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 사회, 시니어 주택 갈 길] 주거 양극화 심각···전문가 "서민 고령자 위한 주택 마련 필수"
2024-05-30 18:13
"보증금 10억원을 예치하고 초고가 서비스를 받거나 월세 10만원도 되지 않는 공공주택으로 양극화된 게 시니어 주택의 현실이다. 매우 부유하거나 가난하지 않은 노인은 사실상 들어갈 수 없는 셈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국내 시니어 주택 현황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초고령 사회 진입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서민을 위한 대중적인 시니어 주택 없이 양극단의 수요만 겨우 채워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건설사, 시니어 주택 미래 산업으로 낙점
시니어 주택 분야 선두 주자로 꼽히는 롯데건설은 내년 10월 마곡MICE복합단지 내 'VL르웨스트' 입주를 위해 관련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 VL르웨스트는 롯데호텔이 운영하는 시니어레지던스로, 롯데건설과 롯데호텔이 연계해 시너지 창출에 나선 것이 눈에 띈다. 이는 신동빈 롯데 회장이 실버 산업을 그룹의 핵심 성장동력으로 낙점하고 모든 계열사에 관련 사업에 신경을 쓸 것을 당부한 결과로 분석된다.
현대건설도 최근 시니어 주택 개발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은평구 진관동 일대에서 복합시설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계열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연세대 미래교육원과 '시니어주택 운영 사업 추진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관련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건설사업관리(PM) 기업 한미글로벌 역시 시니어 주택 사업에 착수했다. 액티브 시니어를 겨냥한 시니어주택 전문 브랜드 '심포니아'를 출범한 한미글로벌은 부동산개발 자회사인 한미글로벌디앤아이(D&I)를 통해 다음 달 4일 송파구 위례신도시에 ‘위례 심포니아’ 견본주택을 선보일 예정이다.
◆서민 대상 시니어 주택 부족 "운영 전문성·비용 절감 정책 지원 필요"
시니어 주택 사업을 진행하는 건설사가 적지 않지만 일선에서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지나치게 부족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분석한다. 특히 시니어 주택 운영에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특성상 경제적으로 부유한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시니어 주택이 대부분이어서 일반 서민 대상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운영 전문성과 비용 문제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주거학회장을 역임한 주서령 경희대 교수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곧 1000만명을 넘게 되는데 시니어 주택 수요에 비해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지역 복지센터 등 사회적 시설과 연계해 노인 주거에 필요한 서비스를 유지하면서 비용 부담을 낮추는 정책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시니어 주택은 결국 운영이 관건인데 사업자들이 운영을 위해 어느 정도 금액을 받는 것이 적정한지에 대한 검증이 있어야 한다"며 "부유층이 아닌 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보급형 시니어 주택은 운영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나마 분양형 실버타운(노인복지주택)이 9년 만에 다시 도입돼 시니어 주택 공급이 다소 수월해질 수 있다는 평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민생토론회를 통해 서민 중산층을 대상으로 분양형 실버타운 재도입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앞서 2000년까지 주목을 받았던 실버타운은 2015년 노인복지법 개정 이후 분양형 판매가 금지됐다. 당시 운영사의 과장 광고나 부실 운영 등으로 고령자가 피해를 입는 사례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분양 이후 내실 있는 운영을 위해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당장의 수익을 노리고 중소 사업자들이 앞다퉈 시니어 주택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면 과거의 실패가 반복될 우려가 있다"며 "당장 사업자를 늘리는 것보다 자격 있는 시니어 주택 운영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시장의 혼란을 막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