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 침범 사망사고 낸 후 파산…대법 "중대한 과실아냐, 면책 대상"

2024-06-09 12:42
중앙선 침범해 1명 숨지고 2명 중상
파산·면책 후 '비면책채권' 해당 여부 놓고 공방
대법, 1·2심 뒤집고 "중대 과실 단정 안 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모습. 2023.12.11[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운전 중 중앙선을 침범해 사망사고를 낸 후 파산 신청한 A씨에 대해 '중대한 과실'로 단정할 수 없기 때문에 보험금에 대한 채권도 면책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재단법인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이 A씨를 상대로 낸 양수금 청구 소송을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1997년 1월 서울 종로구 한 고가도로에서 차를 몰다가 중앙선을 침범해 맞은편에서 오던 차량과 부딪혔다. 이 사고로 상대 차량에 타고 있던 3명 중 1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보험사는 피해자 측에 4500만여 원을 지급했다. 이후 A씨를 상대로 피해자들 대신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 2012년 9월 승소했다. 

그런데 A씨가 2014년 법원에 파산·면책을 신청했고 법원은 다음 해 6월 A씨에 대해 면책을 결정했다.

면책 대상 채권자목록에 보험사 채권도 포함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보험사에서 채권을 양수한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은 2020년 2월 "해당 채권은 탕감이 안 되는 비면책채권에 해당한다"며 A씨를 상대로 양수금 청구 소송을 냈다. 채무자회생법은 채무자의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이나 신체를 침해한 불법행위에 따라 발생한 손해배상을 비면책채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이 채권이 A씨의 중대한 과실에 따른 불법행위 때문에 발생했는지가 소송의 쟁점이 됐다. 

1·2심은 모두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 측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1·2심 판결에 대해 "비면책채권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A씨가 중대한 과실에 따라 사고를 일으켰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우선 "채무자회생법상 중대한 과실이란 채무자가 조금만 주의했다면 생명이나 신체 침해를 회피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는 등 일반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현저히 위반하는 것을 뜻한다"고 짚었다.

대법원은 구체적으로 "A씨는 1차로를 주행하던 중 차로에 다른 차가 진입하는 것을 발견하고 충돌을 피하려다가 중앙선을 침범했고, 당시 제한속도를 현저히 초과해 주행하지도 않았다"며 "피해자 중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은 사정은 중대한 과실 여부를 판단하는 직접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