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IN] 여야 합의가 '특검 필수조건'이라는 당정…역대 사례 따져보니

2024-05-24 06:00
14건 중 4건 합의 불발에도 최종 도입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등 야당 의원들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채상병 특검법' 재의요구 규탄 야당·시민사회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상병 특검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것을 두고 여야가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당정은 야당 주도로 2일 국회를 통과한 채상병 특검법이 '여야 합의 부재'로 통과됐다는 점을 들어 반대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22일 특검법 관련 당원 난상토론을 열고, 물밑에선 여당 이탈표를 늘리기 위해 의원들과 접촉하는 등 대정부 투쟁 의욕이 한껏 고조된 상태다.

당정은 역대 특검법 중 여야 합의 없이 통과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21일 브리핑에서 "지난 25년간 13회에 걸친 특검법들을 모두 예외 없이 여야 합의에 따라 처리해 왔다"며 특검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앞서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같은 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과거 총 13번의 특검 중 12번이 여야 합의로 실시됐다. 협의가 안 됐던 'BBK 특검'조차 당시 이명박 대선 후보가 특검을 수용하겠다고 밝히면서 사실상 합의로 추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역대 총 13번의 특검 중 12번 이상이 여야 합의로 실시됐다"는 정 비서실장과 추 원내대표의 발언은 과연 사실일까.

23일 아주경제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등을 확인한 결과 줄곧 '특검 반대론'을 관철하고 있는 당정의 이 같은 주장은 대체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로 반송된 채상병 특검법을 제외하고 현재까지 통과된 특검 14건 중 4건은 여야 합의 없이 도입 절차를 밟았다. 정부별로는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각각 2건이었다. 2003년 '대북송금 특검'과 '노무현 측근비리 특검', 2007년 'BBK 특검', 2012년 '내곡동 특검법' 등이 미합의에 그쳤지만, 최종 통과됐다.

우리나라 특검은 국민의정부 시절인 1999년 9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특검법'이 통과되면서 시작됐다. 이를 포함해 2001년 1월 이용호 게이트 사건, 2003년 2월 대북송금 사건, 2003년 11월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 사건, 2005년 4월 유전개발 의혹 사건, 2007년 11월 삼성 비자금 사건, 2007년 12월 이명박 BBK 주가조작 의혹 사건, 2010년 6월 스폰서 검사 의혹 사건, 2012년 2월 재보궐선거 디도스 사건, 2012년 9월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사건, 2016년 11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2018년 5월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 2020년 세월호 진상 규명 사건, 2022년 4월 고(故)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등 총 14건의 특검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가 4억5000만 달러를 북한에 불법 송금한 사실을 밝힌 '대북송금 특검법'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 2월 본회의에서 민주당 의원 전원이 불참한 가운데 한나라당, 자민련 등 야당 단독으로 가결 처리했다. 민주당은 수정을 전제로 특검법을 '조건부 수용'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당시 노 대통령도 거부권을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야권이 추가적인 송금 여부에 대한 기간 연장을 이유로 특검법을 재발의하자 노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노무현 측근비리 특검법'은 채상병 특검법과 마찬가지로 노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다. 거부권 행사로 국회로 되돌아온 해당 특검법은 2003년 11월 10일 본회의에서 재의결을 거쳐 최종 통과됐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도입을 반대했지만, 한나라당, 자민련, 민주당 등 야권은 결국 특검 추진에 성공했다.

추 원내대표가 이 전 대통령의 수용 의사로 '사실상 여야 합의'가 이뤄졌다고 언급한 이른바 'BBK 특검법'은 2007년 12월 17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의 표결 불참에도 야당 주도로 가결됐다. 이는 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 전신)이 이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발의한 법안이었지만, 별다른 성과로 이어지진 않았다. 당시 특검 수사진은 대통령과 관련된 모든 의혹을 무혐의 처분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10년 뒤 검찰 재수사 때 유죄를 선고받고 실형을 살았다.

이 전 대통령이 수사 대상이었던 또 하나의 사건인 '내곡동 특검법'도 야당 의지로만 통과됐다. 2012년 9월 내곡동 특검법은 여당인 새누리당의 극심한 반발 속에도 통과됐다. 본회의에서 표결에 참여한 새누리당 의원 전원이 반대표를 던졌지만, 이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 이후 특검이 진행됐다.

한편 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 7개 정당은 특검법 재통과를 위해 신발끈을 단단히 고쳐 매고 있다. 민주당은 당장 28일 본회의를 열고 국회로 돌아온 채상병 특검법과 그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 미처리 법안을 모두 표결에 부쳐 통과시킨다는 구상이다. 21대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가 무산된다면 6월 개원할 22대 국회에서 '될 때까지' 추진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라 이를 둘러싼 공방이 장기화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22대 총선에서 범야권이 192석을 확보한 만큼 대통령 거부권 행사 법안을 재표결할 경우 여당에서 8표 이상의 이탈표가 나올 시 저지선이 무력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