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반복되는 은행 거액 횡령 사고…실효성 있는 내부통제안 어디로
2024-06-20 17:01
한 시중은행에서 또다시 100억 규모의 횡령사고가 터졌다. 지점 대리급 직원이던 A씨는 대출 신청서와 입금 관련 서류를 조작해 여러 차례 기업 단기여신을 일으키는 방법으로 대출금을 빼돌렸다고 한다.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은행은 불과 2년 전에도 700억대 횡령 사고로 금융감독원의 제재를 받은 바 있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마련해 온 내부통제안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물론 그간 은행권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22년 우리은행의 700억대 횡령사고가 터졌을 때 금감원은 은행연합회·국내은행과 함께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내부통제 혁신방안을 마련했다. 이 방안에는 은행 직원이 자금 인출 건으로 결재할 때 단계별로 확인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담겼다. 검증 과정에서 서류의 핵심 내용이 일치하지 않으면 자금이체도 제한할 수 있었다. 자금인출 결재 시 기안, 직인날인, 자금지급이라는 복잡한 단계를 거친다는 걸 떠올려보면 A씨의 위조된 대출 서류가 걸러지지 않았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은행권에서 이번 사태를 오히려 내부 통제를 잘한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도 비판할 만한 대목이다. 이 은행은 사고 이후 본점 여신감리부 모니터링을 거쳐 이상 징후를 포착해 횡령을 잡아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직원 A씨의 범행 시점을 보면 은행 내부 결재 과정과 감사 시스템이 미흡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다음 달 3일부터 금융사 임원 개개인 업무와 책임 범위를 도식화한 '책무구조도'가 도입된다. 금융권에서 잇따르고 있는 금융사고와 관련해 임원별 내부통제 책임을 명확하게 하겠다는 것인데, 이 또한 구호에만 그칠 수 있다. 벌써 사고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에 책무구조도 역시 한계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내부통제 의무를 구체화해도 개별 기준 준수 여부가 모호하다는 이유에서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책무구조도 도입을 시작으로 취약한 금융권의 내부통제 체계를 개선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를 바란다. 말뿐인 재발방지책은 또 다른 '역대급' 사고를 일으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