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집단 퇴사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2024-07-04 16:37

오성헌 법무법인 오킴스 대표변호사 [사진=오킴스]
법률 자문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잘나가는 IT스타트업 대표였던 그는 월요일까지 도저히 기다릴 수 없어서 고민 끝에 전화를 했다고 했다.

사연은 이러했다. 회사 CTO(최고기술책임자)가 갑자기 개발팀원 8명 중 7명과 함께 회사를 나간다는 통지를 해왔다는 것이다. 대표를 포함해 전 직원이 12명인 스타트업에서 절반이 넘는 인원이 한꺼번에 퇴사를 예고한 셈이다.

결국 나는 절박한 그의 손을 잡았다. 관련 회사의 집단퇴사 원인 파악을 위해 퇴사 희망자들을 직접 만났고, 그들과 퇴사 일정 및 보상 내용을 논의하고 집단 퇴사에 의한 법적 리스크까지 전달했다. 

면담을 통해 만난 문제의 CTO는 아주 유쾌하고 톡톡 튀는 젊은 친구였다. 내가 ‘왜 나가느냐’ ‘사내 문화가 안 좋으냐’ ‘인정을 못 받는 부분이 있느냐’ 등에 관해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은 전혀 예상치 못한 “자기 계발을 위해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라는 얘길 들었다. 

자신은 아직 젊고 열정이 있고 다양한 업무를 해보고 싶은데, 개발 책임자로 3년간 지내며 이 회사에서 해볼 수 있는 일은 다 해봤단다. 나는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간 집단퇴사에 따른 문제 해결책을 찾아줘야 한다는 강박에도 시달렸던 터라 머릿속이 매우 복잡해졌다.

혼자가 아닌 팀원 7명과 함께 나가는 것에 대한 질문에는 ‘뜻 맞는 친구들끼리 나가서 창업하려 한다’는 심플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의 답변엔 회사의 미래는 없었다. 나에게 의뢰를 해온 스타트업 대표와 CTO의 생각과 시선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날 CTO에게 회사 임원 계약서 및 근로 계약서에 근거해 퇴사 후 2년간 경쟁 관계에 있는 업체 또는 계열사에 취업하거나 임직원으로 근무할 수 없다'는 경업금지 조항이 있다는 점을 전달하고, 이를 꼭 퇴사 희망자들과 공유해 달라고 부탁했다. 

계약서 내 경업금지 조항이 있다면 집단 퇴사를 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노하우 등 영업비밀을 무단으로 가져가 경쟁 업체에 입사하는 경우 등을 막을 수 있다. 이는 곧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침해 또는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부정경쟁방지법상 보호되는 영업비밀 개념은 다소 제한적이다. 공연히 알려지지 않아야 하고, 경제적인 유용성을 가지며, 비밀로서 합리적인 노력에 의해 접근이 제한될 것이 요구된다.

최근 들어 집단퇴사 등에 따른 법적 리스크를 확인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는다. 회사는 집단 퇴사를 강제로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퇴사자들이 퇴사 후 업무가 직전 회사에 해를 끼치거나 그럴 의도가 있을 경우라면 대응 방안은 있다. 

다만 임직원 수가 적은 스타트업은 이러한 비밀지정, 비밀관리 등을 완벽하게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러 사정으로 객관적인 영업비밀에 이르지 못한 회사의 주요 자산이 유출됐을 때 일반적인 부정경쟁 행위로도 볼 순 있다. 만약 이 또한 여의치 않다면 형법상 업무방해죄 성립 여부를 따지게 된다.

집단퇴사의 경우 보통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 성립 여부를 따지게 된다. 집단퇴사로 인해 회사의 폐업 수순이 명백히 예견되는 경우 회사 운영에 관한 대표의 의사가 제압된 것이고, 이를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로 볼 여지가 있다.

판례는 폭력적 수단을 전혀 수반하지 않은 집단퇴사로 인한 근로 제공 거부는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어 이를 입증하기 위한 과정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손 놓고 볼 수만은 없다. 

상담 후 다행히 퇴사를 희망했던 CTO와 임직원들이 집단퇴사를 번복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다. 내가 도움이 돼서 다행이라는 안도의 마음보단 떠날 마음을 가졌던 직원들과 회사가 계속 함께 갈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먼저 들었다. 이번 문제가 단순히 대표와 CTO의 갈등으로 생긴 것이라면 오히려 문제 해결이 명쾌했을 것이다. 사업은 운이고, 인재가 회사의 전부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