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둥대는 공기관] "할 일 태산인데" 기관장 공백 장기화...국정과제 차질 우려

2024-06-26 05:00
산업부 산하 23곳·해수부 산하 1곳 임기 만료
'대왕고래' 맡은 석유공사 연임 여부 미정
중부발전, 경평 경고…'솜방망이 조치' 불보듯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 19곳의 기관장 임기가 만료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지난 7일 임기가 만료된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 [사진=연합뉴스]
4·10 총선이 끝나면 속도가 붙을 줄 알았던 공공기관장 인사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공공 부문의 지원이 절실한 국정 과제들이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임기 종료 후에도 직을 수행 중인 기관장의 경우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에 따른 해임·경고 등 후속 조치가 무의미해 행정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25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 23곳과 해양수산부 산하기관 1곳의 기관장 임기가 이미 만료됐거나 공석이지만 후임자 부임은 요원하다.

대개 기관장 선임은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 구성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 심의 △이사회 의결 △주무부처 장관 제청 △대통령 임명 순으로 진행된다. 공식적으로 수장 공백 상태인 대부분 기관들이 현재 '임추위 구성'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전임 기관장이 떠난 뒤 공석인 곳은 강원랜드와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한국에너지재단, 대한석탄공사 등이다. 이삼걸 전 강원랜드 사장은 건강상 이유로 조기 사임했고 김광식 에너지재단 전 이사장은 업무추진비 부당 사용 의혹이 제기돼 자리에서 물러났다. 

임기가 끝났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업무를 수행 중인 기관장들도 있다. 한국전력공사 발전자회사 5곳(남부발전·남동발전·동서발전·서부발전·중부발전)의 기관장 임기는 지난 4월 25일 동시에 만료됐다. 하지만 5곳 모두 임추위 구성 단계에서 답보 중이다.

한 발전사 관계자는 "임추위 구성 등 새 기관장 선출을 위한 준비는 마쳤지만 상부 기관의 지시가 없어 위원회 활동도 멈춘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발전사 관계자는 "통상 새 기관장 선임에 2~3개월이 걸리는 만큼 빨라도 하반기나 돼야 후임자가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며 "쌓인 업무가 많은데 불안하고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기관장이 10개월째 공석인 에너지기술평가원의 경우 지난 19일 임추위 모집을 마쳤다.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최종 임추위를 구성할 계획이며 최소 2~3개월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해수부 산하인 해양환경공단의 경우 한기준 이사장이 임기가 지난 3월25일로 끝났지만 현재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해양환경공단은 후임 기관장 모집 공고를 낸 단계로 인사청문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공공기관 수장 인선이 늦어질수록 정부 역점 사업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동해 심해 가스전·유전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한국석유공사는 현 김동섭 사장 임기가 지난 7일 종료됐지만 아직 김 사장의 연임 여부나 후임 인선과 관련해 시계제로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후임 사장에 대해서는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다"며 "일단 임추위는 구성했고 당분간 김동섭 사장이 업무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 사업을 펼치는 에너지재단 역시 수장 공백에 시달리고 있다. 올여름 역대급 폭염이 예고된 터라 에너지재단의 주요 사업 중 하나인 '냉방 복지'의 원활한 진행이 절실하다. 후임 기관장 선출에 속도를 내야 하는 이유다. 

공공기관 경평 결과에 대한 후속 조치도 솜방망이 처분에 그칠 공산이 커졌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9일 '2023년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결과'를 발표하며 해임 건의 1명, 경고 조치 12명 등 징계 결정을 밝혔다.  

한국중부발전은 중대 재해 발생으로 경고 조치 대상에 포함됐지만 김호빈 사장의 임기가 지난 4월 종료된 탓에 징계가 무의미해졌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공공기관장 공석은 배로 말하면 선장이 없는 격"이라며 "기관 운영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공기관은 일반 행정기관과 달리 민간과 정부 사이에서 '하이브리드' 역할을 하는 곳"이라며 "후임자 선임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