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 (16) 눈을 맞으며 스승이 깨기를 기다리다 - 정문입설(程门立雪)
2024-05-20 16:22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수업시간 중에 담임선생님이 나를 교단으로 불러내더니 꼬옥 안아주시면서 공개적으로 칭찬을 하셨다. 선생님 질문에 손을 들고 한 답변이 마음에 쏙 드신 것이다. 무슨 질문이었고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세월과 함께 잊혀졌지만, 그날의 총체적 기억은 너무도 선명하게 뇌리에 각인되어 고달픈 인생살이에 힘이 되어 준다.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일러 '교사'라고 한다. 교사란 단순한 지식전달자를 넘어 학생의 인생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강력한 '인플루언서'다. 교사의 역할이란 무엇일까 생각할 때면 초등학교 때 그 선생님을, 그날 일을 떠올린다. 스승은 없고 교사만 있는 세상이라고들 하지만, 그런 선생님을 우리는 스승으로 기억한다.
'스승의 날'이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갔다. 날짜가 겹친 '부처님 오신 날'에 묻혀서였을까? 딱히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기념일을 반갑게 맞이하기에는 교육 현장의 현실이 참담하다. 폭염이 전국을 뒤덮던 작년 7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23세 새내기 여교사가 교사로서의 꿈을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두달 뒤에는 대전에서 40대 여교사가 또 극단적 선택을 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교사가 100명을 상회한다.
요즘은 교사가 혹여라도 나의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처럼 한 학생을 지목하여 칭찬하면 차별 행위로 민원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다른 학생이 이를 신고하면 교사는 소명해야 한다.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을 교사가 깨우면 휴식권 침해다. 2012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제정되기 시작한 '학생인권조례'가 이런 코미디를 가능하게 했다. 아동복지법의 '정서적 학대' 조항도 교사들을 괴롭히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사교육 열풍 속에 공교육의 입지는 갈수로 위축되는 가운데 학생의 책임은 놔두고 권리만 강조하다보니 학생의 인권 신장과 반비례하여 교권은 날개 없이 추락했다. '교권 보호'가 스승의 날 최고의 선물이라는 교사들의 외침에 관계당국은 답해야 한다.
현실이 답답할 때 종종 우리는 고전에서 위안을 찾는다. 예로부터 천하의 인재들은 학식과 인품을 고루 갖춘 사람을 찾아 가르침을 청하고 스승으로 모셨다. 송나라 때 가르침을 받고자 한 자(尺)가 쌓이도록 눈을 맞으며 명상에 잠긴 스승이 깨기를 기다린 사람들이 있었다.
가르침을 받고자 할 때는 간절한 마음으로 스승에게 존경을 다해야 한다는 성어 '정문입설(程門立雪)'의 유래가 된 이 이야기는 중국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유명한 미담이다.《송사•양시전(宋史•楊時傳)》이 원전이다. 양시와 유작은 훗날 큰 학문을 일구고 다른 두 학인과 함께 정씨 문하 4대 제자(程門四先生)로 이름을 남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옛말이 됐다. '군사부일체'라는 말도 영화 제목을 패러디하는 데나 쓰인다. 학생이 교사를 희롱하고 학부모가 교사를 때리는 일이 빈번한 시대라서인가, 눈을 맞으며 스승이 깨기를 기다린다는 이야기가 각별하게 와닿는다. 그런 사람들을 어찌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이는 아마도 열과 성을 다하여 양시와 유작을 가르쳤을 것이고, 그런 스승을 양시와 유작은 부모님 대하듯 했을 것이다.
학원과 학교의 역할이 다르듯이 학원강사와 교사의 역할은 다르다. 필요한 지식만 주입시키면 되는 학원강사와 달리 교사는 학생을 전인격으로 키워내는 역할까지 한다. 그 과정에서 교사는 학생의 존경을 받고 스승이 된다. 그런 스승을 보면서 아이도 올곧게 성장한다. 나의 초등학교 선생님은 소소한 일을 지나치지 않고 평생 힘이 되어 주는 기억으로 만들어주었기에 내 가슴속에 영원한 스승으로 자리잡았다. 인공지능이 교사를 대신할 만큼 세상이 바뀌었어도 교사와 학생 간 관계의 본질은 여전히 그러하다. 전국의 모든 선생님들, 힘을 내시길!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