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16조 순매수 외국인, PBR 높은 성장주도 샀다

2024-03-31 16:30
종전 최고 2009년 3분기 순매수 금액 경신
"외국인 수급 유입… '낯선 종목'도 사는 중"
"장기 소외 업종 재평가 시 추가 상승 가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외국인의 한국 증시 순매수 금액이 올해 1분기 16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15년 만의 분기 순매수 금액 최고치 경신이다. 반도체 업종 활황 기대감과 정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관련 '저(低) 주가순자산비율(PBR)' 종목 영향뿐 아니라, 외국인들이 과거와 달리 한국 증시에서 새로운 성장주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3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코스피와 코스닥에서 외국인들이 순매수한 주식은 16조3000억원가량으로 역대 분기별 최대 액수를 기록했다.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지수증권(ETN), 주식워런트증권(ELW)을 제외하고 15조7696억원, 코스닥에서 5330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종전 최대 외국인 순매수 액수는 2009년 3분기(7~9월) 기록한 코스피·코스닥 합산 15조1818억원이었다.

KB증권은 지난 29일 투자전략보고서를 통해 "최근 외국인 수급이 유입 중인데, 한국 시장 전체를 사는 것이 아니라 종목을 선별해서 ‘액티브하게’ 매수하고 있다"며 "외국인 수급과 수익률의 관계를 보면, 액티브한 매수가 주가에 가장 좋다"고 지적했다. 이어 "외국인 입장에서 다소 낯설었던 종목이지만 최근 매수하는 종목을 추려보면 저 PBR뿐 아니라 인공지능(AI), 로봇 등 고(高) PBR 성장주도 많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과거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살 때 '패시브화(포트폴리오의 업종별 구성을 시장 비중에 가깝게 만드는 것)'하면서 사는 경향이 좀 더 강했고 "지수가 크게 상승한 시기는 대부분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패시브 형태로 매수했던 시기였다"고 분석했다. 반면 "현재는 외국인이 '액티브화(평균 이상 수익률을 내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시장 비중과 다르게 만드는 것)'에 가까운 형태로 매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1분기 글로벌 증시 장세는 미국 엔비디아,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AI 주도주'가 이끌었고 국내 증시는 AI 주도주 수혜 업종인 반도체와 정부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방안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관련주가 움직인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이번 분기 역대 최대 순매수 달성 이면에는 국내 시황을 크게 좌지우지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과거 평균 지분율이 높지 않았던 낯선 종목까지 매수한 영향도 작용했다.

KB증권은 종목별 외국인의 지분율 분포를 분석한 결과 최근 실제로 저PBR주가 아닌 종목까지 비중이 확대된 사례가 상당수 확인됐음을 지적했다. 이에 "외국인이 밸류업(정책)에 주목해 저PBR 종목만 좋아하는 게 아니고 액티브하게 한국 주식을 선호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외국인들이 선별한 주식 가운데 실적 성장률까지 높은 주요 종목으로 LIG넥스원, 데브시스터즈, 셀바스AI, HD현대일렉트릭 등을 짚었다.

4월부터 시작하는 기업 1분기 실적 발표 흐름에 따라 외국인들의 한국 주식 선호 흐름이 더 길게 이어질 수 있다. 한국 증시 대장주인 삼성전자와 반도체 분야에서 맞수로 떠오른 SK하이닉스 중심으로 수급 쏠림이 얼마나 완화할지가 변수다. 삼성증권은 "장기 소외 업종들의 1분기 실적 턴어라운드, 주주 환원 강화에 따른 밸류에이션 리레이팅이 진행된다면 우리 시장의 추가 상승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신중론도 있다. 대신증권은 "코스피 지수 등락에 미치는 외국인 매매 영향력은 현물보다 선물이 더 크다"며 "상황 변화에 따라 외국인 선물 매도 전환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2월 코스피 레벨업을 주도했던 저PBR주들이 약세 반전해 여전히 코스피는 2750선"이라며 "수출·성장주 중 소외된 업종으로 남은 '인터넷'까지 기술적 반등에 성공한다면 외국인 선물 매매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