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김양수 해진공 사장 "공급망 사수·해운업 발전 '안전판' 될 것"
2024-05-07 05:00
자본금 3조1000억원 증대…외화 채권 발행
"HMM 매각, 냉각기간 갖고 전략 수립해야"
CJ대한통운과 미국 물류센터 신개척 추진
"HMM 매각, 냉각기간 갖고 전략 수립해야"
CJ대한통운과 미국 물류센터 신개척 추진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해상 공급망 사수와 해운업 경쟁력 강화가 생존과 직결된 화두다.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는 전 세계적으로 희소하고 국내에서는 유일한 해양금융 전문기관으로 산업 발전의 안전판 역할을 수행한다.
해양수산부 차관을 역임한 김양수 해진공 사장은 지난 2021년 8월 취임 후 자본금을 획기적으로 확충하고 창사 이래 처음으로 외화채권 발행에 성공하는 등 조직의 위상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사장으로부터 공급망 위기를 극복할 해법과 해운업 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들어 봤다.
지정학적 위험 증가…해운산업 불확실성 커져
김 사장이 해진공 수장에 오른 때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로 글로벌 물류 대란 대응과 엔데믹 전환 준비 등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대처하는 데 주력했다.
이어 터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등 세계 경제를 뒤흔들 악재가 잇따르면서 해운·항만·물류 시장의 불확실성도 함께 비등했다.
김 사장은 지난 3일 아주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정학적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국내 해양 산업을 차질 없이 지원하기 위해서는 공사의 역량과 체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분주했던 당시를 회고했다.
김 사장이 취임한 뒤 해진공은 2022년과 2023년 두 차례의 증자를 거쳐 자본금을 3조1000억원 수준으로 확대했다. 또 지난해에는 3억8000만 달러 규모의 외화 채권을 최초로 발행했다. 올해 4월에도 6억 달러어치 외화채 추가 발행에 성공하는 등 공사의 높아진 신인도를 증명해 냈다.
그는 "공사 설립 이후 자금을 원화로만 조달해 왔는데 해외 시장에서는 달러 기반 거래가 기본 형태라 기업들이 애로를 호소한다"며 외화 채권 발행에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해운·항만·물류 시장은 산업 특성상 글로벌 이슈와 국제 정세 변화에 민감하다.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주요국의 자국중심주의가 강화되며 리쇼어링(본국으로 생산기지 이전), 프렌드쇼어링(우방국을 생산기지로 낙점하고 이전하는 현상) 등 글로벌 공급망이 빠르게 재편되는 중이다. 여기에 슈퍼 태풍과 가뭄 등 기상 이변이 초래하는 해양 공급망 차질도 우리 경제의 위험 요소로 꼽힌다.
해진공은 외부 리스크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선사의 경쟁력을 확충하기 위해 '중소선사 특별지원 프로그램' 지원을 확대하는 위기 대응 체제 구축과 산업 안정에 진력하고 있다.
김 사장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물류 대란을 겪으면서 해상 공급망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했다"며 "오는 6월부터 시행되는 '공급망안정화법'과 관련해 해운·물류 분야 지원 전략과 사전 대응 체계 마련 등 역할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유일 국적선사 HMM, 수익성 방어 우선 돼야
국내 유일의 국적선사인 HMM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해진공은 지난해 말 기준 HMM 지분 28.7%를 보유한 2대 주주다. 최대주주인 산업은행(29.2%)과의 격차도 근소하다.
김 사장은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선박 공격으로 촉발된 선박들의 희망봉 우회는 컨테이너선 공급의 약 10~20%를 흡수하는 효과로 이어졌다"며 올 2분기까지는 견조한 운임 시황이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올해 신규 컨테이너선 공급이 늘어나는 만큼 운임 급락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김 사장은 HMM 역시 선대 확충과 원가 절감 노력을 통한 수익성 방어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선복량 확대도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HMM의 경우 최신 선박으로 선대가 구성돼 경쟁력이 매우 뛰어나다"며 "초대형 컨테이너선 보유와 높은 에너지 효율성 등 장점이 많다"고 소개했다.
이어 "글로벌 선사들이 덩치를 키우는 상황에서 HMM도 선복량을 늘릴 필요가 있다"며 "항만 물류와 내륙 운송은 글로벌 선사에 비해 뒤처지는 편"이라고 진단했다.
