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목 칼럼] 문과 자격증과 의사 자격증 '뭐가 그렇게 다르냐'
2024-04-22 06:00
문과 8대 전문직 자격증으로 보통 변호사, 변리사, 회계사, 감평사, 세무사, 법무사, 관세사, 그리고 노무사를 꼽는다. 매년 이들 자격시험의 선발 인원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 이 중에서 파격적으로 선발 인원이 증가한 것은 필자가 알기로는 변호사, 공인회계사와 세무사 시험 정도다.
자격증은 국가나 민간 단체에서 해당 분야에서 지정한 과목의 시험을 치르고 합격하면 주어진다. 자격증이 주는 최대의 장점은 이론상 퇴직이 없고 호흡이 다하는 날까지 그 ‘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직업’이라는 단어의 ‘직’은 직위 내지 자리이고 ‘업’은 그 일을 가리킨다. 그래서 ‘직’은 바뀌어도 업은 계속할 수 있다. 자격증은 그 자체가 일종의 진입장벽이 되어 아무나 그 시장에 진입할 수 없는 독점적인 자격을 부여한다. 선발 인원 증가에 따라 밥그릇이 줄어드는 것은 각자가 부담해야 한다. 그래서 다들 인간인지라 누구든 어떤 자격증이든지 본인이 일단 그 자격을 따고 나면 그 시험으로 오르는 사다리를 치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기 밥그릇에 들이대는 숟가락을 줄이는 거다.
요즘 사회가 피폐해지니 언어도 다소 과격해지고 강조를 위해서 파격적인 단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취업 깡패’라는 말이 있는데, 문과 8대 자격증 중에서 과거에는 사법고시, 요즘에는 변호사시험이 ‘자격증 깡패’라고 하고 싶다. 이 시험에 합격하면 당연 변호사 자격이 주어지고 검사도 될 수 있고 판사도 될 수 있다. 사법시험 선발 인원이 1980년대에 300여 명에서 2000년에 접어들면서 1000명을 넘었다가 로스쿨 체제로 전환되면서 2023년에는 1700명대에 이르렀다. 2000년 벽두에 사법시험 합격자 1000명 시대가 도래했다고 떠들썩했다. 이때 법조계는 사법시험 선발 인원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주된 이유는 과잉공급으로 인하여 법률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불필요한 소송 분쟁을 유도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입장은 변호사 공급을 축소해 독과점을 유지하려는 법조계의 ‘밥그릇 지키기’라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국민들은 법률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법조인은 몸값이 낮아지고, 사내 변호사로 취업도 많이 한다. 어쨌든 일반 국민들이 변호사 사무소의 사무장만 보다가 변호사를 직접 볼 일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회계사도 IMF 이후 재무회계, 기업감사, 신용평가 등 그 업무가 폭증함에 따라 선발 인원을 1000여 명으로 늘렸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얼추 유지되고 있다. 세무사도 2000년대 이후 1000명에는 못 미치지만 이에 근사할 정도이다. 세무 기장료가 20년 전과 같다고 세무사 업계는 아우성이다. 그러나 과거와 같이 공무원들에게 시험과목 면제 혜택까지 주면서 수십 명에 불과한 소수의 세무사를 선발했다면 세무 기장료가 지금과 같을까? 그러니 국민들은 낮아진 문턱으로 자신에게 맞는 변호사, 세무사 사무실 문을 두드리면 된다. 과거에 사법고시와 공인회계사를 제외한 전문 자격증은 관련 분야의 경력직 공무원들에게 1차 과목 면제와 시험과목 축소 등 특혜를 주었다. 검찰직 출신에게는 법무사, 세무직 출신에게는 세무사, 관세직 출신에게는 관세사 등 혜택과 전관예우가 주어지다가 이러한 특혜가 없어지거나 축소되어 일반인들이 이들 시험에 합격하기가 비교적 수월해졌다. 그 몫이 일반 수험생들에게 돌아가도록 한 것이다. 민주화의 영향이다. 참 잘된 일이다. 시험의 공정성을 위하여 정정당당하게 시험으로 승부를 보라는 것이다. 이 역시 특혜를 없애는 일이다.
과거 사법고시와 군법무관 시험이 공존하던 시절에 군법무관 시험에 합격하고 군대에서 10년을 근무하면 변호사 자격증을 주었다. 10년이라는 근무조건이 있어도 변호사가 되기를 원하면 그렇게 했다.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조종사가 되면 군 복무기간이 15년이다. 그리고 나서 민항기 조종사가 되기를 원하면 그렇게 하면 된다. 지방대 의대 인원 증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의·정 합의를 거쳐 정부의 행정 거버넌스를 구현하되 운영의 묘를 살려 정부의 정책도 실현하면서 그 취지에 맞게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려는 의대 지원자로 채우면 서로 상생하는 길이 아닐까 한다. 국내 인구 고령화와 의사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의대 정원 증원은 합목적적인 정책이다. 지방 의료 붕괴 상황을 해결하려는 취지에서 의대 증원 인원인 2000명 중에 80%를 지방대에, 나머지 20%를 수도권에 배정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 ‘설’이 분분하다. 그러나 지방 소멸 시대에 의료 자원 부족으로 힘든 지역의료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지방 의대를 졸업하고 지방에서 특정 기간을 근무하도록 하여 부족한 지방 의료의 공백을 채우는 것이다. 그 특정 기간이 얼마가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이 원하면 지원해서 근무하면 된다.
다양한 전문 직종의 자격증 선발 인원이 확대되면 국민들의 편익과 서비스는 늘어난다. 이러한 자격증 진화의 배경은 민주화와 국민의 복리 증진이다. 결코 자격증 소지자들의 배를 불리기 위한 수단은 아니다. 문과 자격증들은 파격적이든 아니면 파격에는 미치지 못했을지라도 선발 인원만큼은 줄줄이 늘려왔다. 과연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명분이 진정 밥그릇을 지키고자 함인지, 국민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 문과 자격증과 의사 자격증이 같으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의술이라서 다르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방영된 의학 드라마 ‘라이프’에서 조승우가 한 대사가 자꾸만 유튜브에 뜬다. 대학병원 사장 역을 맡은 조승우가 지방 의료 활성화를 위해 몇몇 과를 지방으로 옮기려 하는데 이에 의사들이 반대한다. 조승우는 “의사면서 왜 안 가느냐. 일반 회사였다면 지방으로 벌써 옮겨 살 집 구하고 있을 것”이라고 하자 이에 의사는 “우리가 일반 회사원하고 같으냐”고 반발한다. 그러자 조승우는 "그러면 뭐가 그렇게 다르냐"고 하면서 ‘핵 사이다’ 발언을 날린다.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이 바로 살기 좋은 세상, 진정 민주화가 아닐까 한다. 2000년대 우학이라는 법명을 가진 스님이 쓴 책 이름이 떠오른다. ‘저거는 맨날 고기 묵고!’
필자 주요 이력
△부산대 번역학박사 △미국 University of Dayton School of Law 졸업 △대구가톨릭대 영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