. 그 나이에 다시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는 게 조금 애매해서 창업을 했고, 내 적성이라는 걸 느꼈어요. 뭔가 만들어내고, 안될 것 같아도 시도하는 게 제 적성이에요.
Q. 창업한 걸 후회하세요?
A. 후회 안 해요. 창업은 무언가를 스스로 결정하는 일의 연속인데, 그 과정이 고달프기도 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는 것이 저에게 잘 맞는거 같아요.
Q. 1994년 당시 개인종합소득세 1위였던 걸로 알고 있어요. 가장 잘 나갔을 때 통장에 최대 자릿수가 몇 자리까지 있었나요?
A. 제일 많았던 게 93년도 였는데 320억이 있었어요. 그 당시 320억이면 지금 화폐가치로는 몇배 더 되겠죠. 주위에서는 건물 사고 땅을 사라고 했었어요. 근데 그건 내가 잘해서 번 게 아니라 고객들로부터 번 것이기 때문에, 뭔가 일을 해서 우리사회 경제의 선순환에 영향을 끼치는 역할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돈은 나를 잠시 거쳐 갈 뿐이라고 생각한거죠.
Q. 대표님께서 '망했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언제였나요?
A. 큰 돈을 벌고 소신껏 기업을 하다가 망하는 걸 반복하다가 무일푼이 됐지만 내가 망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내가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잖아요. 근데 그러면서도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2011년5월이었어요.
암에 걸렸었는데 그때 당시 암이라는 것에 대해 제가 가지고 있던 지식은 ‘걸리면 죽는다’밖에 없었어요. 의사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굉장히 어두웠어요. 대장암이 3기, 간암이 2기라 예후가 안 좋다고 하더라고요. 6개월을 못갈 수도 있다는 거죠. 일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가족들한테 부담만 줬다는 생각에 많이 질책했어요. 결국, 멘탈과 피지컬이 망가지는게 진짜 망하는거라고 생각해요. 그 이후 지금까지 20여번 수술을 했는데 이렇게 멀쩡히 잘 살고 있어요.
Q. 실패를 통해 돌아본 인생은 어떤가요?
A. 실패를 통해서 돌아본다고 한다면, 아쉬움과 회환도 많죠. 하지만, 제가 언젠가부터 실패의 아이콘이라고 불리지만, 계속 회복하고 재도전해왔기 때문에 실패도 반복된 측면이 있죠. 그러다 보니, 저를 ‘회복의 아이콘’이라고 부르는 지인들도 있긴 해요. 화창한 봄날같은 시절도 있었고 추운 겨울 한복판같은 시절도 있었지만, 저는 지금 이순간도 여전히 새로운 봄날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지내고 있어요. 누구에게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으니까요. 그것은 74살의 저에게도 아직 현재진행형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더 맣이 살아갈거기땜에 제 인생을 지금 이 시점에 실패관점에서 돌아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Q.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면서 내린 실패와 성공의 정의가 있나요?
A. 저는 실패와 성공의 정의를 명확히 내리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극단적으로 실패와 성공의 정의는 없다고 말해도, 그게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작년말에 공저자로 참여한 ‘당신의 계절은 온다’라는 책에서도 성공과 실패가 무엇인지에 대한 담론이 중요하게 다뤄지는데요. 실제로, 우리가 성공과 실패는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서 스스로 제대로 알 필요가 있거든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기존 사회적 잣대와 기준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Q. 인생의 맛을 어디서 느끼세요?
A. 돈을 많이 벌었던 시절에는 그 성과 자체에 도취되어서, 한때 저는 결과지향적인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꽤 긴 시간을 살아오면서 이제는 사소한 일상에서 삶의 맛을 느끼곤 해요. 과정의 맛을 알게 된거죠. 예를 들면, 저녁에 홈트레이닝하는 그 순간도 행복해요. 잠자리에 들때 ‘오늘 하루도 내 자신에 대해 충실했나’, ‘하루를 헛되게 보내지 않았나’..그런 생각을 하는데요. 뭔가를 하고 내 몸을 굴리면서 피로감을 느끼며 저녁에 잠이 들 때 너무 행복해요. 사실, 저를 잘 아는 지인들이 제가 제 자신을 너무 빡빡하게 몰아세우는 것도 병이라고 하더라구요. 조금씩 제 자신에게 여백과 공백을 주라는 조언을 많이 받곤 하는데, 잘 안되요. 저는 그냥 하루하루를 타이트하게 지내는 것에 인생의 맛을 느끼니 어쩌겠어요.
Q. 처음 창업을 할 때 초심은 뭐였나요?
A. 솔직히 말하면, 무작정 성공하고 싶었던거죠. 그런데, 작건 크건 기업을 운영하다보면, 누구나 특별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요. 나 자신이 성공하고 싶어서 시작한 창업이 결국 직원들을 포함한 누군가의 생계와 밀접하다는 것을 자연스레 깨닫다보면, 성공 이전에 생존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죠. 그리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심가지게 되구요. 그래서, 저는 창업 당시의 초심보다는 스스로 발전적으로 진화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끊임없이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모두에게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없는 현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갈등과 회의감을 느끼기도 하죠. 저는 그래서 대기업 임원들보다도 구멍가게 사장님을 더 존경해요.