HMM은 주력 사업인 컨테이너 분야의 경우 현재 92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분)인 선복량을 오는 2030년까지 150만TEU로 확대할 방침이다. 또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벌크선 규모도 현재 630만DWT(36척)에서 2030년 1228만DWT(110척)로 늘리기로 했다.
김 사장은 하림과의 계약이 수포로 돌아간 HMM의 매각 건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냉각기를 갖고 다시 전략을 짜야 될 것 같다"며 "얼라이언스 재편 등 과정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매각을 통해 공적 자금을 회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격 인수자를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면서도 "이미 정상화된 기업을 매각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고 부연했다.
해양금융 전문기관 발돋움…상생 생태계 조성
지난해 말 공사법 개정으로 해진공의 항만·물류 인프라 투자가 가능해졌다. 이에 CJ대한통운과 손을 잡고 미국에서 물류센터 신개척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사업 예산 규모는 최대 6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CJ대한통운 미국법인이 뉴욕, 시카고 등에 보유한 3개 부지에 대규모 물류센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해진공은 건설 자금 조달을 맡았다. 물류센터 운영은 CJ 측이 담당한다.
김 사장은 "미국에 건설될 물류 거점은 우리 글로벌 공급망의 경쟁력 제고와 해운 물류 연계를 통한 고부가 서비스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며 "향후 양측의 자원과 역량, 노하우 등을 활용한 글로벌 물류 경쟁력 창출 방안을 지속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국내 유일의 해양금융 전문기관이라는 정체성 강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경기 변동이 심한 해운업은 호황기가 짧고 불황기는 긴 특성을 갖는다. 김 사장은 해진공 내 전문가들이 많아 이 같은 업계 특성에 적절히 대응 중이라고 평가하며 해양금융 경쟁력을 높이는 데 더욱 매진하겠다고 전했다.
그는 "해운은 우리나라 수출입 물동량의 99% 이상을 담당하는 국가 공급망의 핵심인 만큼 우리 공사가 범정부적 공급망 안정화 사업에 기여할 수 있는 초석을 다지겠다"며 "정부와 수출입은행, 공사 간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해 공급망안정화기금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을 수립해 나갈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국제적 친환경 드라이브 본격화…바우처 등 지원 팔 걷어
김 사장은 국내 해운업계가 마주한 또 다른 리스크로 '국제 환경규제 강화'에 대한 대응을 꼽았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50년까지 해양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 넷제로(Net 0)라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선박에너지효율지수(EEXI)와 탄소집약도지수(CII) 등의 규제를 시행 중이다.
'탈(脫)탄소' 방향성은 설정됐으나 기존 연료를 대체할 친환경 연료는 아직 윤곽이 뚜렷하지 않다. 김 사장은 "해운업계의 친환경 연료유로 액화천연가스(LNG), 메탄올, 암모니아, 수소 등이 있지만 '대세 연료'라고 부를 건 없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친환경 기준을 충족하는 선박 구비와 각종 추가 설비 탑재, 연료비 상승 등은 국내 선사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탄소세 부과와 온실가스 배출 가격제 시행 등도 예정돼 있어 경영 여건이 악화일로다.
이에 해진공은 국내 해운사 지원 사격에 팔을 걷어붙였다. 우선 지난해 12월부터 공사가 금융 지원을 한 선박을 대상으로 환경규제 솔루션 바우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글로벌 저탄소 선박 정책 대응 지원 사업'을 통해 친환경·저탄소 선박을 새로 건조할 경우 선가 일부를 지원한다. 정부 재원을 추가 확보하기 위한 협의도 진행 중이다.
'친환경 설비 개량 특별보증 프로그램'으로 스크러버(탈황 장치)를 비롯해 선박에너지효율개선장치(ESD)까지 설비 투자비를 지원할 방침이다.
김 사장은 "IMO와 EU가 추진하는 규제 동향을 꾸준히 파악해 선사들에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며 "친환경 선박 확보의 효율적인 지원을 위해 금융 구조를 유연화하는 등 기존 정책펀드를 개편하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강화의 일환으로 녹색채권 발행 지원도 확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