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브린의 For Another Perspective] 한국인이 북한동포의 적? 통일이냐 분리냐 고민할 때
2024-05-31 10:00
올해 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반도 통일을 포기하고 대한민국을 외부의 적으로 여긴다고 발표하자 한국인들은 이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에 싸였다.
김 위원장 발표를 두고 북한은 지금 핵전쟁을 준비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그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북한이 다른 무엇에서부터 한국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한 계략일 가능성이 있다. 필자는 북한이 마침내 오랫동안 기다려온 중국식 경제성장을 모델로 변화의 길을 가려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남측에 강경하게 나오면서 북측은 자신들의 주체사상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확신하기엔 이른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몇 가지 징후(sign)가 있다.
첫 번째 징후는 이념이다. 이념은 목적의식을 지닌 정치라기보다 신학(신앙)에 가깝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고 진지하게 생각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북한을 움직이는 것이 바로 이 이념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지속적으로 주시해야 한다.
'주체'는 그의 할아버지 김일성에 의해 외세로부터의 북한 독립을 강조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주체'가 일제강점기를 겪은 후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주체 사상'은 구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향력에서 북한이 벗어나기 하기 위함이었다.
1990년대에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은 군사 제일주의, 즉 선군정치로 역점을 옮겼다. 현재의 김정은 체제에선 '나라'와 '인민'으로 바뀌었다. 이에 맞춰 지난여름 김정은 정권은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국가 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김정은은 지난 2월 평양에서 북동쪽으로 70㎞ 떨어진 성천군에서 열린 첫 공장 기공식에서 '지방발전 20×10 정책'의 비전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낮은 삶의 질에 대해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농촌 산업혁명의 거대한 변화를 위해 강력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다"고 말했다고 북한 방송은 보도했다. 그는 "농촌의 모든 시와 군, 수백만 명의 우리 인민을 원조할 생각에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이제야 이러한 정책을 시작했다는 것이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했다.
이런 상황은 북한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붕괴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너무 아찔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북한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으로 인한 중국의 변화와 비슷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에겐 아직 단정할 수 없는 추정이 존재한다. 김정은이 진정으로 계획하고 생각하는 것이 통일보다 경제인가 하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국방력은 한국을 정복하는 대신 나라를 지키기 위함인가, 북한 주민들은 전국에 널린 거대한 군사 기지에 군인으로 복무를 하는 것보다 경제와 사회 발전 기여에 대한 가치를 더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방향은 통일에 대한 명백한 거부를 의미하고, 한국을 '주적'으로 만드는 것인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북한 주민들은 호전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을 형제자매로 생각한다. 처음부터 그들의 선전물은 한국 사람들을 미국의 허수아비이자 매춘부, 거지 또는 미국인들에게 억압받는 희생자로 묘사했다. 이는 어느 정도 북한 주민들이 그들의 나라를 우월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세뇌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세뇌가 또한 북한 주민들에게 감정적으로 작용하여 한국 사람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게 하기도 하고 그들을 해방시키려는 영웅적인 꿈을 갖도록 만들기도 한다.
K-드라마와 K-팝의 강한 영향력을 감안할 때 북한 주민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우월성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방향을 바꾸는 데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솔직히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살 행위다. 예를 들어 그는 다음과 같이 연설한다.
"저는 한국이 한국 국민들에게 우리보다 훨씬 나은 삶을 제공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모든 한국인들에게 더 나은 한국이 되기 위한 경쟁에서 한국은 이겼고 우리는 졌습니다. 통일은 쉽지 않은 제안입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 통일을 한다면 우리는 가난한 사촌 정도 될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한국의 경험을 배워서 나라를 건설합시다. 제 롤모델은 박정희 전 대통령입니다. 그가 1960년대에 그랬듯이 저는 여러분에게 하루 세 끼를 약속할 것입니다.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1억 달러 수출 달성과 1인당 소득 100달러입니다"라고 연설하는 것이 첫 번째 선택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옵션은 더 현실적인 선택, 즉 영리하게 나아가는 것이다. "왜 우리 자신을 한국과 비교하는가"라고 그는 말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자신을 어제의 우리와 비교하고 내일 더 나아지도록 계획하는 것은 어떠한가? 한국과는 단절합시다. 우리에게 방해가 됩니다."
김 위원장은 두 번째 선택지를 골랐다. 그는 작년 12월 한국에 대해 화해와 통일을 반대한다는 선언을 하였고, 그것은 단순한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이어 올해 1~2월에는 법률, 노래, 지도, 책 등도 개편하였다. 통일 관련 언급과 형제로서 한국에 대한 언급이 삭제되었다. 학기가 시작되는 4월 1일 이전에는 교과서를 다시 인쇄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학생들은 이제 금지된 단어와 개념에 종이 조각을 붙이며 신학기 준비 시간을 보냈다.
물론 만약 김정은 위원장이 이 작업만 했다면 북한 주민들은 마음속에 의구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동안 북에서 통일은 국가 전체의 관심사였다. 북한 주민들의 희생과 고통은 통일을 위한 것이다. 한국도 김 위원장을 배신자라고 부르고 무엇인가를 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김정은 위원장은 주민들의 이러한 반응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행동으로 실천했다. 한국인들은 북한의 적이라고, 한국은 북을 강제로 합병하기를 원하며 신의가 없는 외국인이라고 했다. 이러한 입장은 북한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이 그들의 형제자매라고 느끼는 것 자체를 범죄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놀라운 점은 우리가 통일을 위해 상상했던 각종 시나리오에서 북한이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시나리오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지금 현재 북한의 입장일지도 모른다.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국민들의 삶을 더 좋게 만들고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이해는 간다.
아직 확신하긴 이르지만 지금 벌어지고 것들을 보면 한국도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통일을 계속 추진할 것인지 아니면 평화로운 분리를 선택할 것인지를.
(번역=황민하 인턴기자)
[필자 약력]
마이클 브린은 현재 글로벌 PR 컨설팅 회사인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CEO다. '가디언'과 '더 타임스' 한국 주재 특파원, 북한 기업에 자문을 제공하는 컨설턴트, 주한 외신기자클럽 대표를 역임했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한국인을 말한다>를 포함해 한국 관련 저서 네 권을 집필했다. 1982년 처음 한국에 왔으며 서울에서 40년 가까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