Q. 다시 태어나도 창업을 하실 건가요?
A.해야죠. 개인적으로 저의 사업인생은 다이나믹하고 좋았다고 느껴요. 화려한 순간도 있었으니까요. 물론 그렇지 않은 순간도 많이 겪었죠. 그런데, 제 아들이 하겠다고 하면 일단 말려요. 아예 하지말라는 의미는 아니구요. 꿈을 이루기 위한 멘탈과 피지컬을 강하게 준비하고나서 도전하기를 바라는거에요.
Q. 많은 젊은이들이 찾아와서 창업에 대한 고민을 말할 것 같아요. 어떤 고민들이 유독 와닿았나요? 그리고 그 고민들에 대해 뭐라고 말을 해주세요?
A. 우리 사회가 사실 창업을 독려하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실패를 겪은 후 사회적 안전장치가 많이 부족해요. 그러다 보니, 젊은이들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클 수 밖에 없죠. 저를 비롯한 기성세대들이 이 부분을 사회시스템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고 봐요. 사회적 안전장치 없이, 무작정 젊은이들에게 창업을 권하는 건 기성세대들이 비겁한거죠. 젊은이들도 기존 사회시스템에 순응해서 그 안에서 성공하겠다는 생각만 하지말고, 더 나은 사회적 안전장치 마련을 위한 공개적 요구를 계속 해야해요. 그래도 과거보다는 우리 사회가 많이 좋아진 면도 많아요. 젊은이들이 창업할 때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지원정책이 많거든요. 창업할 때 그런 정부지원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스스로 스터디 많이 하길 바래요.
Q. 창업이란 뭐라고 생각하세요?
A. 자신의 꿈을 스스로 통제하면서 능동적으로 이루어가는 긴 여정의 출발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즐겁기만 할 줄 알았던 여행도 예기치 못한 일에 고초를 겪기도 하듯이, 꿈에 다가간다는 것은 즐거운 순간도 많지만 고된 순간도 많아요. 그 고된 순간을 이겨낼 수 있는 멘탈과 피지컬을 키워나가야 해요. 그럴 자신이 없는 젊은이에게는 창업을 권하고 싶지 않아요. 창업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해요.
Q. 만족도 5점 만점에 몇 점인가요?
A. 저의 삶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거죠? 5점 만점에 10점이요. 오븐에서 갓 나온 빵을 테스트하는 과정, 완성된 빵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과정, 그 모든 과정들조차 저는 스스로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껴요. 그런 일상의 과정에 사소한 성취감을 느끼며 살다보니, 그간 많은 고난을 견디고 이겨내고 지금 이 자리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젊은이들도 창업아이템을 결정할 때, 자기 자신이 스스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을 선택하면 도움되리라 생각해요.
Q. 요즘에는 무엇에 도전하고 싶으신가요?
A. 저는 음식과 관련된 일이 좋아요. 그래서, 음식과 관련한 새로운 온라인비지니스에 도전하고자 준비중이에요. 대학졸업후 첫 창업아이템은 음식과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피자헛에서부터 시작된 지난 수십년간 음식관련 일만 하다보니, 음식관련 일이 저한테 잘 맞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제가 암투병을 오래 했잖아요. 기적적으로 제가 살아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제 아내의 음식이 건강회복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언젠가부터 한식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어요. 헬씨푸드로서의 한식을 전세계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은 꿈이 생겼어요.
Q. 무엇을 위해 달려왔나요?
A. 사실, 젊었을 때 처음 창업할 때는 그냥 성공하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성공이 뭔지도 생각해보지 않았으면서도, 그냥 무작정 성공하고 싶었던거죠. 흔히 말하는 성공과 실패, 그리고 회복과 재도전을 반복 하다 보니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언젠가부터는 꿈을 위해 달려온거 같아요. 꿈과 성공은 일부분 일치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다른 의미에요. 굳이 제가 추구해왔고, 앞으로 추구할 꿈이 무엇인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아요. 일상의 아주 사소한 꿈도 그 가치가 있으니까요. 사소한 꿈을 많이 이루는 것이 앞으로 저의 큰 꿈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거듭된 실패와 좌절 속에서 도전을 망설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말씀 해주세요.
A. ‘Dream Big! Start Small! Walk Slow!’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꿈은 크게 꾸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근데, 그 큰 꿈을 너무 서둘러서 이루려 하지 말고, 처음엔 작게 시작하고 천천히 나아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러면, 그 과정에서 고난과 실패를 겪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요. 무리하게 서두르고, 한꺼번에 많은 걸 이루려고 하다보면 감당하기 힘든 고난을 만나게 되거든요. 그리고, 두가지를 당부하고 싶어요. 첫째,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자신만의 아름다운 계절을 만나게 되요.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잘 버텨내고 이겨내면 꿈을 이루는 시절이 온다는 의미에요. 둘째, 어려운 순간을 만나거나 실패를 경험하게 되면 다시 일어나야 하는데, 그때도 역시 서두르면 안되요. 항상 회복을 잘하고 다시 재도전해야 해요. 멘탈적인 회복, 피지컬적인 회복 등이요. 제가 작년말에 저보다 젊은 친구 두명과 함께 ‘당신의 계절은 온다’라는 책을 출간했는데요. 요즘 코로나로 인한 어려운 시기에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또다시 너무 성급하고 섣불리 조바심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글이거든요. 젊은이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회복이 선행되어야 재도전하고, 결국 성공하고 꿈을 이룰 수 있음을 알기를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